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맛을 통해 고통을 덮어두고 위로 받는 오늘 -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도서]

레몬청과 핑거라임의 신맛을 입안 가득 담다
글 입력 2020.07.28 20: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131.jpg

 

 

레몬과 핑거라임은 신맛을 내는 과일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 책은 레몬과 핑거라임의 신맛이 가진 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힘은 때로 고통스럽기도 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고통을 덮어 줌으로써 안정을 주기도 한다.

 

그 매력적인 힘은 잠시나마 불안과 초조함, 의구심으로 가득 찬 현실 계를 외면하게 해주지만,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사면이 막힌 환각의 상자안에 자신을 가두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핑거라임 요법 시술을 받고 나면 정신적 의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니코틴이나 아편처럼 갑자기 끊었을 때 식은 땀이 나거나 온몸이 아픈 육체적 증상은 없지만, 불안하고 초조해지면서 핑거라임을 딱 하나만 먹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핑거라임을 씹는 순간에 느낀 고도의 해방감, 평상시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났던 감각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핑거라임> p.52 中

 

 

근본적으로 두 소설은 같은 지점을 다룬다. 핑거라임도, 레몬도 잊고 싶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해결해주거나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을 온통 신맛으로 채워 견디게 해준다. 신맛, 그것은 단맛, 고소한 맛 등등의 다른 맛들과 달리 너무나 강렬해 정신을 빼앗기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크기변환]레몬라임책_내지16-17.jpg

 

 

때로 그 강렬함은 과하지만 않다면 고통의 순간에서 위로와 위안이 되어 주기도 한다. 가령, 레몬청 만드는 법의 한 여성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자스민 식당에서 항상 어떤 남자와 함께 오던 한 여자가 어딘지 공허한 표정을 하고 찾아와 레몬청 한병을 통째로 주문한다. 주인장이 자리를 비워 마음대로 병채로 레몬청을 팔 수 없었던 이 이야기의 화자는 매장에서 잔으로 나누어 먹을 것을 제안하고, 여자는 이에 따른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골이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녀가 레몬청의 달콤씁쓸한 맛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깊은 고통을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레몬청 한병을 13잔의 잔에 나누어 마시고 자리를 떴다.


 

그 다음 일요일에 주인아저씨가 레몬청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레몬을 썰다 말고 사분의 일쯤 되는 조각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시고 씁쓸한 과즙이 혀에 닿았다. 코를 막고 레몬 조각에 이를 깊이 박아 보았다. 강렬한 신맛에 입안이 시렸다. 시큼한 향이 피부에서 스며 나오는 기분이었다. 레몬차를 마실 때에는 달달한 설탕이 레몬의 신맛을 가린다. 그렇지만 음미하다 보면 문득 날카로운 신맛이 혀를 찌른다.

 

<레몬청 만드는 법> p.23 中

 

 

그녀가 레몬청을 비우고 떠난 후, 이 이야기의 화자는 남은 레몬 조각을 음미하며 그것이 발산하는 신맛을 느껴본다. 그 안에는 어쩌면 그녀가 남기고 떠난 고통이 몇 조각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거쳐간 이의 고통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후 레몬은 또다른 이의 고통을 기다리며 어쩌면 자신이 아는 것을 슬쩍 꺼내 보여 위안을 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거쳐간 이들의 고통을 알고 있어, 너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나를 베어 물었지.”라고 하면서.



[크기변환]레몬라임책_내지50-51.jpg

 

 

두 번째 소설인 ‘핑거라임’에서는 핑거라임의 강렬한 신맛을 통해 소음의 고통을 잊으려는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그가 다니는 상담소의 상담가인데, 핑거라임을 통해 잠시나마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충격 요법을 환자들에게 실행한다. 다만, 핑거라임을 지나치게 복용할 경우, 고통에 대응하는 내성을 잃고 핑거라임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음으로 핑거라임 복용을 한 환자 당 5회로 제한하고 있다.

 

남자는 5회를 넘기고도 핑거라임을 얻기 위해 화자에게 찾아온다. 그는 일상의 소음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거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사무실의 타자 소리, 볼펜의 소리들까지도 그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는 어떠한 소음도 나지 않는 완전한 진공의 상태에서만 안정을 느낀다. 그래서 늘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귀마개를 쓰고 다닌다. 귀마개는 그에게 불안정하지만 그나마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언제부턴가 그 귀마개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청이 들리면서부터 얇은 유리와 같던 그 안정과 평화는 깨져버렸다. 어머니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핑거라임을 통해 고통을 잊고 싶어 한다. 라임을 배어 무는 순간만큼은 입안에 퍼지는 신맛을 통해 세상과 차단된 그만의 작은 상자 안으로 자취를 감출 수 있다. 억지로 만들어낸 그만의 공간에서나마 안정을 취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크기변환]레몬라임책_내지56-57.jpg

 

 

원래대로라면 화자는 그에게 핑거라임을 건내주면 안되었다. 핑거라임은 사람의 손가락과 비슷한 모양을 한 과육으로, 마약과 술, 담배처럼 몸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결국은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을 도와주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신맛을 내는 무언가도 고통 자체를 없애 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불러오는 원인을 찾고, 그것을 포용하는 것도, 제거하는 것도 모두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에게는 내담자가 핑거라임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화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남자의 귀마개가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마저도 그들의 소리들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담자들이 털어놓는 고민들, 그 것들이 이루어져 내는 소음이 버겁게 느껴진다.

 

화자와 남자는 결국 거래를 하게 된다. 화자는 남자에게 핑거라임을 주고, 남자는 화자에게 귀마개를 건낸다. 그들은 결국 하루치의 고통을 회피했다.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들의 결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견뎌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통은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늘치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래서 어느정도의 신맛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핑거라임과 레몬청이 필요하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5645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