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6. 잭이 꿈꾸던 사랑의 지상낙원 - 뮤지컬 '해적'

어설픈 해적들의 사랑이야기
글 입력 2020.07.1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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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비워둔 지 장장 9개월이 지나버렸다. 무엇을 써야 하나, 어떻게 써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흘려보낸 시간이 벌써 아홉 달이라니, 사실 쥐도 새도 모르게 섹션이 사라져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오래, 같은 농도로 좋아하기는 어렵다. ‘덕생’에도 ‘현생’에도 굴곡은 있기 마련이라 절정과 하강을 수없이 넘나드는 것이 일상이다. 아무리 지쳐도 놓을 수 없는 ‘현생’과 다르게, ‘덕생’은 조금만 지치더라도 금세 놓아버릴 수 있으니 무언가를 같은 힘으로 오랫동안 좋아하기란 참 어려운 것이다.

 

나도 그렇다. 공연을 오래 좋아했지만 그 시간 내내 같은 농도로 애정을 부은 것은 아니었다. 돈과 시간과 체력이 허용할 때 내 취향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오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시간은 있는데 체력이 없어서, 모두 있는데 마땅히 볼 작품이 없어서 공연에 냉담해졌던 날도 제법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마음껏 자랑하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칼럼 섹션까지 차지해 놓고,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지금 이 시기가 바로 하강 구간이 아닌가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 탓에 오랫동안 대학로를 가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레 애정도 조금씩 식어가는 기분이다. 이대로 일 년에 공연을 한두 번 보는 문화인으로 변모한다면야 참 좋겠으나, 아마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다면 또 다시 한 번의 공연 관람으로 일 주일을 살아내는 사람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 뻔하다.

 

이렇듯 하강에서 절정으로 방향을 트는 변곡점이 되는 작품이 늘 있었다. 공연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던 와중에 ‘아, 내가 이래서 공연을 좋아했지.’라는 생각과 함께 뒤통수를 강타하는 공연이 항상 존재했다. 그런 공연을 보고 나면 무대예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과 쾌감, 기타 수없이 다양한 긍정적인 감정과 더불어 또 다시 예매처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뮤지컬 ‘해적’이 그중 하나였다. 2019년 하반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그때, 그래도 하루를 시작하고 그래도 일주일을 살아낼 수 있었던 까닭은 온전히 ‘해적’ 때문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딘가 모자란 해적들의 지상낙원


 

뮤지컬 ‘해적’은 실존했던 해적 ‘칼리코 잭(본명 존 래컴)’, ‘앤 보니’, ‘메리 리드’와 허구의 인물 ‘루이스 윈터’ 네 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특한 점은, 작품이 4명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무대 위에서는 두 명의 배우만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두 배우는 잭과 메리, 루이스와 앤을 각각 연기한다. 1인 2역을 맡는 셈이다.

 

앤과 메리가 여성 캐릭터, 잭과 루이스가 남성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캐스팅 역시 여성배우와 남성배우를 골고루 캐스팅해 개막 전부터 젠더 프리 작품으로 입소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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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의 화자는 루이스다. 잭이 이끄는 해적선에 동승한 꼬마 해적 루이스는 선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항해일지에 꼼꼼히 기록하고, 작품의 처음과 끝은 각각 루이스의 독백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값비싼 보석 로즈 사파이어를 찾아 로즈 아일랜드로 떠나는 잭의 해적선에 루이스, 앤, 그리고 메리가 함께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뮤지컬 ‘해적’이다.

 

줄거리를 써놓고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어드벤처 서사 같지만, 해적의 진짜 매력은 캐릭터에 있다. 대왕 거북이를 타고 무인도를 탈출했던 경험 때문에 대왕 거북이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거북이 고기는 먹지 않는 섬세한 해적 잭, 해적선에 오르기 위해 보물섬 지도를 먹어 삼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집념의 해적 루이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아왔지만 바다로 나가 진정한 사랑을 찾은 앤과 메리까지.

 

‘해적’은 해적의 이야기지만, 그 이전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따뜻할 수밖에 없는 서사였다.


 

내가 보물을 찾는다면 작은 섬 하나 차지하고 뭔가 모자란 해적들의 지상낙원을 만들 거야.

육지에서도 쫓겨나고 바다에서도 길을 잃은 슬픈 해적들 모여 사는 그런 따뜻한 작은 섬에

용감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서우면 울어도 괜찮아

목소리가 작아도 괜찮아

꽃을 보고 설레도 괜찮아

 

-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

 

 

작품을 보고 잘 울지 않는 나지만, ‘해적’을 보고 울지 않기는 참 어려웠다. 언제 한 번은 극이 시작하자마자부터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슬퍼서가 아니라 따뜻해서 우는 극이 ‘해적’이다.

 

어느 누가 해적의 이야기에서 ‘꽃을 보고 설레도 괜찮다’라는 위로를 기대할까. 해적선장 잭이 바라던 지상낙원은 보물로 가득 찬 로즈 아일랜드도 아니고, 유능한 해적들이 모인 무적의 해적선도 아니다. 어딘가 모자란 해적들이 마음껏 자신답게 살 수 있는,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찾을 수 없는 따뜻한 섬이다.

 

쥐를 무서워한다는 이유로, 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이유로 소외되었던 해적들을 한 데 모아 바다의 향기를 듬뿍 마실 수 있는 자그마한 섬이 잭이 그토록 바라던 지상낙원이었다.

 

 

 

해적의 사랑은 신들의 거짓말 같은 사랑


 

누군가 ‘해적’은 무슨 공연이냐고 묻는다면, 해적의 사랑 이야기라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쉽게 사랑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 바로 ‘해적’ 속 인물들이다.

 

특히 여자 해적 앤과 메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더없이 아름답고 로맨틱하다. 사생아로 태어난 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바다로 떠난다. 친오빠의 죽음으로 유산을 물려받기 어려워지자 오빠인 척 남장을 한 채 살아야 했던 메리 역시 손에 칼을 거머쥐고 바다로 나선다. 이 둘이 전쟁 중 만나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

 

 

나 이제 당신들의 교회에서 내 이름을 지울 테니 보라.

나를 기억하지 말라, 나를 축복하지 말라.

나 이제 나의 법과 질서 안에 내 이름을 새기리니 보라.

이 땅에서 만나지 못한 나의 신을 찾아가리라.

당신들의 신은 나의 항해시대에 초대받지 않았으니 내가 죽는 그날에 초대받지 못하리라.

당신들의 교회는 이미 무너졌으니 사생아가 지어올린 그 신전을 질투하라.

물속에서 솟아오른 나의 신을 질투하라.

 

- 질투하라

 

 

실제로 앤 보니는 사망 기록이 없다. 신에게 버림받은 인생이 아니라 신을 버린 인생인 셈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앤이 찾아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메리 리드였다.


 

내가 찾아 나선 위대한 군신, 내가 잃어버린 뜨거운 생명

내가 꿈꾸었던 전사를 만나는 순간, 내가 잊고 살던 불꽃을 만나는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난다.

 

- Love at first sight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이토록 거칠게 묘사한 작품도 흔치 않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생명을 담보하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사람들의 사랑이 마냥 여리고 섬세할 리 없다. 앤과 메리 역시, 칼싸움 중에 서로를 알아보고 이유 없는 끌림을 느꼈다는 것이 참으로 해적답다.

 

칼리코 잭의 해적선이 바다를 누볐던 1700년대 초반은 해적의 황금시대 말기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엔딩도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가사에 나와 있듯이 해적의 사랑은 신들의 거짓말 같은, 달콤하지만 즐길 수 없는 존재이므로 언젠가 반드시 끝을 맺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관람부터는 시작부터 눈물이 났다. 결말을 알고 볼수록 극이 주는 따뜻한 메시지가 더 슬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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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의 모티프인 해적 존 래컴(1682~1720)

 

 

자극적인 비극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점점 ‘해적’처럼 포근하고 소박한 서사를 더 사랑하게 되는 듯하다. 또 나에게 ‘해적’은 공연에 흥미를 잃으려던 찰나에 다시 공연의 재미를 일깨워 준 소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니, 글 서두에 ‘하강 상태’라고 써둔 것 치고 여전히 ‘해적’을 많이 그리워하는 중인 것 같다. ‘해적들의 작별에는 해적답게 웃어줘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2018년에도 2020년에도 ‘진짜 해적’은 아닌 듯 싶다. 여전히 이 따뜻한 작품과의 작별이 아쉽고, 언제나 재회를 소망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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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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