[관객 노트 Sigak] 2. 낯선 작품을 마주하는 태도에 관하여

이렇게 마주했는데, 잠시 대화해볼까요?
글 입력 2020.09.1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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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라 하면 빠지지 않는 화두가 있다. 바로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난해해?”라는 질문이다. 잠시 짚어가자면 아마 ‘현대미술’이란 단어는 단지 1950년대 전후 미술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까지 함께 지칭하는 맥락으로 쓰이는 것 같다. 반대로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미술이 ‘현대미술’이라 표현되는 것 같기도 하다(난해한 미술이 현대미술 시기에 몰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두고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와중에, 지금 일어나는 미술에 관심을 둔 관객으로서 미술을 (혹은 그것을 마주한 관객인 나를) 이야기하겠다고 한 나 역시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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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셸 뒤샹, 샘

: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결코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


 

나 역시 언젠가 ‘현대미술’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난해한 미술에 관해 이야기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난해함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고민하던 중, 생각보다 그 질문이 꽤 모호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정말 미술사적인 배경이 궁금해서 질문한 것일 수도 있고, 예술이라 생각되지 않는 특정한 작품을 향해 질문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며 의문을 던진 것일 수도 있고, 그저 현대미술에 관심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 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 자체로는 정말 막연한 질문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떠올릴 수 있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가까운 질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전시에 가서 ‘난해한’ 작품을 마주할 때 내가 궁금해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시를 직접 찾아다녀 보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작품 앞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미술이 난해해진 이유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곧 지금 눈앞에 있는 새롭고 낯선 무수한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내가 처음 만난 작품, 매번 낯설고 새로운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태도란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이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던 과거의 내가 정말 궁금해했던 부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정말 다채로운 방식으로 존재하는 여러 미술 중에서도 지금과 가까운 순간에 일어난 미술, 전혀 새롭고 낯선 작품을 만나고 찾아가는 나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잠시 덧붙이자면 이 글에서 언급되는 미술 작품 감상 등에 대한 내용은 나의 생각과 이야기에 불과함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작품을 마주하는 다양한 태도와 방식 모두 저마다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


낯선 사람을 만나듯

낯선 작품을 마주하기


1년 전 즈음의 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의 고민은 미술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해해보려는 것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더 쉬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다시 말하자면 사람을 마주하는 태도로 작품을 마주하려 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과 미술 작품 모두 단번에 파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나’는 외부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외모, 성격, 목소리, 말투 등을 통해 여러 타인으로부터 ‘오예찬’으로 인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분명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여러 경험, 기억, 사건, 트라우마, 가치관 등 무수한 맥락이 얽힌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존재할 것이다. 또한 드러난 나의 면면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생각이나 관심도 모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보통의 사고방식이라면 예술 작품이란 인간 경험과 유리되어 있는, 즉 외형으로만 존재하는 건물, 책, 그림이나 조각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실제의 예술 작품은 경험과 함께하며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결과물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에게 저만의 모습, 움직임 등으로 나타나지만 단지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닐 것이다. 작품은, 떠오르는 것을 나열하자면; 작가의 경험, 기억, 트라우마, 그것으로부터 일어난 동기, 의도, 표현을 위해 선택된 재료, 만들어지는 과정, 그 배경으로 존재한 시대, 예술의 흐름, 사회, 정치 등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요소가 다양한 범위와 방식으로 작동하고 또 서로 영향을 주며 나타난 결과이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평가와 관심은 앞으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할 것이며, 같은 작품이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해석은 저마다의 관심이나 시선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일 것이다.


다만 사람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미술 작품은 저마다의 다양한 형식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일정한 규정 없이 나타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시각적으로 목격하는, 세계에 아주 적합하고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형식과는 조금, 때론 많이 다른 모습이나 다른 맥락으로 존재한다. 그저 “객관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여러 요소들이 작동하며 고유한 과정을 거치며 단번에 파악되지 않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바라보아야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작품이 그런 상태로 나타나 단번에 파악되지 못하고 계속 살펴보게 하는 여지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해석이나 질문이 일어날 수 있는 여백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

 

“이렇게 마주했는데, 잠시 대화해볼까요?”


그런 낯선 작품, 그러니까 낯선 상대와 마주 앉았다고 상상해보자. ‘그(작품)’는 명확한 문장이나 표현으로 무작정 자신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만의 모습과 움직임, 소리, 분위기 등을 통해 어떤 느낌을 전하거나 손짓 같은 제스쳐, 신호를 보낸다. 그는 마치 모든 걸 다 완성해 두고 “저는 이런 작품이에요. 알겠죠? 그럼 이제 됐어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이렇게 나타나 봤어요, 그리고 이런 신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했어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어떤 느낌이 들어요?”라고 눈빛으로 물어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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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선 나는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우선 작품을 가만히 바라본다. 명확한 말이 오가지 않은 채 마주하는 순간이라니. 어쩌면 어색하고 불편한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냥 그 자리를 떠날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왠지 모를 호기심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끌림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혹은 계속해서 시선이 머문다면, 그것 자체가 작품이 보내는 신호를 이미 느끼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딱 그런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가장 먼저 궁금해하고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막연한 상태에 놓였다고 생각한 나 자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느껴지거나 떠오를 것 같은 그 막연한 상태 자체가 나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작품과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일어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작품이 낯설고 바로 파악되는 것이 없을수록, 그런 상태에 더 머물러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당장은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바로 의미를 좇기 보다는 작품이 남긴 그만의 여백(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보면 불쑥 덮쳐온 당황스러움이 조금씩 걷히면서 잠시 생각할 여지가 생겨났다. 그 여지를 두고 작품을 다시 관찰하며 그 모습 또는 움직임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걸 보며 내가 느끼거나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음, 아마 이런 것 같은데?” 같은 아주 사소한 거라도 일단 붙잡아봤다. 그때부터 나는 작품이 내게 건넨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대답해보는 것을 조금씩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대화’, 더 구체적인 말로는 자유로운 작품 감상이 시작된 것이다.



*

 

“이렇게 나타난 당신 앞에서

내가 이런 걸 느끼고 떠올리는 무엇일까요?”


나는 낯설고 어색한, 일명 “잘 모르겠다” 상태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작품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질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게 질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몇 가지 막연한 생각이나 느낌, 질문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씩 뒤이어 다른 생각이 자유롭게 이어졌다. 어쩌면 완전히 이해되는 상황이 아닌, 잘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모든 작품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말겠다”는 나의 욕심, 집착 같은 것도 내려놓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떻게 모든 미술을 똑같은 방식으로, 같은 만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와 공감이 통하는 작품이 있고, 아무리 고민해도 전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보자마자 단번에 무엇인가 떠오르는 작품도 있는 법이다. 마치 세계의 모든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같은 만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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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 Between Us

(가나아트 센터 설치 전경. 본인 촬영)

 

: 문득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이 생각난다. 그녀의 설치작품처럼 많은 움직임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품, 벅찬 느낌에 사로잡히는 작품을 볼 때면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나타나야만 비로소 표출될 수 있었을 작가의 내면 혹은 메시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그녀의 삶의 이야기 등을 통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겠지만, 그 작품 속에 놓인 순간 느껴지는 나의 감정과 연상을 함께 기억한다면 단순한 설명을 넘어서 조금 더 깊이 다가가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동시에 떠오른 모든 질문에 구태여 여러 논리정연한 설명과 함께 생각을 '완성해서' 대답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노력할 때도 있고 그저 흘려보낼 때도 있었다. 완전한 문장이 떠오를 때도 있었고, 느낌이나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몇 가지 단어들만이 산발적으로 떠오를 때도 있다. 왠지 모르게 인상 깊은 질문만을 마음에 품고 작품 앞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 없이 질문에 질문을 다시 해보거나, 떠올랐던 여러 연상을 다시금 살펴보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작품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미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전시회를 찾아가는 마음가짐을 유연하게 가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집중하고 사유하며 감상하고 싶은 전시는 미리 정보를 찾아 읽고 가서 시간을 넉넉히 두어 관람한다. 계획없이 찾아가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작품을 만나보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다가오는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이 흥미로울 때가 있다. 혹은 전시를 다 보고 나서야 글을 찾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펴보기도 한다. 그저 새로운 작품이나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기도 하고, 때론 마음이 복잡해서 위로나 잠시 고민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해서 찾아가기도 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기준에 맞춰져 있던 나의 태도와 욕심을 내려놓고 나서야 다채로운 모습과 방식으로 존재하는 미술을 만나기 시작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미술이 내게 주는 경험이 얼마나 다채로운 모습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매번 낯설고 새로운 미술, 그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태도에 관하여

 

 

아무리 대다수에게 이해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어떤 작품이 끌리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도 있고,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작품이 계속 시선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 그 작품이 싫은 사람이 있고, 그 작품을 더 알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계속 머무르며 바라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로 발걸음을 옮겨 버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상황이 펼쳐진다. 모두 한 작품에서 말이다.


‘나’라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나를 좋아해 주는 이가 있으며, 이유를 모르겠으나 싫어하는 이가 있고,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는 이가 있으며, 쉽게 지나가 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다. 현대미술 작품도, 사람도 정해진 방식 없이 주변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에서 닮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 [PRESS] 현대미술과 공존하는 이유

 

 

작품이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관객에게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관객은 그것을 그대로 느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욱이나 일명 ‘난해한 현대미술' 앞에서 움츠려졌다. 작품이 말하는 것을 정말 도저히 모르겠고 어느 한 부분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열심히 전시와 작품 텍스트를 읽어 보아도 특별히 다가오는 것이 없었고,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현대미술’은 모두 난해하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현대미술’에 관심은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번 글은 그랬던 과거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써 내려간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 보라고, 작품만 노려보지 말고 무엇인가 끌리고 떠올리고 있는 너 자신을 한 번 살펴보는 건 어떻겠냐고, 억지로 모든 질문에 답하려 하지 말고, 모든 작품을 이해하려는 그 집착을 내려 놓아보라고, 그렇게 부담을 내려놓고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작품을 만나며 시작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그리고 만약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내게 “왜 많은 미술 중에 낯설고 새로운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라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서 비로소 더 다양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게 되었는데, 나는 그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소통하는 게 너무 즐거웠거든. 무엇보다 일단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에 부담 갖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사실 여러 덧붙이고 싶은 말이 많았다. 미술이란 것이 한눈에 파악하고 규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자유로운 영혼 같은 것이어서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 낯선 미술”에 초점을 두며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내 생각을 말하는 지점마다 예외가 분명히 있음을 매번 덧붙이고 싶은 심정에 휩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시금 반복하지만, 어쩌면 미술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 단지 이런 질문뿐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오늘날. 작품에 따라, '나'라는 사람에 따라, 공간에 따라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태도는 정말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글은 나로부터 이어지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도 정말 동의한다(특정한 지식이나 내용이 없으면 정말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회자되는 것 같아, 이번에는 내가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과정, ‘나’로서 작품을 마주하며 일어나는 경험을 위해 가진 태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너무 무모하고 순진한 바람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정말 한 번쯤은 고민을 거쳐서 해보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러니까 여러분!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도 한 번 봐보세요!”라고 굳이 외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과거의 나와 같은 고민, 그러니까 “‘현대미술’에 관심이 가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생각과 고민하는 분들께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마지막 문장을 쓸 때가 다가오니 이런저런 핑계와 사회적 상황으로 전시를 찾아가지 못한 지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조금은 험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바람이었던 글 한 편의 여정을 마치면 잠시 오랜만에 낯선 미술 작품을 만나러 이곳저곳 훌쩍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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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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