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아웃사이더에게 보내는 시선, 신중선 작가 인터뷰

글 입력 2020.09.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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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세계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엄지 손가락들은 필연적으로 비극적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 업로드된 이미지와 텍스트는 스스로가 아닌 타자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심이 미덕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할 부담을 진다. 존재와 맞바꾼 관심,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을 소외로 이끄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책 <고요한 인생>은 그런 현대사회에 신중선 작가가 던지는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신중선 작가는 1987년 이래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해온 중견 작가로,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 문학의 추천을 받고,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특별한 하루>로 자유문학의 신인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우수문학으로 소설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선정되었다.

 

이전부터 인간의 고립과 상실, 가족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그려온 신중선 작가는 이번엔 방황하는 인물들을 소설에 등장시킨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솜씨 있게 그려낸 방황은 오늘날 독자들의 가슴을 관통시키기에 충분하다. 그가 말하는 가족, 사회, 소외는 무엇일까?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신중선 작가와 만났다.

 

 

내일의문학_고요한인생_입체.jpg


 

Q. ‘고요한 인생’, 고독과 방황을 주제로 한 본 작품에서 이와 같은 제목을 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소설집의 경우 흔히 수록 작품 가운데 하나를 책 제목으로 다는 경우가 많아요. 첫 번째로 수록된 소설 「고요한 인생」이 일곱 편의 소설을 아우르는 제목으로 적당하다고 여겨 정하게 된 게 하나의 이유이고, 또다른 이유는 ‘고요한 인생’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선택한 제목이기도 해요.

 

우리는 조용하고 편안한 삶을 바라지만 외부적인 요인들이 그리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죠. 그게 쉽지 않은 것은 우리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 부대끼며 갈등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얘기하자면, 겉으로 고요해 보이는 어떤 이의 삶도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보면 고요하지만은 않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Q. 작품 『고요한 인생』에서는 성취를 제일로 여기는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혹은 외면해온)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님은 어쩌다 이런 인물들에 관심을 두게 되고 글을 쓰시게 되었나요?

 

이 소설집에는 우리가 외면해온 혹은 외면하고 싶은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인물들이 제 소설에 등장하는 건 제 기질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어느 날 보니, 정신적 · 물질적 소수자들을 유독 제가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다소 도드라지게 서사를 풀어나간 측면이 없진 않지만 말이죠.

 

 

Q. 작가님의 소설에서는 소외, 그중에서도 가족의 소외가 두드러집니다. 흔히들 ‘피가 물보다 진하다’라고 하지요. 하지만 작가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 자매, 아버지는 타인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제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 사이에 문제가 존재하는 사람들을 저는 상당수 목도하고 있어요. 이것이 아름답지 못한 가족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죠.

 

가족이라고 해도 직계 즉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위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가의 부모나 형제자매와의 사이는 점차 이기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 그 가운데 누군가는 소외되기도 하고 그럽니다. 타인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내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몇 배 더 아픈 법이죠. 그런 이야기를 소설로 다뤄봤습니다.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소외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소외에는 외톨이, 어디에도 내 편이 없는, 고독, 외로움, 이질감 등의 감정이 포함된 어떤 현상입니다. 무리에 섞이지 못할 때 우리는 흔히 소외감을 느끼죠.

 

사회가 쳐놓은 어떤 선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바깥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고, 기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하는 따돌림이기도 하죠. 어린아이들도 소외를 느낍니다. 소외는 여러 방식으로 우리 주변에 포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현대사회는 소외사회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인싸’ 혹은 ‘아싸’와 같은 말을 요즘 많이 쓰던데요, 아웃사이더로 살게 되면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급적 인사이더가 되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자신이 소외된 자라고 여기는 순간 불행이 엄습해 들어오고, 그런 상태가 길어지면 어둠에 빠져들고 우울증상도 나타나죠.

 

작품 「언니의 봄」과 「아이러브유」가 이에 해당됩니다. ‘관종’이라는 신조어가 있어요.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저는 어쩐지 가볍게 봐지지 않아요. 세상에서 소외되기 싫어 안간힘을 쓰다 보니 관종 취급을 받게 된 거 아닐까요. “이봐, 나 좀 봐. 제발 나 좀 봐줘!” 이런 외침이 제 귀에는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인은 그만큼이나 소외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Q. 많은 독자가 다양하게 추측했을 것 같은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수록 단편 <고요한 인생>의 서술자는 왜 주인공을 지칭하면서 ‘너’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나요?

 

이 소설을 구상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죠. 그러다가 정체가 불분명한 화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모호하기도 한 이 소설 분위기와 맞을 거라 여겼던 거죠.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되 관찰자를 등장시켜서 더할 수 없이 차분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메마르게 정감 없이 서술해보자, 이렇게 해서 ‘너’를 만들어냈습니다.

 


Q.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어떤 테마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중선 작가님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주변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자, 마이너리티가 제 소설의 테마로 등장하는 때가 많아요.

 

저는 십대에서 이십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염세적이었어요. 심각했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죠. 수업이 끝난 후 종례를 기다리는 동안의 왁자지껄한 학급 분위기에도 섞이지 못하고 하굣길에 오롯이 혼자 교문을 나서기도 했어요.

 

제가 자초한 상황이라 누구 탓도 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굉장히 고독했어요. 버림받은 느낌이었죠.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로 늘 외로웠어요. 당시 저는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 여겼어요. 예민했던 시기에 제가 가지고 있던 온갖 감정들이 제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소설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Q. 방황하고 소외된 인물들의 참혹한 상상력이 눈에 띕니다. 이런 소설적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소설적 아이디어는 사방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니까요. 특별한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금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몇 년 전 부동산 이슈로 사회가 들끓었을 때 「언니의 봄」을 썼고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빈민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되었다는 어느 마을에 대한 기사를 읽고는 「아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장답사 후에 스토리를 만들었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슬프고 힘든 이야기, 가혹하고 참혹한 사건들을 자주 접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제 가슴을 치는 이슈가 더러 있어요. 이런 경우 기억해 뒀다가 틈틈이 머릿속으로 굴립니다. 작게 뭉친 눈덩이를 굴려서 큰 눈사람을 만들 듯이 이야기의 부피를 키워갑니다.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써나가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저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제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 있으면 그 것으로 작업하게 될 테죠. 쓰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뭘 쓰건 어쨌든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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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사진작가 김홍기

 

 

++

 
가전제품 광고 속에서는 세련된 장식의 깔끔한 집 안에서 따뜻한 햇살 속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이 최첨단 제품의 기능을 마음껏 즐기며 화목하게 웃는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일 것이라고 기대되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가족이 그만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부장제의 폐해가 이제야 조금씩 구체적인 언어로 발화(發話)되면서 세상에 겨우 얕은 금 한 줄 균열을 내고 있는 시절이다. 우리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 시공간은 위안, 편안한 휴식 등의 말과 얼마나,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
 
『고요한 인생』 속 아이들은 아이여도 아이 같지 않다. <아들>의 여자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짐짓 어른스런 말투'로 아들을 대하고, <고요한 인생>의 수은은 노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은 아이에게 아이다움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시선이 머문 가난의 모습은 그렇다. 가난 탓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모에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아들>의 아들은 한 번 실수로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고요한 인생>의 아이는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였다. 그리도 험한 날씨였던 날 태어났고, 그때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사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 무렵만 되면 몸이 붓고 아파온다. 원죄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의 존재가 희망이거나 축복이지만은 않은 암울한 현실이다. <아들>의 '엄마를 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아버지의 육체까지 망가뜨'린 아들은 '단 한 차례도 행복하고자 희망한 적이 없다.' 희망과 기대 속에서 맛본 좌절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예 희망 자체도 부재했다.
 
<언니의 봄>의 난희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이사를 갔다. 난희언니에 대한 식구들의 부채의식은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게도 했는데, 화자인 셋째 딸도 난희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사건당일로부터 반년 정도 전쯤'이었으니 이들 가족에게도 '함께함'의 시공간은 거의 부재했다. 난희언니가 재력 있는 형부를 만나 결혼하는 동안 가족은 그들의 가난을 난희의 결혼으로 극복해 보려 했을 뿐이었고, 난희언니의 집안이 점차 어려워졌을 때에는 그들 각자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재력을 키워갔고, 피부 관리에 공을 들이면서도 정작 난희언니의 상태에는 무관심하였다.
 
『고요한 인생』에서 시간과 공간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함께함'이 소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뽀얀 먼지 속에서 독립적인 개체들이 각자자신의 고뇌의 시공간을 채울 뿐이었고, 그 속에서 관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남겨진 아이들은 아이다운 시간을 얻지 못한 채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다.
 
『고요한 인생』은 유독 특정 모티프 하나가 강렬하게 인상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언더독>은 제목 자체가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를 뜻하는 용어이다. 존중받지 못한 삶 탓에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인' 갑석의 자격지심이 '언더독(under dog)'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낮술>의 오징어 다리나 <그 집 앞>의 전화기는 타인의 신호를 잡기 위해 뻗어내는 더듬이와도 같다. 전직 피디, 상무, 부장들이 여전히 그 직책으로 서로를 부르며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 낮술을 하면서 오징어 다리가 여덟 개인지 열 개인지 하는 질문이 제시되었다. '볼품없이 얄따란 두 다리와 듬성듬성 나 있는 털들' 따위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권부장은 유독 길게 뻗은 두 개의 오징어 다리가 더듬이 팔이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먹이를 잡을 때나 사랑을 나눌 때 사용한다는 그 길다란 오징어 팔을 흔들며 암컷 오징어나 껴안는 환상에 빠진다.
 
<그 집 앞>의 전화기와 벨소리는 타인을 향한 남자의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나, 결정적으로 홍은동 이층집 여자가 전화를 해왔을 때 남자는 늘 그랬듯 환청이라 생각하고 무시하였다. <아이 러브 유>에서 인형 배를 누르면 튀어나오는 '아이 러브 유' 하는 청명한 목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는 마음이다.
 
『고요한 인생』작품 속 인물들에겐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소거되어 있고, 절망에 기반한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현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죽음 혹은 사라짐은 먼지와도 같이 인물들의 삶을 감싼다. 평범한 일상인 듯 자연스러운 도입부를 지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성이 흡입력 있어 술술 읽히는 맛이 있고 '언더독 효과'처럼 가망 없어 보이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 가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는 『고요한 인생』 통해 최소한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아파하는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이라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
 
고요한 인생
-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
 

지은이 : 신중선

출판사 : 내일의문학

분야
한국소설

규격
134*200

쪽 수 : 204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5,000원

ISBN
978-89-98204-76-1 (0381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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