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최초'를 거머쥘 모든 여성을 위하여 - 야구소녀 [영화]

글 입력 2020.06.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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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


 

'천재 야구소녀'라 불리는 주수인(이주영)은 프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부모님은 그가 당장 취업하기를 바라지만, 수인은 야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새로 부임한 코치 진태(이준혁) 역시 수인에게 프로 입단을 포기하라고 권유하지만, 수인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마음이 움직인 진태는 수인을 도와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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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스포츠물과 성장물을 조금씩 섞어 익숙한 흐름으로 끌고 간다. 사실 이 작품은 야구보다는 '소녀'에 방점이 찍혀있다. 신체적, 물리적으로 야구에서 불리한 위치의 '여자'가 어떻게 프로에 입단할 것인가가 이 영화의 큰 흐름이다. 성별, 신체적 한계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소녀'를 빼면 특별함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안타깝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수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주위의 반대에 끝없이 부딪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으로 증명해내려는, 어쩌면 비현실적인 수인의 캐릭터는 이주영이라는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단단함으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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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
 

 

못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해야 하며, 포기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는 어머니(염혜란)의 말은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끝까지 시도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부끄럽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포기할 때를 아는 것은 끝까지 시도해 본 사람뿐이다.

 

수인의 아빠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다 부담을 이기고 못하고 부정행위를 시도한다. 몰아붙이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인이는 자신을 믿으며 부담을 견뎌내고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다.

 

수인이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코치의 지원도 있지만,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면 그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누구도 자신의 가능성을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수인은 자신의 강점인 회전율을 이용해 너클볼로 승부 하고자 한다. 야구에 필요한 투수는 타자가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투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근력과 강한 힘으로 강속구를 잘 던질 수 있지만, 누군가는 유연성이나 집중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다. 단순하게 여자, 남자의 구분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내재된 장점과 가능성을 찾자는 영화의 메시지 역시 유의미하다.

 

영화 속 수인의 최고 구속은 130km 초반으로 나오는데 실제 성인 여성 투수 중 120km를 던지는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몇 명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인의 능력은 이미 나이와 근육량에 비교해 최고의 기량이다. 하지만 150km 이상 던져야 프로가 될 수 있는 남자선수들에 비하면 느리기 때문에 수인은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그들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최초'의 여성이 짊어지는 짐이다.

 

사회에는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을 통과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영화 <야구소녀>는 기성의 '기준'들에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프로 입단이 불가능한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행복인가? 가수는 외모가 전부인가?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지 못하면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는가?

 

그들이 고집하는 기준이 정말 최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탐색을 포기한 기존의 체계에 얼마나 성장의 여지가 있는가?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것은 재능의 한계가 아니라 기준의 한계다.

 

 

 

여성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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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이를 지지해 주는 친구와 코치도 중요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처럼 야구를 하는 또 다른 소녀들의 존재다. 한 명이지만 자신과 똑같은 싸움을 해나가는 여성과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후배의 존재를 보여준 점이 이 작품의 가장 좋은 지점이었다.

 

가족의 응원도 물론 중요하고 큰 힘이 되지만, 리틀 야구단 시절부터 '여자'이기 때문에 소외당했던 수인에게 함께 야구를 하는 동료와 후배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서로에게 보내는 지지는 크지 않지만, 그곳에 각자의 싸움을 견디며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게 해준다. 감독이 표현한 여성들 간의 연대가 희망과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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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타이틀을 얻는 이들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리고 남성들만의 향유물에서 최초가 되는 여성의 앞에는 남성들보다 수십 겹 더 많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못할 것도 없다. 이 모든 벽을 넘어 시작이 될 모든 여성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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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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