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At the Moulin Rouge
관람을 계속하던 중, 단순히 그들의 삶을 그려냈을 뿐 아니라 화가가 작품에서 배제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감히 추측하건대, 화가가 그들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는 이질감 속에서 비롯된 분위기가 아닐까?
알다시피 그는 유흥가 여인들과 어울려지냈다. 혹자들은 서로 소외받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지냈다고도 한다. 더불어 '드로잉으로 자유를 샀다'라는 발언으로 짐작해볼 때 그림을 그리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외받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영혼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치고 고통받은 영혼은 쉽게 치유되지 못했다. 일생을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고 결국 그림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텍스트가 이를 설명해 준다.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통을 끝까지 떨쳐내지 못했으며 작품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고통과 외로움은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일생이 배경이었다. 고흐가 정신적인 문제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다면, 툴루즈 로트렉은 신체적인 문제에서 비롯한 고통으로 평생을 앓았다.
사고가 일어난 뒤 더 이상 하체가 성장하지 않아 난쟁이로 살아야만 했다. 원인은 귀족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부모님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병. 그래서일까 안식처가 되어주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항상 그에게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주변의 조언을 들어 화가라는 직업을 허락했지만 유흥가 작품에 귀족 가문의 성을 사용하자 유산의 일부를 강탈할 정도로 가족의 구성원으로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Le Jockey
평생 타지 못 했던 말이나 사냥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그려낸 그의 모습에서 귀족 사회에서 편승되지 못한 그의 상황이 연상되지만 골자는 말을 타고 있는 아버지다. 아버지를 선망하고 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툴루즈 로트렉의 무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한 것 같다.
냉담한 시선을 받아왔던 툴루즈 로트렉. 아버지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체는 동정을 가장한 웃음거리며 이야깃거리였을 거다. 알게 모르게 시선을 꺼렸던 게 인물들의 정면 응시가 없었던 경향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전시를 보다 보니, 반가운 이름이 나왔다. 동시대 화가들과 많이 교류했던 툴루즈 로트렉은 그중에서도 에드가 드가를 굉장히 동경했다고 한다. 실제로 에드가 드가의 작품과 그의 작품은 흡사한 부분이 몇 있다. 신체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만 묘사했던 우에요키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거나 발을 쭉 펴는 몸동작 등 비슷한 묘사가 있다.
- Henri de Toulouse-Lautrec -
장소
티켓가격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관람연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