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잠시 멈춰서 - 라스트 세션 [공연]

연극 <라스트 세션>
글 입력 2020.08.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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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포스터.jpg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우주가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이고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연적인 일이라는 견해를 갖거나, 아니면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주를 초월하여 실재하는 지성적인 존재를 가정한다. 완전히 대립하는 두 관점이 존재하고,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둘 중 하나의 세계관을 포용한다.

 

이 대척점에 두 학자가 존재한다. 유물론적 혹은 ‘과학적’ 세계관에는 프로이트가, 영적 세계관에는 루이스가 서있다. 전자는 이성과 지식 습득 및 ‘자연이 말한 바가 무엇인가’를 강조하는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후자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진리와 옳은 행위 및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을 강조하는 고대 이스라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났다.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맨드 M. 니콜라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으로,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1856년도에 모라비아 주의 프라이베크 시에서 태어나 1939년 83세로 죽었으며, 루이스는 1898년에 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시에서 태어나 1962년에 64세로 죽었다. 둘은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지만, 루이스가 옥스퍼드에서 강의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십 대였고 프로이트는 그때 이미 칠십 대 중반의 나이였으므로 이들이 살았을 때 서로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라스트 세션>에서는 작가의 상상을 통해 루이스가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고 찾아온다. 20세기 무신론의 시금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창조자, 보편적 도덕률, 행복, 성, 사랑, 고통,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논쟁한다.

 

 


논쟁 속의 '인간'

 

[크기변환][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신구(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피조물이 태어날 때부터 느끼는 욕구가 있다면, 그 욕구를 채워 줄 대상 또한 있는 것이 당연하다” 루이스의 유명한 말이다. 루이스는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것이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한 더욱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프로이트는 모든 종교적 관념은 깊이 자리 잡은 원초적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환상, 거짓 믿음이므로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신을 믿는 건 ‘강박 신경증’을 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주적 존재의 실재라는 거창한 주제에서 출발해, 둘은 이 세계에서의 고통과 삶의 의미, 양심, 사랑, 섹스, 음악, 유머 등 폭넓은 소재를 아우른다.

 

한편 이들은 함께 전쟁과 죽음이라는 공포를 마주한다. 연극 초반, 프로이트와의 약속에 루이스는 전쟁 피란 행렬 때문에 지각한다. 대화 중 공습 사이렌에 루이스와 프로이트 모두 허둥지둥 방독면을 쓰고 책상 아래로 숨는다. 참전군인이었던 루이스는 참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입 안의 ‘괴물’(구강암으로 인한 장치)은 프로이트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다. 또한 논쟁을 벌이다가도 참전에 관한 대국민 담화 라디오 방송을 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루이스의 도움으로 통증을 견뎌낸 프로이트와, 공습경보가 울릴 때 사실 두려웠다는 루이스의 고백은 삶과 죽음 앞에서의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 삶과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한 없이 작은 존재가 되지만, 그 속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또한 끊임없이 논쟁했지만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을 준다. 그 끝에서 둘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면서도 서로의 손을 마주 잡는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세계관 갈등은 전쟁과 고통에 의해 소강된다. 그렇다고 대화를 멈추는 건 아니다. 거대한 위협 앞에서의 무력한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둘은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극은 프로이트와 루이스, 어느 쪽이 정답인지 전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한다. 그들도 답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어려운 담론을 주제로 토론한다고 해서 작품이 무겁고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평소 ‘유머’를 즐겼던 루이스와 ‘농담’에 대한 연구를 남긴 프로이트의 위트가 팽팽한 긴장감의 완급을 조절한다. 유치한 말장난을 하며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대사 자체도 크게 어렵지 않아 편안하게 극을 관람할 수 있을듯하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의 세계관이 일치한 적이 있었다. 루이스는 인생 초기에 자신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방어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논법을 이용했지만 후기에는 무신론을 버리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둘 다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졌다는 것 또한 <라스트 세션>의 관전 포인트다.

 

 


잠시 멈춰 서기
 

[크기변환][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석준,남명렬(3)(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극의 마지막, 루이스는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를 하루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렇다고 생각을 접어버린다면 그건 더 미친 짓이라 답한다.

 

<라스트 세션>에서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대화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는 내면의 갈등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 편으로는 프로이트처럼 권위를 거부하고,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다지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루이스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대자를 향한 갈망을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 혹은 그 외의 세계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기에 여념 없다. 내 안을 파고드는 질문보다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긴급한 일들에 귀 기울인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잠시 멈춰 서서 숙고해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고, 질문하자. 거기서 찾은 답이 어떠하든 간에.

 

연극 <라스트 세션>이 우리에게 사유의 시간을 잠시나마 허락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사유를 위한 멈춤의 시간이 우리에게 완전한 해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 순간이 비로소 우리를 다시 걷게 만들 테니.


 

*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 -

 


일자 : 2020.07.10 ~ 2020.09.13


시간

화, 수, 금 오후 8시

목 오후 4시

토 오후 3시, 6시

일 오후 2시, 5시 


*월 공연 없음

*08/09,16,23,30 일요일 2시 공연만 있음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3관


티켓가격

전석 55,000원

  

주최/기획

(주)파크컴퍼니


관람연령

14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90분

 

 

 

최은민.jpg

 

 



[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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