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안하고 불리한 비정규직, 모두가 모르는 척 했던 이야기 [사람]

이것은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이다.
글 입력 2020.05.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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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우연히 도서 '임계장 이야기'를 쓰신 작가분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작가분이 안정적인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서 퇴직한 후 60세가 넘은 나이에 여러 군데를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면서직접 겪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었다. 퇴직 후 4년 동안 일하면서 4번 해고를 당하고, 고용해 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참아내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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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씨리얼 채널

 


부끄럽게도 이 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내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경비원, 청소원 분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음 날, 근무지에서 몇 번 마주치는 청소원분께 항상 감사하다고 음료수 한 병을 전해드렸다. 놀라셨는지 음료수를 한 번에 받지 못하시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작은 호의조차 낯설게 하는 노동환경은 대체 어떤 상황 속에 있는 걸까?

 

이 영상을 보고 나는 이 일들이 내 주변 사람들 또는 은퇴 후의 먼 이야기가 아닌 당장의 내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면서 적은 임금을 받는 일, 인간적이지 못한 지시에 거부하지 못하는 일. 계속 약자들에게만 더 혹독해지는 세상. 얼마 전 있었던 한 경비원의 자살 소식에 작가분은 해당 영상 아래에 장문의 댓글을 남기셨다.

 


"오늘 일을 마치고 퇴근하자마자 KBS 9시 뉴스를 통해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중략) 문과대학 졸업자의 10%만이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내 새끼는 비정규직 안 시키려고... 그래서 내 자녀가 정규직 취업할 때까지, 공무원 시험 합격할 때까지.. 기약 없는 세월을 매연, 배기가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오늘도 일하는 노인 노동자들입니다."노동의 결과물들의 가치"는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동 자체의 가치"는 같은 것입니다."


 

작가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청년들에게 외면하지 말 것을 호소하셨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이 없는 나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헐값에 팔리고 있다는 것은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을 치는 현실이 여실히 보이는데도 "나 대신 일할 사람은 많기" 때문에 모든 부당한 대우와 참혹한 싸움들은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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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카트>는 한 대형마트의 갑작스러운 부당 해고에 맞서 600여 명의 사람들이 500일 넘게 투쟁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전태일 열사의 기일인 11월 13일에 맞춰서 영화가 개봉되었고, 수능이 막 끝나고 처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


앞으로의 꿈에 부푼 상태로 당시에는 "아 좋은 영화 한 편 봤구나"하는 생각이었다. 지금에 와서 영화를 다시 보니, 눈물이 펑펑 났다. 열심히 일만 해온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결과가 이건가? 나는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무슨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당시 500일이 넘는 투쟁 끝에 노조 지도부 12명의 퇴사를 조건으로 나머지 직원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사건의 결과까지 정말 영화 같은 실화라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생계를 위해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오랜 시간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투쟁을 계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일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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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수납원들의 투쟁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은 오랜 시간 동안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두고 싸워왔다. 2017년,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 났으나 이는 도로공사 소속이 아닌 도로공사의 자회사 소속 고용 형태였다. 6천500여 명의 수납원 중 1천400여 명은 도로공사에게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반발했고, 도로공사는 계약 종료 시점에 이들을 모두 해고했다.

 

해고된 수납원들은 217일 동안 또다시 외로운 싸움을 했다. 싸움 끝에 이들은 지난 14일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으나 '현장 지원직'이라는 새로운 직책 하에 요금 수납원이 아닌 청소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결국 이 또한 온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안정적인 내일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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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

 


영화 <카트>에서 마트의 한 손님이 이렇게 말한다. "회사랑 해결할 일로 고객이 왜 피해를 봐야 해요?"

 

지하철의 잦은 파업에 속 사정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불평만 하던 과거가 떠올랐다. 우리는 진짜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부당한 현실에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노동은 나라의 기반이다. 노동자의 처우는 곧 국가의 얼굴이다.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열정을 낳고, 이 열정은 다시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고? 이런 고용주들에게 화살이 돌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상호 간의 이익을 위해 정당한 약속을 한 거래자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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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 듣고 또 크게 말해야 한다. 노동의 귀천이 없어지고 "노동" 그 자체로써 평행선에 설 수 있도록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금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마주해야 한다. 영화 <기생충>에 나타난 것처럼, 한 사람의 불행은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다. 잊지 말자, 나 혼자 잘 사는 사회는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추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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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오류
    • 성북구가 아니라 강북구예요.
      어느지역이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실과 달라서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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