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엄마가 되지 않고도 '무엇'이 되고 싶은 여성들의 이야기

최지은 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글 입력 2020.07.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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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정하기에 이른 나이인 것 같지만, 엄마가 되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되지 않기로도 다짐했기에 이 또한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양육하는 삶 말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종사하고 싶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취미생활을 하는 미래는 수없이 그려봤지만, 그 가운데 아이를 낳거나 키우는 모습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물론 아이를 낳거나 키운다고 해서 바라는 미래를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양립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실제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립을 실현하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그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엄마가 되며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너무나 많은 조건들은 엄마에게 육아와 직장 중 택일의 삶만을 누리도록, 더 나아가 여성에게 그러한 엄마의 삶만을 누리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 현실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는 작금의 사회에서 수많은 여성이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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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최지은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딩크’ 여성으로, 같은 딩크 여성 18인을 인터뷰하여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여성들의 고민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현실들을 기록하고 수집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100% 확신한 것이 아니라면 낳는 게 낫다는 주변의 조언에 대한 반문으로 시작된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으로 상상되지 않는 무자녀 기혼 여성들의 구술을 기반으로 공통된 현실 속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경험을 집약하여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엄마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듯, 엄마가 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한 천명이다.

 

 

내가 속한 이야기가 너무 적어 쓸쓸하다면, 내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수밖에. (72p)

 

 

책은 크게 세 가지 주제로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선, 아이 없이 살기로 결심하기까지 여성들이 당면해야 했던 고민과 흔들림을 다룬다. 결심의 외부적인 원인을 살펴보기 이전에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내리는 결단으로서 갖는 비출산의 의미를 고찰한다. 그다음으로는 논의를 조금 더 외연으로 확장하여 여성의 비출산이 배우자, 부모, 친구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그들과의 상호작용 양상을 살펴본다. 비출산이 개인을 넘어 개인을 에워싼 세계에까지 변화를 야기하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한 다음, 마지막으로는 모든 여성이 유자녀 기혼 여성이 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유자녀 기혼 여성이 생활하기 어려운 구조를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의 면면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며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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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스스로, 엄마가 되거나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가 되거나 되지 않는 것은 그로 인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개인의 선택이며 선택에 따른 모든 만족과 후회 역시 오롯이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 저자가 인용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말처럼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100% 옳을 것이며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내릴 수 있는 선택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택의 가치는 무엇이 될 수 없는 만큼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빛난다.

 

저자는 모두가 특정한 무엇이 되기를 종용하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흔들림의 순간을, 무엇이 되지 않기로 한 18명의 구술과 함께 생생하게 담는다. 여성의 아이 없음은 즉 결핍이고, 흠이며, 후회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세간의 통념과, 그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나 자신의 삶이 과연 꿋꿋이 주관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다. 그러나 저자는 홀로 축적해온 지난한 고민과 다른 딩크 여성들과 경험을 직조하여 단단한 결론을 내린다. 인생의 모든 선택은 막연하고 불확실하며 필연적인 결핍과 흠, 후회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여성들도 마땅히 그러한 선택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이 없는 사람이 외로울 때가 있듯, 사람은 아이가 있어서 외로울 때도 있다는 것을. 각자의 삶에는 각기 다른 무게와 외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관계를 이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성숙이라 부른다. (80p)

 

 

온전히 개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출산과 양육은 개인의 외연을 너무나 많이 변화시킨다. 타인과의 거리가 가까운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개인의 영역을 비교적 쉽게 침범받는 여성에게 있어 그 변화는 더욱 거침없이 이뤄진다. 저자는 딩크 여성이 배우자와 부모,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빚는 마찰을 다루며 출산 여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낸다.

 

특히 딩크 여성과 그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 시부모 간 빚어지는 마찰에 ‘기브 앤 테이크’ 경제 논리가 개입하는 것에 대하여, 이는 동시에 결혼이 거래이자 계약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방증임을 꼬집는 대목은 출산 개념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약자 계층에 속하는 여성이 그 약점으로 인하여 출산의 자유를 침해받는다. 또한 출산과 양육 이후 친구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적지 않은 술회는 그것이 여성의 일상적 자유를 뺏어간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이렇듯 구조적인 차별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폭로함과 동시에, 비혼 여성이 마주하지 않는 기혼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출산에 대한 현실에 관해 더욱 광범위한 사고를 일깨워준다.

 

또한 책은 개인을 둘러싼 외적 조건에 따라 출산 여부에 대한 주체적 선택의 난이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다양한 여성의 다양한 경험을 제시하며 알게 한다. 저자가 언급한 ‘부모님이 나의 비출산에 자신들의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것(171p)’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비출산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지 않은 이유가 자신이 독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힌 대목에서는 마찬가지의 입장으로서 깊은 공감이 들었다. 그러나 비수도권 지역, 특히 ‘이웃’ 간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은 농촌에 거주하는 딩크 여성이 출산 여부를 선택함에 있어서 더욱 심한 개입과 무례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출산에 대한 여성의 생각을 취합하여 최대한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기혼 여성과 유자녀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세태 속에서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개개인에 있어 판이하며 출산 여부가 개인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책은 개개인의 경험을 다각도에서 비춘 다음 이들을 둘러싼 궁극적인 어려움을 계속해서 양산해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들춰낸다. 무자녀 계획을 밝히면 늘 들리는 ‘조용히 결정하면 될 걸 왜 공개적으로 밝히느냐’는 트집이 모순적인 이유는 사회가 먼저 출산을 공개적인 개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20세~44세 여성을 ‘가임기 여성’으로 개념화하여 그들의 지역 분포를 시각화한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든 것도,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경력단절에 아직까지도 실질적인 정책적 개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과는 다른 어른의 프레임 속 ‘예쁘고 착하고 민폐 끼치지 않는 아동(259p)’을 선보이며 ‘출산 바이럴’을 도모한 것도 모두 국가다. 국가가 먼저 출산을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책은 여성과 아이를 국가 발전의 자원으로밖에 보지 않는 차별적 시선을 지적하며, 단순히 출생률 제고를 위한 ‘여성 친화적 정책’을 고민할 것이 아닌 이미 여성과 아이가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에 대한 국가와 사회 차원의 비판적 성찰이 필요함을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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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비출산 동향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다소 격렬하고 비장한 ‘운동’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출산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많은 경우 육아까지 담당해야 하는 여성이 스스로 그 삶의 갈림길을 선택하지도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엄마’가 된다고 해서 ‘좋은 육아’를 지속할 수 있을까? 100%의 확신을 채우지 못하게 하는 불신의 이유에는 나 자신이 아이를 기를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개인적인 판단도 있겠으나 사회 역시 그러한 준비에 미진하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하루가 다르게 사건의 형태로 마주하는 여성과 아동을 향한 폭력을 보면 작금의 국가가 여성의 ‘엄마 됨’은 물론 아이의 태어남을 장려할 권리를 가졌는지조차 의문이다.

 

비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결정은 이제 당연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필연적인 결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아이 낳기 좋은 사회를 모색하는 것 또한 지양되어야 한다. 아이 낳기 싫은 사회의 원인이 구조적 차원에 속할 경우 이는 개선될 수 있지만, 비출산은 궁극적으로 여성 단독의 삶의 결정이며 이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권리는 없다. 엄마가 ‘그냥’ 되지 않기로 한 여성들의 존재를, 저자의 언급처럼 ‘엄마가 되지 않고도 ‘무엇’이 되고 싶은‘ 여성의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 격렬하고 비장한 움직임 없이도, 그냥, 설사 ’무엇‘이 되지 않아도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할 수 있는 그런 미래를 꿈꾼다.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한 만족과 후회가 온전히 나의 것일 수 있는 그런 당연한 삶을 모든 여성이 쉽게 누리는 세상이 속히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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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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