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래도록 영원할 희망의 찬가 - 프랑스 로맨틱 음악의 향연 [공연]

상실의 음악은 어떻게 연대를 희망하는가
글 입력 2020.06.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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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희망이 절실한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연대감을 확인한다. 솔로 영상은 물론이거니와 오케스트라 같은 대규모 공연까지 문화와 국적을 초월한 다양한 언택트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음악에서 비롯된 감정의 공유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 소중함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음악은 우리의 일상과 친밀히 존재하는 예술이자 인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음악의 진정한 목적이 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숭고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중 교향곡 오케스트라와 합창 연주처럼 다수의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예술적 관계는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킨다.


악기의 선율은 그 어떠한 해석도 요구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각자의 감정이 허용된다.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이 만나서 한 데 어우러졌던 함신익 심포니 송의 '프랑스 로맨틱 음악의 향연'은 코로나로 인해 웅크려있던 날들에 대한 따뜻한 선물 같았다.

 


 

가브리엘 포레 <파반느 Pavane o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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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작품이 연상되는

가브리엘 포레의 Pav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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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포레 (1845~1924)

 


공연의 시작은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 Pavane op.50>로 시작되었다.


사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생소한 곡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큰 기대와 설렘으로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맑고 단아한 플롯의 소리로 시작되며 전체 연주를 이끌었는데 프랑스에 대한 화려함과 장식적인 이미지가 아닌 단정한 절제미가 느껴져서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근대 프랑스 가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포레는 쇠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평생 동안 귀족적인 품위를 동경했다고 하는데 그런 성향이 담백하고 간결한 선율에 그대로 묻어난 것 같다.


당시 유행이었던 독일의 낭만주의 사조와는 달리 우아한 절제미가 그만의 특징이다. 이처럼 파반느 Pavane는 에스파냐어 파보 pavo인 공작의 우아한 동작을 흉내 낸 곡으로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연주자들의 몸짓도 한 편의 아름다운 안무처럼 품위 있게 느껴졌다.

 

 


카미유 상생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Egyp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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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생상스(1835~1921)

 


포레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카미유 생상스는 '프랑스의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불릴 만큼 근대 프랑스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Egyptian>은 제목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었다.


두 어린 아들의 죽음을 동시에 경험하고 부인과 평생 별거하게 된 생상스는 비극적인 절망감을 달래기 위해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그중 이집트를 특히 좋아했는데 이 곡은 그가 이집트 남부 고대 도시에서 경험한 정취와 나날들을 피아노 협주곡 형태로 재현한 곡이다. 통통 튀는 피아노의 선율과 현악기의 흐름이 물 흐르듯 이어지며 강가를 항해하는 어느 여행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아름다운 선율을 바탕으로 때로는 생상스의 슬픔과 절망이 느껴지지만 중간중간 자연의 다채로운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들은 경쾌하고 즐거운 느낌이 들게 한다.


박종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생상스의 여행기를 함께 읽어내듯 서정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감상을 자극하여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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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aethral Temple Philae , David Roberts

 

 

 

가브리엘 포레 <레퀴엠 Requiem o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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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주 <레퀴엠 requiem op.48>은 진혼곡으로 죽은 자의 혼을 달래기 위한 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구원을 위한 간청과 자비를 노래하는데 이는 가톨릭 미사 전례문에서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첫 가사에서 명칭이 유래했다.


국립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연주단이 함께 했던 곡으로 소프라노 양지영과 바라톤 공병우의 독창이 더해지면서 신을 향한 인간의 기도가 더욱 심오하고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곡가였던 포레는 당시 가톨릭 종교관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종교적 구원을 실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다른 작곡가들의 레퀴엠보다는 전반적으로 밝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도 초연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포레는 곡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죽음은 고통보다는 오히려 영원한 행복의 기쁨으로 가득 찬 해방감이다."

 

 

 

존재의 사랑과 연대의 심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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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상실과 고통에서 비롯되었던 상생스와 포레의 음악은 지금의 우리에게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을 던져준다. 더불어 함신익 심포니 송의 아름다운 화합의 몸짓이 마치 한 무리의 나비처럼 느껴지면서 인간의 연대와 사랑에 대한 초월적 의지를 상기시켜준다. 한 사람, 한 악기의 연주가 모여 전체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 인간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관람객들끼리 다소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무대를 지켜봐야 했지만 오히려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가 결코 외따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었다. 좌절 속에서 상실과 아픔마저도 초연하게 바라보며 극복해나갔던 프랑스의 위대한 두 작곡가가 전하는 선율을 느끼며 존재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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