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2. 다시 우리 물고기로 만났으면 좋겠다

5일천하 수영편
글 입력 2020.05.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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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다시 우리 물고기로 만났으면 좋겠다>로 이어갑니다.

 

***

 

근래 들어 글이 잘 안 써졌다. 어떤 단어들이 떠올라도 문장으로 만들려고만 하면 누군가 내 뇌에 검은 물감을 뿌리는 것처럼 머릿속이 새까매지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은 자판 위를 하염없이 맴돌았고 이럴 때일수록 다른 사람의 글도 읽히지 않았다.

 

그럴 땐 무작정 나가서 걸었다. 코로나 시대에 백수이며 취준생인 나는 마땅히 나가야 할 명분이라는 게 없어서 괴로웠다. 워낙 집에 있는 것과 한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내 의지냐 아니냐는 꽤 중요했다. 코로나가 이만큼 심각해지기 전에는 복지센터에서 수영을 다녔다.

 

수영을 등록한 건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늦어도 3월 초에는 항공사들이 상반기 공채를 낼 거라고 해서 막 학기가 끝나자마자 승무원 양성교육과정을 신청했다. 볼이 얼얼하도록 웃는 연습도 하고, 허리만 45도 굽혔다가 일어나는 인사 연습도 하고, 기내의 방송 영어 연습도 하고, 두 무릎을 꼭 붙이고 두 손은 배꼽 위에 꼼짝없이 두고서는 1차 면접, 2차 면접, 비디오 면접까지 봤다. 참여 학생 55명 중에 3등을 해서 스타벅스 기프티콘 5만 원권까지 받았을 때, 상상 속의 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뜰 것 같은 공채라는 기회를 꽉 잡고 싶어서 수영을 등록한 것이다. 복지센터에 등록한 건 돈이 없어서였다. 국어 학원에서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치며 버는 돈은 생각 없이 돈을 쓰기에는 충분치 않아서 나는 복지시설마다 전화를 걸어 한 달 치 가격을 비교하는 데에 시간을 써야 했다. 이럴 때이면 시간이 금이 아니라, 꼭 금이 시간인 것 같다. 어쨌든 한달에 5만 원 정도 되는 복지시설을 고른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옛날부터 미리미리 준비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매일 화가 났다. 왜냐하면 내가 당일날 아침에 책가방을 챙기며 아무렇게나 구겨진 알림장을 펼치고 "엄마 나 오늘 준비물 사야돼"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수영장에 갈 준비물을 챙기기로 마음먹은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그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영에 가기로 했는데, 입을 수영복이 없었다. 나는 급하게 이마트를 갔지만 꽃무늬가 잔뜩 들어간 화려한 수영복이나 발목까지 오는 검은 잠수복밖에는 없었다. 마음이 급박해졌다. 쿠팡 어플에서 로켓배송 항목에서 제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수영복이 수영강습비보다 비싸면 안 됐다. 최대 2만 원대여야 했다. 그리고 초보자용이어야 했다. 누군가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검정이나 네이비색에 가슴과 허리의 노출이 최소한인 수영복이어야 했다. 이외에 수영모, 수영가방, 수경까지 무난해야 했다.

 

다행히 수영복은 토요일에 도착했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우리 지역에서 나오는 바람에 2주 동안 가지 못했다. 2주 뒤, 나는 드디어 수영에 갈 수 있었다. 설렜다. 배우고 싶었던 것을 처음 배우러 가는 마음은 늘 새롭게 좋다. 매해 12월 31일이 오는데도 1월 1일로 바뀌는 자정이 벅찬 것처럼 다시 태어날 내가 기대된다. 뭔가 그런 허세 가득한 마음에 복지센터 구석의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뽑아 마시고, 지난번 등록하러 왔을 때 만든 복지카드를 찾으러 카운터에 갔다. 예상치 못한 사진이 복지카드에 콱 박혀 있어 날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3주 전에 수영을 등록하러 왔을 때 복지요원이 컴퓨터에 달린 캠으로 "사진 한번 찍을게요" 하고 찍은 무방비한 나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허세 가득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었다.

 

탈의실 열쇠는 카운터에 복지카드를 맡긴 선착순으로 강습 20분 전부터 배부됐다. 소수의 아저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주머니와 할머니들로, 그들은 무리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기미를 뺀 뒤에는 선크림을 꼭꼭 발라줘야 한다는 등의 생활 팁을 나누며,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봤을 그들은 각자의 안부와 매무새를 알아봐 주며 친밀도를 쌓고 있었다.


그들 세계에서 이방인인 나는 조금 동떨어져 수영장 내부를 궁금해하며 앉아 있었고, 내 이름이 호명되자 얼른 카운터에 가 탈의실 열쇠를 받았다. 밖의 사물함에 키를 열심히 꽂던 나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자 이게 아닌가 보다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들 훌렁훌렁 옷을 벗고 익숙한 듯 짐을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 나도 지상의 옷을 벗고 수영복, 수영모, 수경, 바디워시, 샴푸를 들고 샤워실로 갔다. 마치 목욕탕에 온 것 같았다. 아직 익숙지 않아 남들 하는 걸 계속 눈치껏 살폈다. 아, 수영복은 거품을 내서 입은 다음 물로 헹구는 거구나, 수모는 머리를 묶은 뒤 쓰고 묶은 머리가 튀어나온 곳에 수경을 끼는 거구나 등의 수영장 세계의 룰을 알게 되었다.


수영장은 꽤 넓었다 레일이 네 다섯 개 정도 되었으니까. 물이 차가울 줄 알았는데 적당히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또 은근히 깊었다. 내 키가 큰 편인데도 가슴께까지 찼다. 본격적인 강습이 시작되기 전에 물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 멀리 머리카락이 다 나오게 수영모를 쓴 남자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체조를 했다. 체조가 끝나니 선생님이 처음 온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물이 배꼽까지 오는 조그만 수영장으로 격리되어 따로 강습을 받게 되었다.


숨 쉬는 법부터 배웠다. 땅 위에서는 숨 쉬는 게 당연한데, 갑자기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니 웃기다고 생각했다. 물속에서는 '파' 하고 코로 내뱉기, 물 밖에 나와서는 '음' 하고 들이 마시기. 일명 '음파음파 숨쉬기'였다. 써놓고 보니 간단하지만 자꾸 물속에서 숨을 안쉬려고 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선생님은 음파음파를 알려주고는 10분 정도 하는 것을 보더니 이제는 물속에 머리를 끝까지 집어넣은 뒤 몸에 힘을 빼고 다리를 쭉 펴라고 했다. 선생님 말대로 하니까 몸이 둥둥 떴다. 이제야 모 아이돌의 노래 가사가 이해가 됐다. '수평선 위를 나는거야, 음파 음파' 몸이 뭔가를 지탱하지 않고서도 그자리에 존재하는 느낌은 자유로웠다. 물론 누군가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건 잘 알지 못한다.

 

수업은 월, 수, 금 1시간씩 진행되는데 수업을 안 가는 화, 목, 토는 수업 시간만큼 자유수영을 할 수 있다. 나는 첫 수업에서 배운 게 음파음파랑 물에 뜨는 것 밖에 없었지만 의욕에 불타올라 다음날 자유수영을 갔다. 수영장 입장 과정은 첫날과 같았다.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조금은 자신  있게 바디워시로 몸에 거품을 낸 뒤 수영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한 올도 빠짐없이 수영모 속으로 집어 넣고 수경을 이마에 얹은 뒤 수영장으로 걸어들어 갔다.

 

호기롭게 들어갔던 나는 몸풀기 체조가 끝난 뒤 당황했다. 어제 처음 온 사람은 나뿐이었고 다들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각자의 영법을 뽐내며 레일을 도는 것이었다. 거기 중간에 껴서 나는 두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채 물 위에 둥둥 뜨기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뒤에 사람이 얼만큼 멀리 있나 살피며 나는 둥둥 뜨기를 하다가도 화들짝 놀라 저 멀리 걸어가서 둥둥 뜨기를 하고 재빨리 걸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음날 두 번 째로 간 수업에서 이제는 음파음파, 물에 뜨기, 발차기 셋을 종합해서 해야 했다. 몸을 물에 띄우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발차기가 안됐다. 선생님은 엉덩이를 물 위에 띄우고 발목이나 무릎을 움직이지 말고 허벅지의 힘을 이용해서 우아하게 차 내라고 했다. 내 엉덩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자꾸 가라앉는 엉덩이를 내미려고 하니 허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아프고 다리는 가라앉았다. 선생님은 나와 같은 상태인 내 옆의 아주머니를 겨냥하여 "분명 내가 낳았는데 자식들이 내 말을 드럽게 안듣죠? 내 몸도 똑같아요. 내 몸만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없어요"라며 삼삼한 위로를 주었다. 나는 선생님 눈치를 살펴 발차기를 하는 척 하게 되는 나의 자아와 열심히 하려는 나의 자아 둘의 싸움을 말리는 데 아주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자유수영과 강습에 열심히 임해서 네모난 부표 위에 손을 올리고 드디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강습 세 번과 자유수영 세 번만에 다시는 수영장에 갈 수 없었다. 코로나가 일파만파로 퍼진 후 복지시설은 정부의 공고에 따라 폐쇄되었다. 임시라던 게 벌써 4개월째다. 전염병이란 이런 거구나. 자유를 빼앗긴다는 건 이렇게 가혹한 거구나. 물 속에 머리를 넣고 들어가면 괴롭고 보잘 것 없는 생각들에서 벗어나 온전히 물과 내 몸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수영장에서 나와 샤워를 싹하고 다시 지상의 옷을 입었을 때 기꺼이 뭐라도 하겠다는 의욕이 생겼는데… 나는 고작 수영에 5일 갔는데도 이렇게 상실감과 그리움이 컸다.

 

주로 갈 곳이 있어서 괴로웠던 나는 "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는 아주 늙은 교수님의 말을 이제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의 유일한 낙이었을 지도 모르는 그 많고 많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 아저씨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강습이 끝나면 레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고기들처럼 헤엄쳐 돌아가던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다시 우리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물고기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동그랗게 다 같이 손을 잡고 화이팅 외쳤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강습 뒤에 우리 모두 동그랗게 다 같이 손을 잡고 화이팅을 외치게 했으니까.

 

***

 

우리 바이러스에 지지 않기를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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