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씻어주는 눈물 [문학]

21세기에 감히 논하는 문학의 쓸모
글 입력 2020.06.0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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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유리창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어느 날 밤, 잠을 이루려던 한 남자가 허한 가슴에 침대에서 일어난다. 터벅터벅, 불 꺼진 방을 쓸쓸히 걷던 중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창에 서린 김이 왜인지 산새가 날아온 것만 같다. 새의 날갯짓이 사라지지 않게 그는 창에 입김을 불기를 반복한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지겹긴 커녕 반가운 맘마저 든다. 새까만 밤이 창으로 들어 오려하나 이내 창에 부딪혀 밀려나고 만다. 끝내 들어오지 못하는 새까만 밤….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의 눈에 박힌 별-그가 바라보던 별-이 물을 먹는다. 눈물이 뚝, 떨어져 내릴 때 그의 별도 반짝, 선명하게 빛난다. 물 먹었던 별이 깨끗이 씻긴 듯 맑은 보석이 되었다. 깊은 밤 유리에 비친 산새는 고흔 폐혈관이 찢긴 채 날아간 아들 같다. 외롭지만 황홀한 재회…. 끝내 그는 홀로 나지막이 아들을 외치며 탄식한다.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정지용의 '유리창1'의 일부이다. 고흔 폐혈관이 찢긴 채로 산새처럼 날아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쓴 이 시. 가난으로 아들을 잃고도 그의 별은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비극 중 가장 큰 비극을 겪은 그의 별이 절망에 찌들거나 저주스럽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보석처럼 빛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별이 보통 별이 아니라 '물 먹은' 별이었기 때문이리라.

 세상을 씻어주는 눈물, 문학에 대해서
  내게 문학은 세상을 눈물 머금고 볼 수 있게 하였다. 너무 선명하게 세상을 볼 때면 세상은 늘 날카롭거나 차가웠다. 문학은 그런 두려운 세상을 내게 조금 흐리게, 조금 더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겁내지 않아도 돼, 도닥이는 것 같았다. 눈물 머금고 보는 세상은 조금 덜 겁났다. 아니, 아름답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친구와 함께 갔던 식당에서 걸인이 다가 온 적이 있다. 그에게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주려고 할 때 그런 내 손을 탁 치며 친구가 말렸다. 저 분들 정당치 않은 저런 수법으로 많은 돈을 모은다고, 알고 보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건 저런 이들이 아니고 우리일 수 있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었다. 당장 점심 먹을 돈이 없어 굶고 다니는 가난한 대학생이 나의 처지였다. 친구의 말에 어느 정도 납득이 가고 그 일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때 쯤, 우연히 책의 머리말에서 이런 글을 마주했다.

나는 신발이 없다고 울적해 했네.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까지.
                                 -데일 카네기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글을 읽고 그 때 보낸 그 걸인이 떠올랐다. 선명하게 보자면 잘못된 방식으로 돈을 버는 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학으로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니 그 밑바닥, 자존심의 밑바닥을 치기까지의 많은 절망과 실패가 보였다. 그렇다. 내게 글을 읽는 것은, 문학을 읽는 것은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울지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가 한 아이의 고름을 입으로 전부 짜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과연 그가 시력이 나빠 그 고름의 더러움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그 고름을 입으로 짜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나의 생각이지만 그는 ‘사랑’으로 촉촉해진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아 조금은 흐리게, 또 아름답게 그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세상을 흐릿하게 미화시켜 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내 고인 눈물이 떨어지면 세상은 때가 씻긴 보석처럼 반짝, 한층 맑게 박히는 것이었다. 문학은 내가 눈물 속에 머무르기만 하게 하지 않았다. 한층 맑고 선명한 세상 속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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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가 쓴 불법다단계에 빠진 청춘의 이야기, <서른> 본문 중 주인공이 서울의 야경을 ‘깨물어 먹고 싶을 만큼, 예쁜 서울’이라고 반어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그걸 읽고 다시 본 서울의 야경은 왜인지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같은 풍경이라도 문학으로 씻기고 나면 맑은 물을 들여다보는 듯 훨씬 깊이 보이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선명함
  다시 맨 처음 언급했던 정지용의 시, ‘유리창1’으로 돌아와 보자. 가난으로 아이를 잃은 그가 별을 증오에 가득 찬 불덩어리가 아닌 ‘보석’처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늘 촉촉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였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눈물을 머금은 데서 머무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눈물을 떨어뜨렸다. 있는 그대로 선명한 세상을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물이 촉촉이 물들이고 깨끗이 씻어간 선명함은 그것 이전의 선명함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기 이전의 선명함과 이후의 선명함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왜 꼭 눈물이 필요한가. 어차피 똑같은 선명함인데. 오히려 눈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더, 더 선명하게 보려 애쓴다. 그러나 그들은 눈물을 머금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다. 눈물로 씻겨나간 세상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줄 수 없는 맑음을 세상에 준다는 것을. 그것은 결코 똑같은 선명함이 아니라는 것을. 더 맑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눈물로 씻어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을….

문학만이 가지는 힘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유행할 정도로 문과가 등한시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나는 감히 문과의 쓸모에 대하여 말하겠다. 김신회 작가가 쓴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에 대해 논하기에는 충분히 살지 못했지만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잘 사는 법, 성공하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넘어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인생을 10이라고 봤을 때, 잘 사는 기간은 고작 2 또는 3이고 1도 채 안 될 때가 더 많다. 나머지 기간은 대부분 좌절하거나, 좌절을 딛고 겨우 일어서거나, 그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해 웅크려 있거나,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다.”

  책에서 말한 그 좌절의 시간에 기술이나 과학은 무얼 할 수 있을까? 물론 VR기계를 끼고 슬픔을 잊거나 인공지능 siri와 함께 농담을 주고받는 등 각종 기기들로 무료함을 달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그 시간을 극복한 것일까? 순간의 감정만을 잊게 해줄 뿐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극복하고 그로인해 성장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과를 무시하는 발언은 아니다, 다만 경시되는 문학의 기능, 즉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학을 통해 사람들은 어쩌면 인생의 3분의 2를 넘길 수도 있는 그 좌절의 시간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에는 힘이 있다. 어떤 첨단 기술도 가지지 못한 힘. 바로 세상을 선명하게, 더 맑고 또렷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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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 중.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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