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내면의 공간화, 시오타 치하루 [시각예술]

실을 통해 삶과 죽음을 말하는 작가
글 입력 2020.08.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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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하얀 공간에 들어선다. 전시장 직원분이 건네주는 파란색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

 

하얀 실이 거미줄처럼 전시장 전체를 뒤덮은 공간, 시오타 치하루의 ‘Living Inside’라는 작품이다. 너무 새하얘서 현실로부터 분리된 기분이 든다.

 

공간 안에는 하얀색 원형 좌대가 있다. 좌대 위, 빨간색 실로 다양한 오브제들이 얽혀있다. 회화의 선을 그리듯 실을 통해 공간에 선을 그리고 이를 모아 면을 만들어 우주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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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는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작업에 투영했다.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의 기억, 할머니의 묘에서 느낀 공포, 두 번의 암 투병으로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감정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하며 개별적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얼마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에서는 붉은 실을 이용한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Between Us’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놓여진 의자와 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개별적인 존재인 동시에 주변과 무수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는다.

 

동시에 누군가가 사용했던 의자들은 이전 주인의 감정과 의식이 깃든 오브제로 물리적인 실체는 사라져도 그들의 존재와 기억은 우리 곁에 남는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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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에서 실들은 내면에서 서로 관계되는 수많은 생각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과 관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공간에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실을 통해 시오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뿐 아니라 실존을 향한 탐구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오늘따라 시오타 치하루의 새하얀 공간과 붉은 실로 얽힌 오브제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최근에 느낀 감정을 공간화한다면 바로 그 작품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심화와 함께 좋지 않은 개인적 상황들로 혼자 내면을 정리해야 하는 필요가 있었는데, 비워져 있는 것 같지만 무수히 많은 실이 얽혀있고, 지우고 싶지만 오브제들이 얽혀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 공간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것 같았다.


‘Living Inside’는 파라다이스시티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최되는 <오! 마이시티>전에서 관람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익숙한 도시를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한 전시로, 아니발 카탈란(Anibal Catalan), 엘름그린&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이배경, 시오타 치하루(Chiharu Shiota), 파블로 발부에나(Pablo Valbuena)등 세계적인 현대미술작가 다섯 팀이 각자 개인의 경험을 통해 도시의 의미를 살펴본다.

 

전시는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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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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