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립고,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6.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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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과거,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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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책에는 ‘그리움’이라는 제목을 담고 있는 시가 3개가 있다. 그리워하면 눈에서 소금물이 나오고, 햇빛이 보면 그리운 대상이 떠오른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대상을 더욱 그리워한다.

 

이 모든 시에서 그리운 대상이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시 중 적어도 하나에 공감하면서 과거에 그리운 사람 한명씩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고자 한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있는 두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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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민 화가의 작품

 

 

첫 번째는 과거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 우정 반지 끼던 초등학교 친구, 도움을 주던 학원 선생님, 기운 없는 내게 아이스 커피 한잔 건네주던 대학 동기가 가끔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 마음에 품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굳이 찾아 나서지 않는다(이유는 그들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 아직 만나지 않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또한 그리워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방문을 잠그고 이소라 음악을 틀면서 창가에 기대어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이 구름 사이에서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낮에는 구름이 지나가는 속도에 감탄하고 밤에는 달이 보였다 안보였다 변하는 모습을 보며 원인불명의 혼란을 자연으로부터 잠재웠다. 언젠간 나에게 올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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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성, 라퓨타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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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일부분이다. 두 등장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신발을 신었다가 벗고, 모자를 서로 건네고 쓰고 벗고, 자살시도하고, 춤추고, 욕하고, 의미 없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고도(godot)’를 기다린다.

 

고도의 정체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은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지만 대체로 신 혹은 신으로부터 구원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한편 저자 베케트는 고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기변환]그리움2_전수민.png
전수민 화가의 작품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고 있는 대상이 그저 과거의 어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줄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잊기 위해 일하고, 연애하고, 술 마시고, 수다 떤다. 우리를 구원해줄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살아있는 한 고도처럼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하고 싸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삶의 고통과 허무함을 잠재우기 위해 무언가를 갈망함으로써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임의의 한 사람을 정해 그리워하고(혹은 그리워하기로 ‘마음먹고'), 미래 누구를 만나게 될지 기대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목 빠지게 찾고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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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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