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슬퍼하라, 그대의 슬픔이 흘러 넘칠 때까지

아홉 번째 눈사람: 슬픔이 두려운 그대에게
글 입력 2020.05.3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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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마주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감정에 솔직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주는 아픔까지 모조리 견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인지할수록 더욱 커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외면하게 될 때도 많다. 슬프다고 말하면, 슬픔이 쏟아져버릴 것 같아서 꾹 눌러두게 된다. 그 속에서 감정이 독을 품은 후, 그제야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아프니까. 아픈 건 싫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 차오르는 감정들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 넘어졌다. 담아두고 넣어두고 묶어두고 반복하던 중,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순간에 바라봐주지 않은 감정은 나를 오래도록 그 순간으로 소환했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나는 해소되지 못한 감정 속에 갇히곤 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바라봐 주라고 했다. 외면하지 말고 하나씩 느껴가며, '내가 지금 슬프구나, 아프구나',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라고 했다. 그래야 나에게서 떠나간다고, 감정을 잡아두지 말고 보내주는 법을 알려주었다. 감정은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쳐야 나에게 달아나는 거라는 말은 오래도록 나를 맴돌았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슬프다고 했을 때,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대신 "슬퍼도 괜찮아. 맘껏 울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슬픔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슬퍼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아파한 사람이 가장 빨리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플 땐 최대한 열심히 슬퍼해야 슬픔이 떠난다는 것. 제 몫의 슬픔을 견뎌낸 사람만이 회복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애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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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잇따른다. 영원히 모를 것 같던 감정을 처음 알게 된 건 2017년 12월 18일 샤이니 종현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애도해야 그를 보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애도, 그런 게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보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나와 함께 조문을 가지 않았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애도했다. 모든 걸 쏟아내기 전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빈소를 떠나지 못했다. 하나도 믿어지지 않는데 그냥 울었다. 전할 수 없던 말들을 입 밖에 꺼내어 외쳤다. 그곳에서 하는 말들은 그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자가 사진을 찍든 하늘이 어두워지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해 그를 앓았다.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모든 건 사실이었고, 그는 없었다. 함께 샤이니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더는 샤이니 얘기를 꺼내지 않고, 흔적을 지워나갈 때, 나 홀로 그것들을 추억이라 불렀다. 여전히 나는 그와 이별하는 중이지만, 우는 만큼 벗어나고 있다. 울고 나면 매일 그가 한 발짝씩 멀어져 있다. 손을 흔들며, 예쁘게 웃으며.

그 후에 나는 상실을 앓는 사람에게 꼭, 최선을 다해 애도하라는 말을 해준다. 그래야 스스로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을 보내줄 수 있다고. 순간에 머물러 있지 말고 슬퍼하라고 한다. 온몸에 남아있는 그 사람의 흔적을 전부 앓아내야 사라질 수 있다고.



슬픔의 얼룩은 흐르는 눈물로 씻어내라.


"울지 마."라는 말을 싫어한다. 나는 슬픔이 눈물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눈물과 함께 슬픔이 나에게서 나와 흘러가고, 조금씩 사라져간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쁜 생각에 괴로울 땐 억지로라도 울려고 한다. 모든 감정이 눈물에 씻겨가길 바라며 엉엉 운다. 울고 나면 확실히 괜찮아진다. 비워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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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별을 한 친구에게도 최대한 많이 울라는 말을 해줬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울고 다 비워내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비워낼 수 있는 것들은 아니겠지만, 그녀는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아파했다. 그리고 우는 게 지겨워질 때쯤 제 몫의 이별을 마쳤다. 최선을 다해서 아파하고 나니까, 전부 다 보내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분명 안 슬픈 척 다른 사람을 만나고, 유흥을 즐길 수 있었지만, 충분히 아파해야 완전히 벗어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움, 후회, 미안함 따위의 이름을 붙여주며 감정을 놓아주고 나니, 후련함만이 남을 수 있었다며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말을 하기까지 혼자 뱉어냈을 울음과 견뎌낸 슬픔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것들을 견딘 그녀가 참 대견했다.

그래서 아파 본 사람이 성장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었다고 모두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아픈 사람만이 견뎌낸 슬픔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모두가 가진 제 몫의 슬픔은 다르겠지만, 그 얼룩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눈물에 흘려보내는 것임을 느꼈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면역이 약이다.


밀려오는 슬픔을 가둬두지 말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슬픔이 나를 스쳐 지나갈 수 있도록, 내가 그 순간을 지날 수 있도록 보내줘야 한다. 그렇게 나를 떠난 슬픔은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다.

영영 나를 가둬버릴 것 같던 슬픔도 결국 눈물에 씻겨 나갔다. 더디더라도 아플수록 조금씩 연해질 것이다. 최선을 다해 슬퍼한 사람만이 예쁜 추억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많이 아프지 못하면 영영 마음속에 흉이 남는다. 과거를 돌아볼 수도, 추억을 가질 수도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많이 울어야 한다. 많이 아파야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모를 채 외면하고 흘러가는 시간은 약이 될 수 없다. 어쩌면 회복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아픔을 딛고 슬픔을 쏟아내어 고통에 면역이 쌓이면, 그 면역이 바로 진정한 약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성장한 내가, 그제야 더 큰 아픔을 견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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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 몰려올 때, 최대한 많이 아프길 바란다. 그 시간에 충실히 아파하고, 그렇게 고통에 대한 근육이 생기고 면역력이 길러진다면, 무엇도 무의미하지 않을 테다. 아픈 감정은 내가 나를 돌봐줄 때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플 땐 아프고, 슬플 땐 슬퍼하자. 최선을 다해 울고, 열심히 아파하자.
 
주어진 슬픔이 전부 흘러넘친 후에는, 한층 가볍고,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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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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