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계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엄지 손가락들은 필연적으로 비극적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 업로드된 이미지와 텍스트는 스스로가 아닌 타자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심이 미덕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할 부담을 진다. 존재와 맞바꾼 관심,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을 소외로 이끄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책 <고요한 인생>은 그런 현대사회에 신중선 작가가 던지는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신중선 작가는 1987년 이래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해온 중견 작가로,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 문학의 추천을 받고,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특별한 하루>로 자유문학의 신인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우수문학으로 소설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선정되었다.
이전부터 인간의 고립과 상실, 가족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그려온 신중선 작가는 이번엔 방황하는 인물들을 소설에 등장시킨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솜씨 있게 그려낸 방황은 오늘날 독자들의 가슴을 관통시키기에 충분하다. 그가 말하는 가족, 사회, 소외는 무엇일까?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신중선 작가와 만났다.
Q. ‘고요한 인생’, 고독과 방황을 주제로 한 본 작품에서 이와 같은 제목을 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소설집의 경우 흔히 수록 작품 가운데 하나를 책 제목으로 다는 경우가 많아요. 첫 번째로 수록된 소설 「고요한 인생」이 일곱 편의 소설을 아우르는 제목으로 적당하다고 여겨 정하게 된 게 하나의 이유이고, 또다른 이유는 ‘고요한 인생’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선택한 제목이기도 해요.
우리는 조용하고 편안한 삶을 바라지만 외부적인 요인들이 그리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죠. 그게 쉽지 않은 것은 우리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 부대끼며 갈등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얘기하자면, 겉으로 고요해 보이는 어떤 이의 삶도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보면 고요하지만은 않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Q. 작품 『고요한 인생』에서는 성취를 제일로 여기는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혹은 외면해온)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님은 어쩌다 이런 인물들에 관심을 두게 되고 글을 쓰시게 되었나요?
이 소설집에는 우리가 외면해온 혹은 외면하고 싶은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인물들이 제 소설에 등장하는 건 제 기질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어느 날 보니, 정신적 · 물질적 소수자들을 유독 제가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다소 도드라지게 서사를 풀어나간 측면이 없진 않지만 말이죠.
Q. 작가님의 소설에서는 소외, 그중에서도 가족의 소외가 두드러집니다. 흔히들 ‘피가 물보다 진하다’라고 하지요. 하지만 작가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 자매, 아버지는 타인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제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 사이에 문제가 존재하는 사람들을 저는 상당수 목도하고 있어요. 이것이 아름답지 못한 가족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죠.
가족이라고 해도 직계 즉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위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가의 부모나 형제자매와의 사이는 점차 이기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 그 가운데 누군가는 소외되기도 하고 그럽니다. 타인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내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몇 배 더 아픈 법이죠. 그런 이야기를 소설로 다뤄봤습니다.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소외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소외에는 외톨이, 어디에도 내 편이 없는, 고독, 외로움, 이질감 등의 감정이 포함된 어떤 현상입니다. 무리에 섞이지 못할 때 우리는 흔히 소외감을 느끼죠.
사회가 쳐놓은 어떤 선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바깥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고, 기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하는 따돌림이기도 하죠. 어린아이들도 소외를 느낍니다. 소외는 여러 방식으로 우리 주변에 포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현대사회는 소외사회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인싸’ 혹은 ‘아싸’와 같은 말을 요즘 많이 쓰던데요, 아웃사이더로 살게 되면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급적 인사이더가 되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자신이 소외된 자라고 여기는 순간 불행이 엄습해 들어오고, 그런 상태가 길어지면 어둠에 빠져들고 우울증상도 나타나죠.
작품 「언니의 봄」과 「아이러브유」가 이에 해당됩니다. ‘관종’이라는 신조어가 있어요.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저는 어쩐지 가볍게 봐지지 않아요. 세상에서 소외되기 싫어 안간힘을 쓰다 보니 관종 취급을 받게 된 거 아닐까요. “이봐, 나 좀 봐. 제발 나 좀 봐줘!” 이런 외침이 제 귀에는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인은 그만큼이나 소외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Q. 많은 독자가 다양하게 추측했을 것 같은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수록 단편 <고요한 인생>의 서술자는 왜 주인공을 지칭하면서 ‘너’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나요?
이 소설을 구상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죠. 그러다가 정체가 불분명한 화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모호하기도 한 이 소설 분위기와 맞을 거라 여겼던 거죠.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되 관찰자를 등장시켜서 더할 수 없이 차분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메마르게 정감 없이 서술해보자, 이렇게 해서 ‘너’를 만들어냈습니다.
Q.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어떤 테마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중선 작가님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주변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자, 마이너리티가 제 소설의 테마로 등장하는 때가 많아요.
저는 십대에서 이십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염세적이었어요. 심각했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죠. 수업이 끝난 후 종례를 기다리는 동안의 왁자지껄한 학급 분위기에도 섞이지 못하고 하굣길에 오롯이 혼자 교문을 나서기도 했어요.
제가 자초한 상황이라 누구 탓도 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굉장히 고독했어요. 버림받은 느낌이었죠.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로 늘 외로웠어요. 당시 저는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 여겼어요. 예민했던 시기에 제가 가지고 있던 온갖 감정들이 제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소설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Q. 방황하고 소외된 인물들의 참혹한 상상력이 눈에 띕니다. 이런 소설적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소설적 아이디어는 사방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니까요. 특별한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금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몇 년 전 부동산 이슈로 사회가 들끓었을 때 「언니의 봄」을 썼고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빈민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되었다는 어느 마을에 대한 기사를 읽고는 「아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장답사 후에 스토리를 만들었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슬프고 힘든 이야기, 가혹하고 참혹한 사건들을 자주 접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제 가슴을 치는 이슈가 더러 있어요. 이런 경우 기억해 뒀다가 틈틈이 머릿속으로 굴립니다. 작게 뭉친 눈덩이를 굴려서 큰 눈사람을 만들 듯이 이야기의 부피를 키워갑니다.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써나가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저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제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 있으면 그 것으로 작업하게 될 테죠. 쓰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뭘 쓰건 어쨌든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 사진작가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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