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예술로 불렀던 외로움, 툴루즈 로트렉展

고통과 감내, 끝에서 피어난 예술에 감화되고 위로하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입력 2020.07.26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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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이전부터 꽤 알고 있었던 작가였다. 흐릿하고 얇은 선과 탁한 색감,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은 신체와 기괴한 표정의 인물들. 화려한 붓놀림과 색채로 관람객들을 사로잡는 여타 작품과는 달랐다. 한눈에 봐도 작가가 툴루즈 로트렉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유독 반가운 이유다.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jpg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막상 전시회에서 열거해둔 작품들을 마주하자 색달랐다. 작품 속 등장인물 대부분이 화가를 직시하지 않고 있다. 아니,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는 게 맞을 테다. 등장인물 대다수가 측면을 바라보고 있어,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듯 관람했다. 내가 선호했던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멀었지만, 자꾸 시선이 갔던 기시감이 해결됐다.
 
툴루즈 로트렉. 그의 작품은 편했다. 그를 칭송하고 높이 대우하는 전시 내 글귀들과는 다르게, 아주 건조하고 담백한 감상이었다. 아주 얇아서 흐물흐물한 것 같은 선의 표현이나 물을 많이 먹은 듯한 혼탁한 색감, 희미한 인상들이 어우러졌다. 힘차게 발 돋는 말의 근육이라거나 높이 발차는 격렬한 춤사위를 묘사함에도, 아주 오래전 찰나를 기록해둔 흑백사진을 추억하고 있는 느낌이 든 이유다.
 
작가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전시 곳곳에 등장하는 텍스트 -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 / 나는 이상적이 아닌 진실된 것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 처럼 그는 삶과 진실을 작품에 그려냈고 나는 찰나를 엿봤다.

 

 

At the Moulin Rouge.jpg

At the Moulin Rouge

 

 

관람을 계속하던 중, 단순히 그들의 삶을 그려냈을 뿐 아니라 화가가 작품에서 배제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감히 추측하건대, 화가가 그들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는 이질감 속에서 비롯된 분위기가 아닐까?

 

알다시피 그는 유흥가 여인들과 어울려지냈다. 혹자들은 서로 소외받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지냈다고도 한다. 더불어 '드로잉으로 자유를 샀다'라는 발언으로 짐작해볼 때 그림을 그리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외받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영혼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치고 고통받은 영혼은 쉽게 치유되지 못했다. 일생을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고 결국 그림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텍스트가 이를 설명해 준다.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통을 끝까지 떨쳐내지 못했으며 작품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고통과 외로움은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일생이 배경이었다. 고흐가 정신적인 문제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다면, 툴루즈 로트렉은 신체적인 문제에서 비롯한 고통으로 평생을 앓았다.

 

사고가 일어난 뒤 더 이상 하체가 성장하지 않아 난쟁이로 살아야만 했다. 원인은 귀족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부모님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병. 그래서일까 안식처가 되어주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항상 그에게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주변의 조언을 들어 화가라는 직업을 허락했지만 유흥가 작품에 귀족 가문의 성을 사용하자 유산의 일부를 강탈할 정도로 가족의 구성원으로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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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Jockey

 

 

평생 타지 못 했던 말이나 사냥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그려낸 그의 모습에서 귀족 사회에서 편승되지 못한 그의 상황이 연상되지만 골자는 말을 타고 있는 아버지다. 아버지를 선망하고 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툴루즈 로트렉의 무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한 것 같다.

 

냉담한 시선을 받아왔던 툴루즈 로트렉. 아버지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체는 동정을 가장한 웃음거리며 이야깃거리였을 거다. 알게 모르게 시선을 꺼렸던 게 인물들의 정면 응시가 없었던 경향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전시를 보다 보니, 반가운 이름이 나왔다. 동시대 화가들과 많이 교류했던 툴루즈 로트렉은 그중에서도 에드가 드가를 굉장히 동경했다고 한다. 실제로 에드가 드가의 작품과 그의 작품은 흡사한 부분이 몇 있다. 신체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만 묘사했던 우에요키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거나 발을 쭉 펴는 몸동작 등 비슷한 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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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la rue des Moulins
 
 
특히 발레리나와 향락가 여인들의 화려한 모습 밖의 차가운 현실 - 스폰서의 존재, 성병 검사 등 - 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등 그들의 삶을 그대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더불어 드가는 어머니의 외도로 인한 여성 혐오적 가치관을 갖고 있었고, 툴루즈 로트렉은 아버지를 선망하며 그의 인정을 갈구했다. 부모님 중 한 명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들어 볼 때, 툴루즈 로트렉이 드가의 작품을 보고 무척 동경하기는 동시에, 공감과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사유한다. 우리가 찬란한 예술이라고 불렀던 대다수 창작물들의 다른 이름은 고통일 수도 있다고. 작품의 마력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그 고통과 감내, 끝에서 피어난 예술에 감화되고 위로하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툴루즈 로트렉. 그의 경우에도 평생을 빠져나오지 못했던 외로움을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고 빠져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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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展
- Henri de Toulouse-Lautrec -

 
일자 : 2020.06.06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관: 메이드인뷰, 한솔BBK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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