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뒹굴거려도 괜찮아 -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락쿠마와 가오루씨' [영화]

나를 위로해주는 어딘가에 사는 곰 이야기
글 입력 2020.05.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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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곰 리락쿠마



따듯한 털을 가진, 어쩐지 이상하게도 지퍼나 단추를 달고 있는 곰인 ‘리락쿠마’라는 캐릭터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던 곰 캐릭터의 자리에는 굳건히 꿀 따는 곰 ‘푸’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이 곰 캐릭터가 그와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리락쿠마는 당시 어린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사랑을 받으며, 곳곳에서 그 인기를 입증했다. 리락쿠마가 그려진 필통이나 가방을 가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방송 프로그램 속 주인공의 방에 리락쿠마 인형이 놓여져있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될 정도로 이 단순하게 생긴 늘어진 곰은 당시 전성기의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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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락쿠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하루 하루 살아내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relax와 곰을 의미하는 일본어 쿠마가 합쳐진 그의 이름처럼, 하루 종일 노란색 베개를 배고 뒹굴거리는 리락쿠마가 어쩐지 묘한 위안이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늘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리락쿠마는 단 몇 시간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뭐 어때, 조금 뒹굴거리고 쉬어가도 괜찮아’라고.


 


‘리락쿠마와 가오루씨’가 전하는 따스한 이야기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OTT 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는 ‘리락쿠마와 가오루씨’라는 제목으로 캐릭터로만 존재하고 있던 리락쿠마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 리락쿠마는 실제로 움직이며, 표정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평범한 회사원 가오루씨의 집에 얹혀 사는 곰 리락쿠마와 코리락쿠마, 그리고 가오루씨의 애완 새 키이로이또리는 가오루씨의 집에서 먹고 자며 늘상 말썽을 피우기 일쑤이다. 가오루씨가 소풍을 간 동안 집에서 팬 케이크를 태우거나 하염없이 자느라 집안에 버섯들이 피어나게 하기도 하고, 휴지를 이리저리 뽑아 놓고 어지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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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곰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고되고 지친 회사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가오루씨를 늘 마중 나오며 가만히 옆에 있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벚꽃 소풍에 친구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은 날, 가오루씨는 자신만 혼자 고여 있는 것 같다는 마음에 우울한 채 집에 도착했고, 곰들은 그런 가오루씨를 일으켜 집 앞 강변으로 소풍을 나간다.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옆에서 그저 경단을 먹으며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이 곰들은 가오루씨를 위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가오루씨가 작은 것 하나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꿈속에서도, 진로를 고민할 때도, 옷을 고르면서도 마음 정하기 어려워하며 낙심하자 리락쿠마는 타코야끼와 에다마메를 동시에 먹으며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준다. 마음 가는데로 하면 된다. 때로는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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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루씨가 좋아하는 택배 기사를 더 자주 보기 위해 택배를 너무 많이 시켜 생계가 어려워진 와중에 겨울 보너스까지 삭감되자, 곰과 병아리 3인방은 그런 가오루씨를 돕기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평소 집안일을 도맡았던 키이로이또리는 청소 업체에 취직해 좋은 성과를 냈고, 코리락쿠마는 고양이 카페의 재주부리는 곰이 되어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천성이 게으르고 원체 잘 안움직여 굼떴던 리락쿠마는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급여 없이 기운이 빠져 퇴근한다. 멋있게 급여 봉투를 내놓는 둘과 달리 냄비를 가져와 그 안에 구겨져 앉고는 ‘곰탕’이라며 가오루씨를 웃게 하는 리락쿠마는 이렇듯 특별한 방식으로 가오루씨를 위로하고 마음을 전한다. 찡하지는 않더라도 ‘뭐야 그게’ 하고 웃어버릴 수 있게끔.


리락쿠마가 가오루씨에게 전하는 소소하지만 몽글거리는 진심을 들으며 나 또한 위로 받는 것 같는 느낌이 들었다. 보송하고 따듯한 털만큼이나 리락쿠마가 가진 힘은 부드럽지만 강하다. 늘 게으르게 뒹굴거리기만 하는 것 같은 곰에게서 인생을 좀 더 여유롭게 보내는 방법을 배운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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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란 촬영 대상의 움직임을 연속으로 촬영하는 것과 달리 움직임을 한 프레임씩 변화를 주면서 촬영한 후 이들을 연속적으로 영사하여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기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미리 만들어 놓은 세트장에서 리락쿠마, 코리락쿠마, 키이로이또리, 가오루의 캐릭터들을 조금씩 옮겨가며 하나 하나 촬영한다.


애니메이션이 4계절을 모두 다루기 때문에 세트장도 그에 맞추어 계절을 표현해 낸다. 더불어 비쳐드는 빛의 모습이라던가 눈이 내리는 모습은 이러한 계절감을 더욱 생생하게 스크린을 넘어 보여준다. 리락쿠마와 코리락쿠마, 키이로이또리의 털 표현도 매우 정교해 실제로 곰이 움직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평면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스톱 모션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리락쿠마와 가오루씨’는 더욱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리락쿠마라는 캐릭터의 서사를 느낄 수 있다. 이전에 평면으로만 존재하던 캐릭터가 스톱 모션 방식의 실사 애니메이션을 통해 3D형태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이전에 가졌던 캐릭터가 정말 어딘가에 살아 있고, 어느날엔가 나를 찾아와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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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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