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김정우

글 입력 2020.06.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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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마술사, 항해사, 음악감독, 바텐더, 의사, 타로마스터 등. 어차피 사회 생활 하면서 알게되는 다양한 사람들은 있겠지만 나는 아직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신기하다.

 

"오빠는 내가 본 특이한 직업이니까, 항해사 얘기 많이 들려줘. 오늘은 그 컨셉을 유지해보자."

 

라고 했지만, 예상대로 실패했다. 편하게 이야기 나누면서 놀았다. 괜찮아, 어차피 같이 놀려고 하는 건데 뭐. - 긴장할 일이 뭐가 있다고 얼어 붙어 있는지, 담배피고 오고, 물을 계속 마시고. 너무 웃음이 났다. 편하게 앉게 시키고 그림을 그렸다.



정우1.jpg

 

 

눈을 그렸다. 그리고 코를 그리고, 보라색과 남색으로 머리를 덮었다. 얼굴형을 지나서 목선과 상체를 그렸다. 운동을 가득 한 몸이라서, 근육 그리기가 수월했다. 갑자기 누드모델 수업도 생각나고. 나중에 상의 탈의하고 모델해주면 좋겠다. 인체의 선은 한없이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팔(근육)을 강한 선으로 자신있게 그리고, 상의는 주황색으로 보여서 난색으로 칠했다. 연한 색으로 강한 선들을 덮었다. 언뜻 비슷한 형태가 나왔다. 내가 느끼는 친구의 모습.

 

"나는 미술은 잘 모르지만, 네 글을 봤을 때 야생마가 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어. 각 글들이 매력이 있는데 통일성이 없어서 따로 논다고 해야할까? 정제된 글은 보통 말들이 목장 안에 있어서 보기만 하면 되는데, 네 글은 내가 말을 찾으러 뛰어다녀야 해."

 

내가 가장 어려워하고 갈증나는 부분을 시원하게 말해줬다. 뛰어다니는 야생마라니. 통일성을 가져야할지 글마다 다르게 잡아야할지 아직 어렵긴 하다. 아직 고민이 많이 되지만, 이것도 꾸준히 이어나가면 뭔가 보이겠지. 이런 날카로운 통찰력이 고마웠다. 그림을 다 그리고 보여주니 감탄만 했다.

 

"오, 그림 되게 멋있다. 나 너무 잘생기게 그린 거 아냐?"


*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얼굴은 눈, 코, 입 등 다 하나씩 떼고 보면 괜찮은데 왜 합쳐서 얼굴을 보면 그 느낌이 아닌지 의아하다고 해서 좀 웃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고, 또 생각들을 나누면서 긴장이 풀려갔다. 늘 그렇듯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항상 내가 애정하는 고마운 친구.

 

말마따나 그나마 자신있다는 부위인 코를 그렸다. 정말 코만 그려야지. 코는 노란색으로 채웠다. 그리고 초록 선을 그렸다. 눈썹은 여전히 초록색이었다. 볼은 하늘색과 분홍색이었다. 친구는 하늘색과 파란색, 초록색 등한색 계열과 주황색, 노란색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사실 얼굴보다 몸에 신경을 더 많이 써. 솔직히 얼굴은 불로소득이잖아. 그런데 몸은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 수가 있어. 그래서 나는 내 신체, 몸을 키우는 게 너무 좋아. 어떤 운동을 할지, 어떻게 지방을 컷팅할지, 몸을 어떻게 키울지 등, 내 노력에 따라 그대로 드러나잖아.

 

그래서 나는 사람을 볼 때 운동하는 사람인지를 먼저 봐. 운동 하는 사람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거든. 내가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알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딪히며 노력을 해. 몸은 그렇게 키워나가는 거니까."



정우2.jpg

 

 

"나는 어떻게 보면 남이 만든 규율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왔잖아. 중/고등학교도, 해양대도, 바다에서도, 회사에서도. 평생을 남이 만든 틀 안에서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이 내 몸이야."

 

"아아- 오빠한테는 그게 창작이네. 그게 예술이었어.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쓰면서 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오빠는 유일하게 오빠만의 창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몸이구나. 그래서 운동을 필사적으로 하는 거였구나."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운동을 등록해서 하고 있다. 항상 운동하라고, 운동 하면 재밌다는 잔소리만 하던 친구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그런 철학이 있었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2시간씩 운동하는 친구를보며, 어떻게 저렇게까지 몸을 키울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운동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사실은 인생이 들어 있었구나. 역시 나중에 모델을 부탁해야겠다. 바라던 바다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현생에 충실한 헬스맨의 이야기는 따스했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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