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느 시골 어귀, 울타리 밖의 여름 이야기. 연극 '미래의 여름'

글 입력 2020.08.2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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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떨어지던 어느 여름날, 친구와 오랜만에 ‘미래의 여름’이라는 연극을 보러 혜화를 찾았다.

 

덥고 습한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는 현실과는 다르게 연극의 포스터는 맑고 화사한 어느 여름날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밝은 여름의 향기는 시골 어귀에서 일어나는 순수하고 맑은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했다.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읽어 본 시놉시스는 이러했다.

 

 

“확 마 가시나, 어른들 말하는데 확! 니 가마이 안 있나!”


궁금한 것도 많고 말도 많은, 스스로 또래보다 조숙하다고 믿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이미래'. 그런 미래를 부모님은 귀찮게 생각하는지 방학 때마다 시골에 있는 고모 집으로 보낸다. 


노처녀 고모는 만화박사에 영어노래도 많이 알고 있는, 미래의 단 하나뿐인 '어른 친구'! 미래가 내려갈 때마다 고모는 항상 새롭고 재밌는 걸 알려준다. 그런 고모가 마냥 좋은 미래. 그러나 왠지 모르게 마을 사람들은 고모를 그렇게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 


거기에 속상한 미래는 고모를 위한 작전을 짜게 되는데...

 

 

시놉시스를 읽으면서 역시 이 연극은 맑은 여름날처럼 순순하고 밝은 청량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혼자 예상을 했다. 스스로 조숙하다고 믿는 '미래'는 되게 대단한 생각으로 고모를 도우려고 하지만, 아이는 아이였고. 그렇게 시도한 작전으로 인해 귀엽고 작은 헤프닝이 일어나는 우당탕탕 연극이 될 거라 생각하며 연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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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내 예상은 정말 빗나갔다는 생각을 했다. 마냥 귀엽고 순수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 연극은 관계에 있어 ‘울타리’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체에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존재하고 있고, 그 밖을 벗어나면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존재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밖으로 나가버린 이들을 손가락질하고 험담을 한다.

 

미래의 고모인 ‘동아’는 바로 이 울타리 밖에 존재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벗어난 (타인에 의해 이미 벗어난 것으로도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에서는 '울타리'라는 메세지에서 살짝 멀어졌다는 느낌을 들었다. 극 후반 즈음에서 왜 그녀가 자발적으로 울타리를 밀어내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못했던 것 같다. 꼭 과거 ‘찬우’와의 관계로 인해 벗어났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의 ‘울타리’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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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는 내가 그들의 사랑 혹은 감정선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큰 이유일 것 같다. 어떠한 마음인지 이해는 하는데, 왜 그렇게까지 되어야 하는지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각자의 가정사로 인해 의지할 곳이 서로밖에 없던 십 대 끝자락에서 ‘동아’와 ‘찬우’는 서로의 미래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찬우에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지하는 동아가 버거웠고, 대학이라는 또 다른 돌파구를 발견한 찬우는 그렇게 동아 곁을 떠났다. 남겨진 동아는 버려졌다는 슬픔과 혹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세상과 단절하고 외로이 생활해왔다. 꽤 오랜 시간 그녀는 그렇게 울타리 밖을 벗어나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 '동아'의 상황이 안타까우면서도 조금은 답답했다. 물론, 그녀의 상처가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공감을 못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 홀로 아파했던 그녀가 안쓰러웠고, 답답했다. 떠난 그 사람은 그녀를 잊고 잘 살 텐데, 왜 혼자 감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오랜 시간 그 사람을 왜 잊지 못하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이런 부분이 이해는 갔지만, 공감을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마무리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살짝은 모호해졌다고 느꼈다. 공동체의 '울타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인지, 그녀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연극이 끝나고 이 극에서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같이 보러 간 친구와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저 '동아'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구나. 나와는 다르게 이런 삶을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에세이가 극으로 만들어진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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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메세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연극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무대는 변화가 없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 이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몰입도를 높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극 중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서술자 역할을 하는 '미래'역의 김희정 배우님은 초등학생 연기를 하다가, 문득 어른의 이야기를 할 때 (옷의 변화는 없었지만)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해줬다. 시점에 따라 목소리 톤과 표정을 다르게 하여 변화하는 지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어 몰입이 깨지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대단하다고 느꼈던 배우는 다양한 역할로 등장했던 '장세환' 배우님이었다. 미래의 아버지부터 찬우의 어머니, 동네 아저씨 등 극 중 여러 인물로 변화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느꼈다. 여러 역을 소화하는 배우가 자칫 역할을 잘 소화해내지 못하면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방해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이 하나 없었다.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때 관객들로 하여금 즐거운 웃음을 나게 했고, 극의 활기를 띠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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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몰입도를 높인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있었지만, 어느 시골 마을의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한몫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도권을 벗어나서 살았던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도에 있는 깡시골촌인 만큼 시골 분위기는 꽤 많이 느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오랜만에 한 번씩 내려가면 사투리로 ‘언제 이렇게 많이 컸냐, 못 알아볼 뻔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나와 다르게 누구 집의 딸이라고 하면 다 알아채는 동네 분들이 항상 계셨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이 연극에 그대로 표현이 되었다. 부담스러우면서도 정겨운 관심을 담은 대사가 한편에 묻혀있던 기억을 떠올려 괜스레 반가운 느낌이 들게 했다. 거기에 더해진 무대 세트, 무대 장치들과 옛날 음악. 귀뚜라미, 풀벌레 우는 소리가 배경음이 여름날의 시골 분위기를 완성했다.

 

오랜만에 봤던 이 '미래의 여름'은 올 초부터 이어지는 코로나와 길고 길었던 여름 장마로 인해 우울했던 기분을 환기해주는 연극이었다. 살포시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더위를 살짝 식혀주는 빗소리, 집을 조금만 벗어나면 보이는 강가 등 어느 시골의 푸른 여름날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고, 그 속에 잠시나마 함께 있던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이 연극이 다시 공연하게 된다면, 그때는 이런 시골 분위기를 겪어봤을 우리 엄마와 함께 보러와서 옛 추억을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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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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