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일제강점기 퓨전의 아이콘 _김병오 음악학자

글 입력 2014.02.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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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것과 현대 적인 것의 융합을 퓨전이라고 부릅니다.

요즘같이 다양한 예술 분야가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현상 속에서 퓨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그렇다면 음악의 역사 속에서 퓨전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김병오 음악학자는 우리나라의 대표 민요

아리랑이 바로 퓨전음악의 아이콘이라고 말합니다.

전통과 신유행의 화합으로 탄생한 아리랑을 바탕으로 살펴보는 퓨전음악의 시대, 함께 만나볼까요?



대한민국에서 민요 아리랑이 차지하는 지위를 넘볼 수 있는 노래는 없다. 초등학생부터 팔순노인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가 아리랑이요 해외 동포들과 만나 손 맞잡고 부르는 노래도 아리랑이다. 이 나라를 궁금해 하는 이방인들의 귓전에 처음으로 다가가는 한국의 노래도 바로 아리랑이며 남과 북이 하나되는 자리에서 부둥켜안고 함께 부르는 노래 역시 아리랑인 바, 애국가로도 결코 넘볼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자부심이나 경외감을 전해주는 노래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최근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지위가 부여되려는 찰나에 놓여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 민요 아리랑이 원래 1920년대를 풍미한 대중가요였다는 사실에 대해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토속민요의 원형이 민중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승되어 온 민요의 전범같은 노래가 아니고 1926년 나운규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아리랑>의 홍보 음악이자 삽입곡으로 등장했으며 서구식 왈츠 풍의 대중음악으로 새롭게 세상에 등장한 노래였음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우리의 전통과 무관한 새로운 노래인가 하면 또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아리랑에는 오랜 세월동안 전승되어 오던 토속 민요의 노랫말과 가락이 일부 차용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토속적 문화자산과 일제강점기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던 ‘모던’의 신유행이 화합하여 새롭게 창조된 노래가 바로 아리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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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제작된 영화 아리랑의 신문광고 및 상영관이었던 당시 단성사 전경.
민요 아리랑은 서구식으로 편성된 단성사의 악대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요즘은 아리랑처럼 전통과 신유행을 융합시켜 새롭게 만들어낸 음악들을 일러 간단하게 ‘퓨전(fusion)’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 국악기를 갖고 서구적인 음악을 비롯 한국적이지 않은 다양한 어법과 결합시키는 이들의 음악을 주로 그렇게 지칭한다. 비교적 최근 들어 국악 전공자들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퓨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그 덕택에 퓨전이라고 하면 대개 록(rock)과 재즈(jazz)가 결합된 음악을 떠올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악 요소가 결합된 다양한 음악 형식을 연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만일 아리랑이 요즘 만들어져 세상에 태어났다면 사람들은 아리랑을 일러 틀림없이 ‘퓨전’이라고 이름 붙였을 게다.
 
문학, 미술, 건축 등의 다른 예술 영역에서도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도전을 행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등장하게 마련인데 이들의 시도 혹은 새롭게 창조된 결과물에 대해 비평가들은 ‘해체’라는 정의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음악 영역에서는 새로운 것이 창조될 때 기성의 틀거리를 해체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과거의 재료들을 잘 버무려서 새로운 풍미를 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퓨전이란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시대와의 불화를 통해 창조하는 방법이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와의 융화를 통해 창조하는 방법도 있는 것인바 혹시 후자가 음악 예술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수도 있겠다. 그래선지 음악에는 빈센트반고흐와 같은 비운의 천재담이 별로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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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개최된 퓨전국악축제 여우락 페스티벌의 포스터. 프론티어 등의 음악으로 유명한 양방언을 비롯 국악계,
대중음악계의 대표적 퓨전 연주자들이 총집결하는 무대다.

한편, 퓨전 현상이 생겨날 때면 그것을 비판하는 소리가 뒤따르는 것도 자연스럽다. 새롭게 생성된 것의 의미를 간파하기에 기성의 잣대는 그닥 적절치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새로운 영역에서의 미적 성취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하지만 파괴를 통해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비판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퓨전, 융합의 가치는 늘 각별하다. 속출하는 비판과 자기 민망 속에서도 창조의 결실은 오로지 도전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의 대중음악 아리랑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장 소중한 음악적 자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퓨전을 주저하지 않았던 음악인들의 도전정신과 퓨전에 대해 고루한 선입견을 갖지 않았던 수용자들의 화합 정신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아리랑이 우리나라 음악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창조물로 남은 것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리랑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전통과 원형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유롭고 너그러운 퓨전정신, 융합과 창조의 정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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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오 (음악학자)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라디오 관악FM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OST 작업 및 포크 음악을 토대로 전통음악과의 퓨전을 추구하는 창작 작업을 병행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의 문화사』가 있고, 「한국의 첫 음반 1907」, 「화평정대」, 「바닥소리 1집」 등 국악 음반 제작에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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