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을 계속 써야 하나 망설일 때 - 유혹하는 글쓰기 [도서]

스티븐 킹의 창작론,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글 입력 2020.09.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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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늘 모호한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 어떤 글이 나오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문학과 같은 창작물인지, 아니면 칼럼이나 비평문 같은 분석적인 글인지 몰라, 나는 오랫동안 내 안의 그것을 찾아다녔다. 시간이 지나 그 모호한 것은 문학이란 실체를 드러냈다. 나는 그것의 윤곽을 확인한 순간 덜컥 겁이 나 그것을 부정하고 없던 일로 백지화 시켰다. 애초부터 나는 창작에 두각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므로, 이 무턱대고 찾아온 갈망, 이 근거 없는 꿈은 두려움이자 공포였다.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그리고 이는 대체적으로 사실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나는 글을 쓰는 족족, 그것이 비평이 되었든 짤막한 소설이 되었든, 마음에 들었던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나름 좋아해서 시작했던 글 쓰는 일에 큰 벽을 마주하자 지나치게 힘을 주기 시작하고 점점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처음 썼던 글보다 최근에 쓴 게 더 별로라면 나는 발전의 여지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글을 그만 써야 하나.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만큼 내게는 재능이 없는 걸까?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나? 내가 서 있는 곳은 딱 중간지점이었고, 선택의 여지가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되돌아가거나, 가던 길을 계속 가거나.


나는 작가 선배들의 도움이나 위로를 얻기 위해 글 쓰는 책들을 마구 사들였다. 이 책들은 내 글을 교정해 주거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게 현실적이든 환상을 부추기든 나는 둘 중 어느 쪽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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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티븐 킹이라는 대 작가의 이름을 건 ‘글쓰기 책’은 글 쓰는 것을 전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 모두에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티븐 킹이 누구인가. 그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이미 수많은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과 <샤이닝>, 의 소설 원작자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남기고 있는 스티븐 킹의 글쓰기 수업을 빨리 듣고 싶어 얼른 책장을 열어보았다. 제목대로 유혹당한 것이다.


책은 크게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스티븐 킹의 이력서, 연장 통, 창작론, 인생론. 이 세계적인 작가는 그의 영업 비밀을 공개하기 전에 짧은 자기소개를 하겠다며 그의 유년시절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고 밝힌다. 제목이 ‘이력서’인 만큼 짧게 끝나겠거니 읽기 시작했는데, 15페이지에서 시작하던 이력서는 130페이지에서 끝이 났다. 내가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영업 비밀을 찾기 위해 다른 페이지를 뒤적거리지 않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스티븐 킹은 별것 아닐 수 있는 일(사실 별것 아니진 않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써서 학교에 레모네이드 팔 듯 돈을 번 천재다.)도 정말 재미있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회고록 수준인 이 작가의 이야기를 나는 거의 소설을 보듯 아주 재미있게 읽어 내려갔다. 이러니 내가 낚인 것도 당연하다. 아니 어쩌면, 자기의 글쓰기 비법을 전수하기 전, 작가가 가진 이 뛰어난 역량을 독자에게 증명해내기 위해 정말 이력서를 내보인 것은 아닐까. 스티븐 킹의 능력을 충분히 확인한 나는, 그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었음에도 작가의 글쓰기에 제대로 빠져들었다.


두 번째 챕터인 연장 통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연장도구들을 소개한다. 어휘와 문법, 문단과 문장.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연장 도구이므로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사실 이 챕터에서 문법이나 어휘 실력을 높이는 방법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스티븐 킹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그 나머지는 직접 서점에 가서 문법책 하나를 사서 공부할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 챕터, 창작론. 여기서 킹은 아주 중요한 말을 한다.

 

 
“나는 소설이란, 땅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며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연장들을 사용하여 그 유물을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소설이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 내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라면 누구나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재능의 차이, 좋은 연장을 가지고 있거나 섬세하게 땅을 파 유물을 ‘온전하게’ 발굴해내는 능력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책에서, 크기가 다른 제각각의 그릇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릇들이 정원에 놓여있는데 그 그릇들은 서로의 크기를 비교하면서 좌절하거나 우월감을 느끼지 않는다. 큰 그릇은 그에게 주어진 크기대로 물을 담고 작은 그릇 역시 주어진 양을 담아낸다. 타고난 그릇의 크기가 있고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릇들은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아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맡은 바 소명을 다 해낸다.


나는 아직 내가 어떤 그릇인지 모른다. 작은 그릇일까 두려워 제대로 된 시도를 하지 않았고 완벽함이란 이상을 목표로 두면서 쓰던 것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어떤 크기의 그릇이든 무엇이 중요한가. 나에게는 발굴해 내야 할 이야기가 땅 밑에서 기다리고 있고 나는 이것을 꺼내야 한다. 자기의 소명을 아는 그릇은 그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일이 즐겁다. 글 쓰는 것이 좋고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하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다 보니 킹의 소설들이 읽어보고 싶어 지금 내 옆에는 그의 소설 <미저리>가 놓여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쓰고 싶다. 유혹에 의해 따라온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한번 후회 없이 글과 사랑에 빠져보고 싶다. 일단 오늘은 책을 좀 많이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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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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