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른 즈음의 참상과 환상 [도서]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서른 즈음에 마주하게 되는 참상, 김애란 소설 <비행운> 중 '서른'에 관하여.
글 입력 2020.08.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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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난 32살이 되면 결혼할 거야.”
 
 
내가 엄마에게 자주 하곤 했던 말이다. 왜 하필이면 서른두 살이야? 엄마는 되물어 오곤 했다. 그때쯤이면 안정된 상태의 내가 있을 거야,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직장도 자리 잡고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을 것이라고. 아직 가시지 않은 젊음의 생기와 원숙미가 공존하는 과도기적인 그 나이가 매력적이었다. 막연하게 동경해오던 삼십 대였다. 작가는 그랬던 내게, 서른의 참상을 보여주었다.
 
왜 하필이면 제목이 ‘서른’일까? 아마 정확히 ‘서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기보다는 서른, 삼십 대가 지닌 사회적인 나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 역시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때 비록 나이는 겨우 한 살이 더 늘어났을 뿐이었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처럼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서른이라는 나이도 일종의 책임감이 더 막중해지는, 진짜 ‘어른’의 길로 들어가는 나이인 것이다. 청춘이 가버리고 행하는 일들이 과정이 아닌 결과가 되어버리는 나이. 그런 서른 언저리의 세대들이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의 민낯을, 작품은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품은 주인공 ‘나’가 10년 전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답장을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지는 ‘언니’가 '나'에게 보낸 엽서와 선물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선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을 읽으며 언니가 내게 준 선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며 읽어 내려가야 했다.
 
편지의 서막에서 주인공은 서울에서 구한 여섯 번째 자취방에서, 공책만 한 창밖을 바라보며 별안간 ‘예쁜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다. 아파트의 네온등을 보며 자신의 방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그녀가 무언가 현실로부터 멀리 느껴질만한 일을 했음을 암시한다. 그녀가 쓴 ‘깨물어 먹고 싶을 만큼, 예쁜 서울’이라는 표현이 사실은 반어법의 의미, 현실에 대한 비아냥임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다 알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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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물어 먹고 싶을 만큼, 예쁜 서울’이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읽고 다시 본 서울의 야경은
왜인지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같은 풍경이라도 문학으로 씻기고 나면
맑은 물을 들여다보는 듯 훨씬 깊이 보이게 된다.
 
 
대체 어떤 일이 그녀를 그렇게 도피적이고 꼬인 존재로 만든 것일까. J대 불문과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주인공은 그간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휴대전화마저 없애버리게 한 그 ‘사정’에 대해 풀어나간다. 담담한 말투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이 얘길 언니에게 밖에 할 수 없어 편지를 써요. 다 써놓고 끝끝내 부치지 못할지라도. 오늘 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와 같은 대목에서 그녀가 얼마나 내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 '사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 20대 때 했던 여러 아르바이트들을 나열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면목동 학원에서 일어났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였다. 천사 같은 얼굴로 담배 냄새를 풍기며 자신을 따랐던 제자, 그 제자로 인해 가슴 한쪽에 슬며시 온기가 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소설이 나를 그토록 깊은 우울로 몰고 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다시 한 번 보고 나서야 주인공이 학원에서의 장면들을 왜 그토록 편지에 상세히 적어놓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읽었을 때엔 따뜻하고 웃음 짓게 하는 대목이었다면 같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로 읽을 때는 한 없이 먹먹하고 우울한 대목이었다. 20대에 학원 아이들을 보며 맑게 웃음 지었던 주인공은 서른이 돼서 다시 학원제자 혜미를 만나고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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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눈 뜨고 보니 좀 더 나쁜 채무자가 되어버렸다는 ‘나’는 한창 가세가 기울던 중 전 남자 친구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열심히 논문 쓰다가 빚을 안고 헤어지게 된 전 남자 친구는 멀끔한 모습으로 ‘나’의 눈앞에 나타난다. “살아보니 사람이 제일 큰 재산인 거 같더라.”는 남자 친구의 말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말이었다. 그는 그녀를 정말 재산으로 여긴다. 그의 권유로 입사하게 된 회사는 불법 다단계 회사였다. 사람이 재산인 회사.
 
‘열심히 하면 된다.’ 는 강연자의 말에 혹하게 된 그녀는 결국 그곳에 입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회사가 아니라 지옥이었다. 편지에 묘사된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절박함을 악용하는 사회에 환멸이 느껴졌다. 배고픔에 간식을 요구하던 순수하고 가난한 청년을 그렇게 만든 사회가 미웠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스물 초반 낭만주의자인 나에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너무도 버겁고 힘겨웠다. 서른 즈음에 마주하는 현실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서.
 
입사한 후 들어간 합숙소 신발장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작품을 다시 읽을 때에야 그것이 다단계 회사에 들어온 이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놓는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공포영화의 반전처럼 내 뇌리에 남아 한동안 가위눌림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합숙소에서 그녀가 겪은 생활은 정말 감옥이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파투나고 돼지죽 같은 식사를 하며 아침에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자신을 둔갑해야 하는,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합숙소 창문에 쇠창살이 달려있다는 묘사는 이런 감옥 같은 합숙소 생활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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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팔고 있던 건 사람이었어요, 언니. 그런데도 저는 끝까지 그 일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려 애썼어요.’
 
얼마나 절박해야 이토록 이성의 눈이 멀 수 있을까. ‘나만 아니면 된다.’ 는 이기적인 생각들은 대체 얼마나 아프고 절박해야만 들 수 있을까.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으로 나라가 아파할 때, 고3 입시를 앞두고 있던 나는 개인적으로도 밀려오는 자괴감과 절망감에 그들의 고통을 공유하기 버거워했다. 지금 회상하니 많이 부끄럽지만, 당시의 나는 나대로 충분히 힘들고 괴로웠으니까, 라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내가 치유된 후에야 그들의 아픔이 보이고 그들과 함께 목소리 낼 힘이 생겼었다. 내 아픔들을 극복하고 치유하고 나서야 더 큰 이해심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직 병든 상태일까, 아니면 극복하고 나아갈 여지가 있는 사람일까. 김애란의 소설이라면 병든 상태로 주인공을 쭉 방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소설을 끝까지 읽고 판단할 일이었다.
 
내용을 이어서 보자면 ‘나’는 앞서 편지에서 언급한 자신의 맘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학원 제자 ‘혜미’에게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혜미가 반가움에 보낸 문자 메시지들은 혜미가 얼마나 순수하고 따뜻한지를 고스란히 느껴지게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옛 제자에게 그토록 맑은 문자를 받아놓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만다. 자신의 옛 제자 혜미를 회사에 입사시키고 본인은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게 된 것이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그렇게 앞서 말한 대로 혜미는 자라서 진짜로 주인공과 같은 서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부분을 읽으며 답답하게 참고 있던 울음이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혜미에 대한 동정 때문이기도 했고 그 일을 꾸역꾸역 편지 위에 고백해내는 ‘나’에 대한 원망과 연민의 감정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화제를 바꾸어 1년 동안 20만 원어치 빵을 먹어 만 원가량 적립금이 쌓인 마일리지 카드 이야기를 편지를 받는 ‘언니’에게 주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언니가 주인공에게 보낸 선물에는 10년 전 ‘누군가’가 빵집 카드 위에 또박또박 적어놓은 ‘나’의 이름이 있었다. 아마 그 누군가는 본인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카드 위에 적힌 그녀 자신의 이름은 10년 전 순수했던, 가슴 한쪽에 슬며시 퍼지는 온기를 느낄 여유가 있던 ‘나’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었던 언니에게 받았던 정체 모를 ‘선물’. 선물에 대한 해석은 함께 책을 읽었던 지인들 사이에서 분분했다. 마일리지 카드가 바로 그 선물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마일리지 카드로 산 빵이었을 것이다 등…. 그러나 확실한 것은 물리적인 선물이 무엇이든 간에 주인공 ‘나’가 순수하고 인간적이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돌려받았다는 것만큼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주인공이 끌어들인 회사에 입사한 혜미는 자살 시도 끝에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혜미의 근황을 전하며 주인공은 혜미의 성품을 잘 드러낼 수 있던 경험들을 회상한다. 혜미의 착한 마음과 자신을 각별히 생각하던 마음을 떠올리면서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망가진 인간성의 회복을 암시하는 구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글의 마지막, ‘만일 언니가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아마 제가 혜미가 있는 병원에 찾아갔다는 뜻일 거예요.’라는 대목을 통해 그녀가 혜미에게 찾아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나’의 정신적인 회복의 시초가 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무 죄도 없이 ‘나’에게 휘말린 혜미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주인공의 회복으로 인해 혜미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희망을 갖게 해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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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언니에게 무얼 받았는지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요.’
 
앞서 말했듯 그녀가 언니에게 받은 것은 물리적인 선물이라기보다는 세상에 상처받지 않아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마일리지 카드에 꼭꼭 눌러담은 순수했던 본인의 이름처럼 말이다. 그렇게 순수한 자기 자신을 도로 돌려 받고 주인공 '나'는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서른 언저리에 있는 이들의 우울한 참회록, 또 차가운 현실에 대한 고발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옅게나마 전망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겠다. 서른의 참상을 전해 듣고 박살 날 뻔했던 내 ‘서른 환상’을 그래도 조금은 지켜준 작가에게 굉장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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