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아하는 것들을 잘 쓰는 법 - 이슬아 작가 [사람]

글 입력 2020.08.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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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건 어렵다. 대상이 얼마나 멋진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수식어와 비유를 잔뜩 쓰게 되고 문장이 쉽게 느끼해지기 때문이다. 생일편지랑 비슷하다. 친구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담백하게 전하고 싶어서 열심히 편지를 쓰지만, 다 쓰고 보면 적힌 건 상투적인 문구 뿐이다. 마음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을, 책을, 영화를, 음악을 유려하게 쓰기 위해 택한 방법은 찬찬히 뜯어보기였다. 대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서도 그를 표현할만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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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루어진 비포 트릴로지(trilogy)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너무 좋아한다' 보다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이 영화를 얼마나 아끼는지 얘기하고 싶어서 영화를 여러 번 봤다.

 

틈날 때마다 영화 클립을 찾아본 결과 누가 나에게 인생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비포 선라이즈라는 짤막한 답변과 함께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비엔나에서 내려요'라는 제시의 말에 망설이다 함께 내리는 셀린, 끊임없는 대화, 비엔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언뜻 오가는 수줍은 시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도 같이 설레곤 한다고.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졌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을 명확하게 말하는 대신에, 듣는 이가 자연스레 '얘는 이 영화를 아끼고 좋아하는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조금씩 배웠다.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연습을 하는 나와 달리 작가들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멋있는 장면에서 '멋있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멋지다고 느꼈던 순간을 묘사하고 설명하면, 독자는 자연스레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 역시 이것에 능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연습한 걸 토대로 오늘은 이슬아 작가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최대한 담백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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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alee

 

 

이슬아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가방에 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넣어 다니면서 읽고, 그걸 본 친구가 '이 책 뭐야?'라고 묻는 순간부터 입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슬아 마케팅 담당자' 같은 나를 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다. 내가 봐도 나의 덕질은 끝을 모르고 매일 깊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작가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인 이스라디오를 자주 듣고, 유튜브에 이슬아를 종종 검색해보고, 스토리에 입술 사진의 프로필이 뜨면 (작가님 프로필이다) 반갑게 클릭을 누르는 날 보면 빅뱅 좋아하던 중학생 시절의 열정이 보이는 듯하다.

 

현재의 내가 이슬아 작가를 덕질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시간을 잠시 돌려본다.

 

처음 이슬아의 글을 읽은 건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였다. 작년 여름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사 갔는데 단순히 주변 친구의 추천으로 '한번 읽어볼까?'하는 마음에 구매한 것이었다. 수화물은 총 30kg이되어야 하는데 이슬아 수필집을 한 권 넣으니 옷 몇 벌을 빼야 할 정도로 두툼한 책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해서는 매일 기숙사 친구들과 놀고먹느라 책을 가까이하지 않다가, 주변 유럽 국가로 여행을 갈 때면 이상하게도 그 책을 늘 챙기곤 했다.

 

수업이 없는 주에 맞춰 친구들과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까만 백 팩에 짐을 싸는데, 그날도 역시 이슬아 수필집이 눈에 띄었고 나는 습관처럼 책을 가방 속에 넣었다. 1월 말의 코펜하겐은 프랑스보다 추웠고, 우리는 종종 카페에 들어가서 몸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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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얘기를 했지만, 일기도 꼭 썼다. 카페 음악과 주변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각자의 코펜하겐을 기록했다. 일기를 오랜만에 쓰는 나는 첫 문장을 짓는 게 어려웠다. 그럴 때면 가방에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꺼내 읽으며 그녀가 하루를 기록하는 방식을 눈여겨봤다.

 

시선이 따뜻하고 섬세했고 설명은 촘촘했다. 일기를 다 쓰고 나서는 서로의 일기를 돌려 읽으며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무언가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평소 여행은 오늘이 지나면 끝이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다이어리에 기록해놓은 오늘은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자 코펜하겐의 밤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팟캐스트에 이슬아를 검색해서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제목을 단 에피소드를 재생했다. 별생각 없이 팟캐스트를 듣던 나는 아래의 문장을 듣고는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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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상대가 괜찮아졌으면 하는 마음과 애정이 담겨있는 문장들이었다. 이 글을 받아본 당사자가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는 건 명확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코펜하겐에서 길을 걷던 사람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행 내내 이슬아의 목소리, 글과 함께하다가 프랑스로 돌아온 나는, 여행하지 않을 때도 이슬아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끼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들을 따뜻하게 설명하는 이슬아처럼 나도 주변 친구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하루의 일정을 파악하도록 설정되어있던 시선의 폭이 조금씩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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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으면 나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다. 짧은 템포로 끊어치는 문장들은 편하게 읽히고, 그녀 주위의 사람들을 재치있고도 친숙하게 보여줘서 에세이가 아니라 시트콤 한 편을 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이슬아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들을 능숙하게 쓴다. 현재 그녀의 글은 유려하고도 깔끔하지만, 이슬아 작가 역시 나처럼 좋아하는 걸 느끼하게 써서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을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글이 그녀가 고민하던 시간들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코펜하겐에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울고 싶었고, 이슬아 작가를 덕질하게 되었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내가 현재 독립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반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커다란 꿈에 비해 추진력이 약한 것이 고민이던 내가 이렇게 생산적으로 살고 있다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슬아 효과인가.

 

이슬아 작가처럼 매달 스무 편의 에세이를 쓸 자신이 없는 나라서 아직은 화려한 비유와 미사여구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종종 '반짝이는 금색 포장지 같은', '크고 화려한 상자 안에 막상 들은건 없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럴 때면 비포 선라이즈를 '너무 좋아해' 라고 대답하기 싫어서 영화를 반복해서 보던 마음으로 이슬아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담백하게 쓰는 법을 배운다. 싸랑과 용기를 듬뿍 담아 글을 쓰면 언젠가 나도 좋아하는 것들을 잘 쓰게 되겠지?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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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미녕
    • 저도 이슬아 작가 팬인데, 에디터님이 담백하게 써놓은 글을 읽으니 반갑네요..요즘은 일간 이슬아 받아보면서 '나도 쓰고싶다'는 마음이 차오르는 나날입니다. 저또한 수필집으로 입문(?)했는데 ㅋㅋ필사도 하고 그랬네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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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이
    • 어제밤 이슬아수필집을 읽고 '이슬아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로 시작하는 일기를 썼는데 다른분들도 같은 마음을 느낀다니 너무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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