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타인의 사랑 이야기, 몸의 언어 [도서]

만남, 설렘, 사귐, 갈등, 이별, 그리고 새 만남
글 입력 2020.05.0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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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었던 2018년 여름, 가장 내 눈에 띄었던 글이 바로 나른님의 <몸의 언어>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과감하지만, 그렇다고 선정적이지는 않은 그림체로 남녀간의 사랑의 몸짓을 표현한 그림이었다. 글은 길지 않았지만, 글이 올라오면 늘 ‘많이 본 글’ 순위에 올랐고, 그림체가 예뻤을 뿐더러, 상업적이지 않은 타인의 사랑을 엿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종종 찾아보는 에디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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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사이트에서만 보던 그 분의 글과 그림이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신청했다. 내가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인데도 이상하게 이 책은 너무 소장하고 싶었다.


오래 곁에 두고, 어떤 물건이 나의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글 쓰는 게 취미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면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에게 글이란 어떤 생산적이고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행위라기보다는, 그저 감정의 정리이며 이미 끝난 일에 대한 의미 부여에 가깝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갖고 싶은 욕구는 크게 없다. 마치 유행하던 롱패딩을 유행이 다 끝나고나서 구매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면 좀 비슷하게 와닿을까.


그리고 어쩌면 책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도, 영화도, 사진도(고양이와 가족의 사진을 제외하면) 어느 것도 저장해두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을 기록하고,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내 상황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곧바로 지워버린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한 번 보고, 한 번 읽고, 나에게 남길 것만 남긴 채, 기억의 뒷편으로 날려버리는 소모품에 가깝다.


나른 작가가 <몸의 언어>라는 이 책을 쓴 이유는 직접 겪었던 사랑을 되짚고, 그동안 내면에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나의 정리에 대해서는 별 미련이 없으면서, 타인의 정리에 대해서는 내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이 책을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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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한 목소리, 다정한 말투, 대화 중 나오는 특유의 제스쳐, 큰 키, 적당히 마른 체형, 가늘고 긴 손.


네가 좋아서 그것들이 마냥 좋았던 건지, 그것들이 좋아서 네가 좋아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네가 좋았고, 또 너의 일부들이 좋았다.


필연적인 결핍과 불안을 인정할 때 비로소 모두 발가벗은 상태,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나약한 상태, 아니, 어쩌면 모든 긴장이 풀어진 가장 원래의 내가 되어 나지막히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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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의 사랑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아주 힘들다. 사람마다 수백가지의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스스로도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인 점도 크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이미지, 연애의 이미지에 각인되어, 사랑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따라하는 정도. 그게 대부분의 기만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연애를 하지 않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드라마로 연애를 많이 접할수록 다시 연애하기 힘들어지는데, 눈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미지의 연애를 원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집 앞까지 늦은 시간에 데려다주는 것. 기념일마다 엄청난 선물을 해주는 것. 바쁜 일 다 내팽겨치고 내가 슬픈 일이 생기면 달려와주는 것. 자신의 일보다 당연히 상대방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것. 헤어지면 죽을듯이 매달리는 것. 그런 환상들 말이다.


실제로 연애를 해보니 미칠듯이 매달리는 남성이란 참 의존적이고, 어떻게보면 언제 돌변할 지 몰라 불안한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이가 꽤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어떤 분은 나에게 ‘헤어지면 자기 생활 잃어버리는 사람’과는 절대로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


사랑은 그토록 정의내리기 힘든 분야이기에 우리는 그렇게도 사랑에 관해 찾아보는걸까. 특히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사랑을 중요하게 다루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사랑은 정말 빠질 수 없는걸까.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는 더 궁금한 점을 갖지 않고, 타인의 사랑에서 사랑의 정의를 찾으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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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메시지


 

결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는 실제로 일러스트가 남녀간의 결합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혀를 섞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남녀간의 섹스나 애무를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상업적이거나 외설적이지 않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도 사랑을 나눌 테니. 작가 나른은 다음과 같이 소신있게 일러스트의 의도를 전한다.

 


"이 책에는 제법 농도 높은 연인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굳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싶은 장면도 있을 테지만, 저는 깊고 진한 스킨십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애매하든 몸을 마주치는 이들 사이에 흐르는 어떤 언어가 있다고요.


눈만 마주치고 있어도 사랑에 사무칠 수 있고, 키스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사람만이 나누는 복잡한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모든 이가 겪는 평범한 사랑의 모습이라고도 여겼기에 그 사랑을 때로는 아주 직설적인 일러스트로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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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사랑해, 행복해, 보고싶어 따위의 말들을 좀처럼 주고받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언제나 근사하고 낭만적인 태도로 연인을 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애는 결국 연인과 삶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우리는 연인의 삶을 통째로 건네받는다. 그렇게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면서부터 갈등이 생긴다. 양보할 수 없는 무엇이 생기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모습들도 보일 것이다."


 

이 갈등 부분에서 정말 많은 공감을 했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연인 사이에서 삶을 맞추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갈등. 피하려고 하면 관계가 망가지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면 또 망가지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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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게 포장되어 있던 나는 싸움 속에서 비로소 내가 된다. 갈등은 가장 내밀한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관계를 향한 신뢰의 정점을 찍는 행위는, 상대 앞에서 기뻐하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화를 내는 것일 수도 있다.


갈등을 겪으면서 마음을 다치기도 하지만,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던 그 어린 시절을 벗어나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해온 사고 방식말고 정말 수많은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쩌면 내 사고방식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식도 있을 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온전한 나의 세상에서 벗어나 갈등은 타인과 엮인 삶으로 데려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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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비록 타인의 사랑이야기지만 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사랑이 내가 가져온 것들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정말 간직하고 가끔 사랑을 보고 싶을 때 열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책을 내신 나른님께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싶고, 이런 책을 옆에 두고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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