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일의 말 [사람]

글 입력 2020.06.0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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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하고 이틀이 되어가는 인턴의 메일에는 벌써 160개 정도의 메일이 쌓였다.

 

주말 빼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온 메일.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스팸 삼을 만한 것은 없었고, 모두 ‘~의 건’, 혹은 ‘요청’, ‘문의’ 정도로 똑같은 제목이 붙여진 것들이라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메일들이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일 속에 널려있는 흔한 ‘확인’이라는 말이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몰랐었다. 그간 내가 알고 있던 확인은 그저 시험기간이 언제인지, 과제가 무엇인지, 팀플 팀원이 누구인지 정도 확인하는 일에 그쳤는데, 무엇이기에 ‘확인’을 부탁까지 할 일인가.

 

따라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 거지? 하는 막막함으로 나는 “확인했다”라는 회신을 보내기 위해 기본 30분 정도를 메일 앞에서 머리를 한참 싸매곤 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보낸 메일에도 “확인 부탁드릴게요.”하는 말을 똑같이 덧붙이게 되었는데, 그렇게 확인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주고받는 메일의 말이 나는 마치 시한폭탄을 주고받는 일과 같다고 생각되었다.

 

어떤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 계속 계속 서로의 책임을 넘기는 말. 더 정확히 말하면 ‘난 일단 내 할 일을 다했으니 이제 네 차례다!’하며 당신의 일임을 강조 또 강조하는 말.

 

음 어쩌면 사회에 내던져진 어른들은 매일 이런식으로 서로의 생존을 확인, 아니 부탁하고자 하는 것일까.

 

*

  

한편, 잘 존재하지 않되 존재하는 말도 있다. 흔하지 않다는 소리다. ”감사합니다. 000드림.” 직전의 말들. 메일 본문과 끝맺는 말 사이의 여백에 가끔 한 줄씩 껴 있는 쪽지와도 같은 말들이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남은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등등등. n년차 직장인들에겐 또 뻔하고 흔한 인사치레같은 말일지 몰라도 아직 인턴애송이인 나에겐 꽤나 살가운 말들이다.

 

저 한 줄을 타이핑하는 데에 드는 수고가 얼만가, 생각한다. 분명 흰 도화지 같은 흰 바탕의 메일창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딱딱한 줄과 형식에 매번 기가 죽어 매일 그럴듯한 딱딱한 말을 써내기 위해 고심하는 내게 ‘자, 이정도는 허용해줄게’ 하며 줄 하나 형식 하나정도는 덜어주는 말이랄까.

 

그 덕분에 덩달아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하며 말 다운 말을 건낼 수 있을 때면, 그 다음 바로 역시나 “확인 부탁드립니다.” 하는 본문 내용이 마냥 밉지는 않아보일거라는 안도감이 든다.

 

조금 더 솔직했으면, 조금 더 정겨웠으면 하는 바람이 아무래도 메일을 앞에 둔 날 더 괴롭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수도없이 '메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도 알고 있는데. 실상 메일에 가려 정말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못한 느낌.

 

회색 그리고 사각형의 오피스에 앉아 타닥타닥 두드릴 수 밖에 없는 메일의 말들이 아직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슬프거나 아주 기쁘진 않아도 조금 씁쓸하거나 조금 아무렇지 않은, 무미건조한 일의 말들. 아마 돌아오는 월요일인 오늘, 그리고 화요일과 수요일도 목, 금까지, 메일에 적힌 말들을 보며 생각할 것 같다.

 

메일 앞 매-일 무표정일 그들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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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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