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지개 시리즈-초록' 자연의 싱그러움을 배경으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8.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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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숲과 풀을 많이 봐라. 그럼 눈이 좋아진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주위에 초록이 시야에 들어오면 잠시 멈춰서 뚫어지게 쳐다봤다. 습관처럼 초록을 보는 순간은 항상 오랫동안 머무르는 시간을 선사했다. 그렇게 한참을 응시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초록은 내게 평정을 유지하게끔 도왔다.

 

결론적으로 내 시력은 좋은 쪽은 아니다. 아무리 초록을 많이 보려고 했다지만 도시의 삶 속에서 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담으로 우리 엄마의 시력은 양쪽 눈 1.0으로 초록을 많이 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셨다.

 

자연의 색이다. 초록의 이미지는 짙든 옅든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 자라나는 새싹은 생명과 활기를 뜻한다. 초록의 심리는 균형과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초록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부드럽지만 엄격함을 갖춘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 같다. 초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긍정적인 편이다.

 

초록을 매개로 대놓고 초록에 대해 사유해보고 우리가 미처 미뤄뒀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전시가 있다. 은평문화재단의 기획전시 <내 이름은 초록>이다. 4명의 작가가 참여한 소규모 전시인데 마치 한 사람만의 숲을 재현해놓은 듯 싱그럽다.

 

 

내이름은초록.jpg

 

 

사방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실을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숲’으로 설정하고 관람객들이 다양한 감각들을 이 공간 안에서 일깨울 수 있게 조성하였다. 작가들이 생각하는 초록의 이미지는 다양한 기법으로 구성됐다.

 

그중 내가 눈여겨본 건 ‘잡초’에 대한 이야기였다. 잡초의 정의는 누가 내릴 수 있는 건가. 잡초가 가지고 있는 무한대의 가치는 셀 수가 없을 텐데. 우리가 모르는 이름 모를 풀은 잡초로 전락하곤 한다.

 

김원정 작가의 <잡초 그 『의미없음』에 대하여>는 디지털 싱글 채널이다. 화면 속 인터뷰 대상은 시골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들은 잡초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매길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하셨다.

 

화면 속 무참하게 잘려 나가는 잡초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왔다. 분명히 이름이 있었다. 다만 사람이 그 풀들의 가치를 알아봐 주지 못함이 애석했다. 우리가 멋대로 잡초를 규명하고는 있지 않았나 하는 쓸쓸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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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이미지에 상응하는 영화도 있다. 잔잔하면서도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농사하고 요리하고 자전거 탄다. 그 안에 숨겨진 스토리가 존재하기는 하나 영화의 분위기는 왠지 모를 자연의 포근함에 빠지게 한다.

 

요동치고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영화 속 흩어진 초록의 이미지는 카메라 앵글에 따라 파편화되어 영화를 보는 관객 곁에 머문다. 사계절마다 자신의 옷을 갖춰입는 자연을 보는 맛이 있다.

 

외로운 도시 삶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고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유해간다.  이곳에는 혜원의 오래된 친구 둘이 있다. 남이 정해놓은 삶을 살기 싫어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재하와 도시의 삶을 동경해온 은숙은 혜원의 곁에 머물며 혼자 사는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한다.

 

어쩌면 조금의 느림이 해법일 수 있다. 빠르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붙잡기에는 버겁다. 가끔은 달려가는 시간 속에 쉼표를 찍고 멈춰본다. 자연과 함께하는 영화가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걸지도.

 

<리틀 포레스트>와 비슷한 포맷으로 조용하고 공기 좋은 시골을 배경 삼아 자급자족으로 밥 먹는 TV예능이 있다. 나영석 피디가 연출한 <삼시세끼 시리즈>다. 최근 종영한 <삼시세끼 어촌편5>는 최고 시청률 12.2%를 찍으며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2014년 <삼시세끼 정선편>을 시작으로 꾸준히 여러 시골을 배경으로 자급자곡 유기농 라이프를 보여준 <삼시세끼 시리즈>는 차승원의 요리 솜씨와 레시피가 매회 화제였다. 물론 그가 나오지 않은 시리즈도 존재했지만 <삼시세끼>에서 차승원의 존재감은 어마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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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의 인기요소에는 광활하고 푸르른 자연과 어우러진 출연진의 그림도 포함되지 않을까. 나영석 피디는 <삼시세끼>를 등에 업고 새로운 힐링 예능 <여름방학>을 선보였다.

 

그러나 꾸준하게 사랑을 받았던 <삼시세끼>와 다르게 <여름방학>은 시청자들의 냉랭한 평가를 받았다. 초반부에 불거졌던 왜색 논란과 더불어 아무리 잔잔한 힐링 예능을 표방했다지만 재미 요소가 너무 적고 프로그램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대다수였다.

 

똑같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밥 먹고 떠들고 노는 예능인데도 시청자의 온도는 급격하게 달랐다. 물론 <여름방학>은 아직 방송 중이니 언제든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

 

초록의 싱그러움이 예능의 인기 요소에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는 않는 듯하다. 자연을 선보이는 건강한 초록빛을 뿜어내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듯하다. 초록이 주는 이 어루만져 주는 기분을 포기할 수는 없을 테니.

 

 

 

에디터 이지윤.jpg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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