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누벨바그 영화를 아시나요? 거장 아녜스 바르다와 누벨바그 영화의 세계로

글 입력 2020.06.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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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통해서였다. 프랑스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얼굴을 건물에 담아내던 바르다와 JR의 모습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사실 당시에 다큐멘터리 장르의 영화를 즐겨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꽤나 신선하고도 즐거운 충격으로 남아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사랑스러우며 흥미진진하고 눈물이 핑 도는 감동까지 선사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를 다큐멘터리 영화와 누벨바그 영화에 ‘입문’시킨 아녜스 바르다는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화들만을 남기고 작년 초, 별이 되어 우리들의 곁을 떠났다.

 


“한 여성으로서 직관에 따라 작업하고 보다 명민해지려 노력해요.느낌과 직관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기뻐하고, 의외의 장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바라보죠.”

 

“바위들 사이에 작은 샘이 있고, 그 샘은 마르지 않죠.이 철없지만 집요한 낙관주의는 제 행복의 원천이기도 해요.”


 

책의 첫 장을 여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들은 그 어떤 말보다 그녀가 전방위적 예술가임을 잘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사진작가이자, 영화 감독이자, 매력적인 스토리텔러였던 그녀의 세계를 처음 맛 본 이후 늘 그녀를 동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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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진작가였고, 영화감독이었으며, 각본가이기도 했고, 설치미술가이기도 했다. 하나의 직업으로 규정되어지기를 거부했던 그녀의 인생을 나는 늘 동경했다. 매번 신선하고 싶었고 창의적이고 싶었다. 하나로 정의되어 지고 싶지도 않았다. 늘 변화하고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동경하는 그 모든 것들을 지닌 그녀의 생각, 화법, 작품 모두를 사랑하게 될 정도였다. 심지어는 그녀의 머리색을 보다보니 자주색, 보라색이 좋아지기도 했다.

 

아녜스를 알게 된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시작으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이렇게 역순행으로 그녀의 영화 일대기를 찾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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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색다르고 신선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작품들을 관통했던 공통점은, 귀엽다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아녜스 바르다 특유의 따듯한 감성이 서린 귀여움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느낀 건, 나도 진심으로 그러한 따듯함을 닮고싶단 거였다. 아무리 힘들고 치사한 일을 겪더라도 세상을 흔들림없이 유쾌하게 바라보는 그녀만의 따듯함을 나도 가지고 싶었다.

 

사실 내가 생각했을 때의 단단함이란, 아무리 힘들고 원망스러워도 세상과 나라는 존재를 유쾌하고 밝게 바라보는 힘이다. 나만의 유쾌함이 서린 귀엽고도 따듯한, 나아가 단단한 시선을 가지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아녜스가 더 좋아졌던 것 같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삶 속에는 그런 힘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작품들을 보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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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들을 보며 공부하던 와중에 작년 초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향년 90세의 나이로 별이 된 그녀. 제 72회 칸 영화제에서는 그녀의 모습이 담긴 공식 포스터를 내보이며 추모의 뜻을 가졌다.


그녀의 마지막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그녀가 남긴 영화들 위주로만 봤던 나는 아무래도 인터뷰나 그녀가 살아왔던 생애에 대한 자료들에 대해 더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보물처럼 찾게 된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을 만나게 되었다.

 

*


책은 바르다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삶을 간접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서문에서 그녀의 인터뷰와 그녀의 작품을 교차적으로 비교한다. 바르다의 삶과 바르다의 가치관이 녹아든 작품간의 관계성을 배치하여 읽기 쉽게 전개해나간다. 때문에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와 영상 속 미학적 요소에 있어 바르다가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되새기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던 요소 또한 굳이 몇가지 꼽자면 바르다의 미학적 요소, 탐구정신, 거짓없는 신념을 담은 픽션, 다큐멘터리 정신 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책의 서문이 끝나면 바르다의 작품별 인터뷰에 따라 순차적으로 목차가 정리되어있다. 책에서도 밝히길, 온전한 모습의 아녜스 바르다 그녀의 가치간과 신념을 담고 싶었기 때문에 최대한 편집을 자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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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답게 그녀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녀의 모든 영화 및 작품 속에는 미학적이고도 철학적인 요소가 빠지질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대표작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3작품 정도는 미리 보고 책을 접한다면 더 깊고 풍부한 감정을 느끼며 읽을 수 있다. 확실히 사진작가였던 영화 감독이기에 내가 상상한 것 보다 더, 그 이상으로 거의 영화의 매 숏마다 의미가 부여되어 있었다.

 

 

 

'누벨바그' 영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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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누벨바그라는 영화적 경향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누벨바그’란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1950년 말에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젊은 감독들의 스타일을 담은 영화들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영어로는 ‘뉴 웨이브’라 불리며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흐름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모든 예술 사조의 흐름에서 그렇듯, ‘새로움’이라는 경향을 지닌 사조는 혁신적이고 파격적이다. ‘누벨바그’ 또한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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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프랑스 영화사에서는 없었던 기법과 장르를 구사했고 때로는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카메라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흔든다던가, 연기자가 갑자기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을 건다는 식의 ‘어이없는’ 연출 기법이 특징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법들은 현재 영화 산업 내에 자리잡아 ‘플래시 컷’, ‘점프 컷’, ‘핸드 헬드’ 라는 기술로 불리 우고 있다. 이에 따라 ‘누벨바그’는 작가, 감독 등 예술가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야 한다는 ‘작가주의 이론’이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장뤽 고다르 감독 또한 누벨바그의 대표 감독이다.

 

이 모든 정의와 예시를 차치하고서라도,  ‘누벨바그’ 영화 경향이 곧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의미라는 걸 안다면 설레임과 궁금증이 저절로 솟아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려하면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예요."


 

인터뷰 속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말이다. 확실한 작가주의 정신과 누벨바그 감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아녜스바 바르다의 해변’ 이후로 지속적으로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인다. 이어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 나면 그녀가 세상과 사람들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라보는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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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상하게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분명 재치있고 유쾌한 바르다와 JR의 담소, 나레이션, 행동들로 보는 내내 웃음꽃이 올라오는 그런 영화였는데, 끝날 즈음이 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눈물을 같이 글썽였던 걸 생각 해 보면 분명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 듯 하다. 덕분에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지워버리고 애정을 갖게 된 첫 계기이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나 또한 너무나 별로고, 짜증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다. 모두들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순간은 어쩌면 더 자주 찾아올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들을 만난 이후부터는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더라도 그런 순간들을 피해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일명 ‘인류애 상승’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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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프랑스의 시골로 34세 거리 예술가 JR과 89세 누벨바그 감독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정말로, 정말로 꼭 추천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인생이 힘들 때, 지칠 때 주기적으로 찾게 될 정도로 많은 생각이 들거라 자신한다.

 

이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 인터뷰 또한 읽다 보면 영화에서만큼이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재치 있고 귀여운 발상들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거대한 사진기로 출력해 건물 외벽에 붙인다. 일종의 거대한 설치 예술이자 전시인 셈이다.


그들의 얼굴을 단순히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건물 간의 관계성을 돋보이도록 배치한다.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재치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 대해 인터뷰 또한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어: 그 기발한 장면은 어떻게 탄생한건가요? 사람들이 계단에 서서 커다란 글자 모형을 들고 있는, 시력검사하는 장면요.

 

바르다: 저는 자주 시력검사를 해야해요. 항상 그렇게 문자표로 시작하죠.

 

JR: 감독님이 어떻게 보시는지 이해하고 싶었어요. 머릿속 진행상황이 궁금했죠.

 

바르다: JR이 글자를 아주 크게 만들었어요. 재밌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는데,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죠. 그걸 게임처럼 만들었어요. (중략)


 

자신의 시력검사 경험을 되살려 사진 프로젝트에 녹여낸 바르다의 센스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한 인터뷰였다. 그러면서 덧붙였던 바르다의 몇 마디는 앞서 여러 번 말했듯, 그녀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애정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했다.

 


“사실 세상은 엉망이에요. 하지만 외면할 수 없죠. 엉망인 상태를 직시해야 해요.”


 

그렇다.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그 속에서 나만 빼고 정상인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리는 원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 모든 것을 피해 혼자 꽁꽁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바르다의 영화를 보면,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힘든 순간을 겪는 와중에도 단단하고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끔 한다 해야 하나. 힘들수록 유쾌하게 털어버리는 힘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마냥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은 순간마다, 진정으로 휴식을 취하고 마인드를 재정비하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힘들 때마다 그녀의 영화를 찾곤 한다.


*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사진작가였으며 영화적 경험이 전무했으나 누벨바그의 대표 감독으로 꼽히는 아녜스 바르다. 그녀의 일생 그 자체만 놓고 봐도 유연하고, 도전적이며,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주의 정신이 돋보인다. 그래서일까 영화감독이라는 호칭만으로 정의하기엔 그녀의 인생과 신념의 스펙트럼이 너무나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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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이고, 사진작가였고, 영화감독이였고, 뛰어난 스토리텔러였던 아티스트 아녜스 바르다. 그녀의 말과 작품을 접한다면 유쾌함과 유연함이 한데 섞인 세계가 무엇인지, 또한 그러한 세계가 주는 참된 힐링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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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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