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피노키오 - My Dear, 피노키오展

"나무 인형이었을 때는 정말 우스꽝스러웠어! 지금 이렇게 착한 아이가 된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글 입력 2020.07.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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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인형이었을 때는 정말 우스꽝스러웠어!

지금 이렇게 착한 아이가 된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My Dear, 피노키오

_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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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피노키오


 

국적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동화 이야기 <피노키오>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표현한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 《My Dear, 피노키오展》(이하《피노키오展》)이 6월 26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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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디즈니의 피노키오

 

 

오래된 기억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피노키오. 한 여섯 일곱 살 즈음이었을까, 어린 시절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피노키오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들춰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거짓말을 하는 건 나쁜 일이라는 걸 보여주듯 코가 쑥쑥 자라던 피노키오가 기억난다. 어릴 때도 지금도 “피노키오=거짓말”은 동화 세계에서 불변하지 않는 하나의 공식이었다.

 

그런 교훈을 전해주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만나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나는 피노키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어른이 된 지금 피노키오를 다시 만난다면 무엇을 느끼게 될지 말이다. 어른으로서 《피노키오展》을 가는 나의 마음은 그러했다.

 

*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눈보다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나 들었던 노래였다. 놀이공원에 들어가는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우며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런 노래. 그 순간 아주 잠시 멍하니 있었다. 정말 동심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은 이미 몇 년이 한참 지난 피노키오에 대한 기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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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마티올리

 

 

들어가자마자 만난 공간에는 레오나르도 마티올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일러스트가, 그 반대편 벽으로는 작가의 일러스트로 구현된 피노키오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마티올리 작가의 작품 속 피노키오는 그림자처럼 그려져 있었다. 가느다란 팔과 삐죽 튀어나온 코, 동그란 얼굴이 피노키오임이 확실했다. 자연스레 피노키오의 주변과 배경에 주목하게 된다. 가만, 피노키오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었더라. 생각보다 이번 전시를 보며 오랜 기억에서 꺼내게 될 것이 많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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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마티올리 작가의 작품을 통해 피노키오에 대한 동심으로 내 마음을 안내한 전시는 더 많은 작품을 만나기 전, 피노키오의 원작과 그 시대 배경에 대해 짚어가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피노키오 이야기는 카를로 콜로디가 1881년부터 어린이 신문에 기고한 <피노키오의 모험>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피노키오 이야기가 탄생한 당시 글이 실렸던 어린이 신문의 지면과 19세기 후반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이 전시되어있었다. 이미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 세기 가까이 진행된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번영과 평화의 시대인 ‘벨 에포크’와 함께 그 이면에는 시민의 처절한 삶이 공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의 상황과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변화 지점에 놓인 시기에 콜로디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요구되었던 ‘올바르고 말 잘 듣는 어린이’의 표본을 나타내고자 <피노키오의 모험>을 썼다고 한다.

 

아이들이 올바른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는 교훈이 담겨있던 이야기 <피노키오의 모험>은 오늘날의 작가들을 만나 서로 닮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내고 있었다. 다채로운 작품을 하나씩 만나는 시간이 내게는 피노키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하나씩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전시를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피노키오를 너무 ‘동화’로만 이해한 것이 아닐까"라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현대 작가들의 피노키오는 ‘거짓말’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저마다 다른 부분에 주목하고 파고들며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

 

피노키오에는 고대 신화, 성경의 테마, 코메디아 델라르테(즉흥 희극), 판타지, 스릴러, 멜로드라마, 통속극 등이 섞여 있다. (...) 경찰, 요정, 말하는 동물들, 물고기, 곤충들이 마치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 등장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괴수들처럼 책 속에서 우글거린다. 하여, 나의 피노키오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또한 "콜라주"다.

- 빅토리아 포미나 작가 노트 일부

 

 

ⓒ Victoria Fomina.jpg

© Victoria Fomina

 

 

생각해보면 피노키오는 글로 쓰인 이야기 속에서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이자 판타지다. 말하고 움직이는 꼭두각시 나무 인형 피노키오에서부터 말하는 동물들, 푸른 머리의 요정, 길에서 마주친 괴물들과 장난감 나라까지, 등장인물과 그 세계는 얼마든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작품을 만나면서 점점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던 피노키오 옆에 작가마다 다른 모습의 새로운 피노키오가 나란히 자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작가는 피노키오를 위험한 사건이 도사리는 판타지 모험의 이야기로, 다른 작가는 아버지 재회를 향한 여정으로, 유년 시절의 새로운 표현으로, 파시스트 정권 시대 배경 이야기 등으로 피노키오를 해석하고 작품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너무도 다양한 해석이지 않은가. 같은 듯 다른 가지로 뻗어 나가는 여러 피노키오 사이에서 나는 피노키오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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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은 그림책 중 유일하게 기억하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 작품을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

 

 

피노키오 영상과 어릴 때 여러 그림책에서 봤던 것 같던 그림 작품들을 즐겁게 보던 중간에 너무도 강렬한 작품이 만났었다. 안토니오 사우라 작가의 그림이었는데 첫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피노키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서툰 손으로 그린듯한 거칠고 엉성한 작품, 동시에 작품 어딘가에는 두려움과 공포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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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사우라, <새로운 피노키오>

© Succession Antonio Saura/ www.antoniosaura.org 

/ A+V Agencia de Creadores Visuales 2020

 

 

모든 어린이 책이 어느 정도는 잔인함과 비극을 담고 있지만, <피노키오>는 무슨 일이 생길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여지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주인공의 태도에, 기적과도 같이 살아 숨쉬는 인간의 숨결이 깃든 나무 꼭두각시라는 비정상적 처지로 태어난 기구한 운명이 보태어진다.

- 안토니오 사우라 노트 중

 

안토니오 사우라에게 피노키오는 그 기이한 정체성에 어느 모습으로든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의 존재였다. 그리고 작가는 '피노키오의 독특한 운명, 인간이 되지 못하는 조건, 인간의 몸이 아닌 나무토막이라는 여건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고 말한다.

 

일그러진 피노키오의 모습은 순식간에 내가 품고 있던 잘 만들어진 나무 꼭두각시 피노키오의 모습을 무너뜨렸다. 분리된 피노키오를 열심히 다시 맞추어보려 하지만 안토니오 사우라 작품에서는 그럴 수 없다. 문득 피노키오의 여정 이야기로 잠시 뒤로 잊힌 피노키오의 내면은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였다가 갑작스레 나무 꼭두각시로 만들어진 피노키오, 그것도 어린아이처럼 인간처럼 숨을 쉬고 말을 하는 꼭두각시가 된 피노키오에게 갑자기 펼쳐진 세상이 아주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꼭두각시 인형으로 완성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온갖 사고를 쳤다는 피노키오의 상황이 한편으론 이해되기도 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졌을 피노키오의 행동을 무작정 잘못된 일이라고 다그치는 것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정말 그저 나무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럴 수만은 없는 정말 기구한 운명이다. 그저 나무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라기엔 어린 사람 소년과 같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착한 아이처럼 올바르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인간 사이에 둘러싸인 피노키오의 모습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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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법 같은 탄생 덕분에 피노키오는

자연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이브 샤르네

 

《피노키오展》에는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이 함께 전시되어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이브 샤르네의 회화 작품 <피노키오의 메타모포시스>와 함께 전시된 작품들이었다. 무엇인가를 그렸다기보다는 망설임 없는 선명한 붓터치가 눈에 들어오는 작품. 이브 샤르네는 피노키오를 메타모포시스, 즉 ‘물체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변신’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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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 샤르네, <피노키오의 메타모포시스> 전시 장면

 

 

<피노키오의 메타모포시스>는 전시된 방식이 색달랐다. 입구를 둔 어두운 방 안에 걸려 있었는데 공간을 비추는 건 계속해서 색이 바뀌는 조명이었다. 그래서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피노키오의 메타모포시스>는 원작 그대로라기보다는 다른 조명 빛을 받으며 색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이었다. 색이 바뀌는 조명에 따라 특정한 색이 부각되거나, 변하는 작품을 보는 경험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 마법으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주인공 주변에 형형색색의 빛이 뒤엉키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피노키오의 메타모포시스> 중앙에는 꽃과 풀로 보이는 이미지와 새 한 마리가 보인다. 그럼 자연에서의 변화의 순간이라 작품을 읽을 수 있을까. 원래 자연의 일부인 나무였던 피노키오가 자연에서 떨어져 나오는 그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노트에서 피노키오의 변신을 “마법 같은 탄생”이라 말하며 “덕분에 피노키오는 자연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고 말한다. 작품에서 부각하고 싶은 피노키오의 특징도 이러한 부분이었다고 하는데 그 특징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노키오의 메타모포시스>와 함께 전시된 <새벽>, <정오>, <오후>, <저녁>이라는 이름을 가진 4개의 작품은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졌지만, 전혀 다른 색채를 보여준다. 색의 선이 이룬 장면이 자연을 직접 배회하며 느꼈을 바람이나 자연의 기운 같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처음 세상을 돌아다니는 피노키오에게는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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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샤르네, <오후>와 <저녁>

 

 

피노키오를 아는 동안 한 번도 살아있는 존재가 된 피노키오가 두 발로 걸으며 경험하고 만끽한 자연과의 관계와 그 느낌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나무 토막이 되었다가 두 다리를 가진 나무 인형으로 변신하는 순간. 자연의 일부에서 자연을 직접 걸어 다니고 바라보는 존재가 된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마치 이브 샤르네 작품 속 경쾌하게 뛰노는 듯한 굵은 색의 선들이 연상시키는 설레는 감정이 깃든 변신의 순간, 콩닥콩닥 뛰었던 마음이 이브 샤르네가 바라본 피노키오의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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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인형이었을 때는 정말 우스꽝스러웠어!

지금 이렇게 착한 아이가 된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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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urizio Quarello

 

 

‘나무 인형’이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피노키오라 할 수 있다면 ‘착한 아이’는 온갖 실수를 하고 위험한 사건이 도사렸던 모험을 겪은 이후의 피노키오라 할 수 있을까. 나무 인형이었을 때는 정말 우스꽝스러웠다는 피노키오의 말이 꼭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지금 우리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를 회상하면 내가 저질렀던 지금은 상상 못 할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떠오르곤 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에는 분명 실수도 하고 여러 사건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여우의 말에 넘어가기도 하고 괴물과 마주하기도 하고 언젠가 기적같은 일도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착한 아이'가 되었을까. 모르겠다.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소원이나 기쁨조차 어린 시절에 그냥 놓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여전히 나는 ‘나무 인형’일지도 모른다.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나 자신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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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展》에서 다시 만난 피노키오는 나를 계속해서 불러왔다. 거짓말이라는 상징이나 특정한 모습에 고정되지 않고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유롭게 해석되어 존재하는 피노키오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여러 감상은 결국 내가 나와 나 주변에 놓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피노키오를 마주하는 동시에 어딘가 숨어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 자체로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간 피노키오는 동화 그 이상의 이야기였고 꼭두각시 인형의 모험 그 이상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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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아, piAnocchio(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piAcocchio(라파엘로 천사)

 

 

기대했던 것보다 더《피노키오展》에서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며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동화책에서 만났던 것 같아 동심을 그리게 하는 일러스트 작품과 애니메이션부터 새로운 생각과 감상을 일으키는 영화, 설치 조형물, 회화, 미디어 작품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채로웠다. 하나의 동화 이야기를 가지고 이토록 다양한 해석과 작품을 만날 수 있다니, 흔히 만날 수 있는 전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리뷰에는 원작 구현에 집중한 작품보다는 내게 피노키오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게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리뷰했다. 작품 하나하나 이야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많은 작품을 만났기 때문에 가장 마음에 남은,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 중심으로 리뷰해 보았다. 짤막하게 남긴 앤서니 브라운 작품을 만난 것도 반가웠고 20여년 간 피노키오를 주제로 해왔다는 민경아 작가의 작품도 즐거운 시각적 경험을 주었고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같은 주제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그림체와 장면으로 그려진 작품을 만나는 경험이 즐거운 전시다. 아이들에게는 동화 작품을 만나고 체험하는 경험을, 어른에게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부터 피노키오의 새로운 이야기와 관점을 만나는 경험을 주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그림책으로 피노키오 그림과 함께 또박또박 문장을 읽어내려갔던 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작품 앞에서 이리저리  뻗어 나가는 생각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니. 피노키오를 두고 그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니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피노키오를 마주하며 어린 시절의 동심과 지금의 새로운 생각과 시선을 경험하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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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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