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가의 시선 속 사랑의 이해: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도서]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글 입력 2020.04.2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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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사진을 마주했을 때, 나는 절망과 허무의 외면에 대해 떠올렸다. 외딴 방에 누워 있는 여자는 자신보다 커져있는 그림자를 마주한다. 그녀의 몸에서는 희망과 함께 기력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한 톨의 의지조차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 의지는 높이 솟아있는 다리에서부터 가슴 그리고 얼굴까지 흘러 힘없이 돌린 고개의 두 구멍에서 한 방울로 쥐어짜지고 있지 않을까. 마주칠 수 없는 얼굴은 어쩐지 울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 이 사진의 진짜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여자가 아닌 의자였다. 그 유명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주축이 되어 디자인한 의자, LC4 셰이즈 롱의 안락함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던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진짜 휴식을 위한 장치”라고 언급하였고 정형외과 의사들이 추천할 만큼 편안함을 보장한다는 의자로써 내가 느낀 힘 없는 모습은 완벽을 통한 행복의 자세였던 것이다. 여자의 정체도 모델이 아닌 함께 디자인한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이었다.

 

안락함에서 무질서한 에너지의 발현을 느끼고 반대로 절망에서 계산되고 설계된 규칙을 본다. 세상살이가 이리도 복잡하다. 원을 보고 누군가는 사과, 누군가는 복숭아라고 대답하고 사과를 보고 누군가는 원, 누군가는 사각형을 대답한다. 눈에 보여지고 실존하는 형체들에 관해서도 이러한데 그것이 무형의 가치에 관한 일이라면 공통된 대답을 찾기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은 이러한 무형의 가치인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한다. 다만, 총 스무 개의 명작과 그 작가들을 통해 말이다. 자기를 위한 사랑, 상대를 위한 사랑, 숭배하는 사랑, 즐기는 사랑, 그리고 사랑의 기술 등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부면을 다룬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챕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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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나도 한 때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로 니체의 영겁 회귀에 관한 이야기를 주축으로 전개된다. 영겁 회귀란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세운 사상으로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사상이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회귀와 이어지고 이어질 뿐인 흐름 안에서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끝이 없는 삶, 그 속에서 행한 모든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지우는 짐으로 다시 돌아올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삶이 다시 회귀하는 원형이 아닌 직선이라면, 단 한번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모든 것은 가벼워진다. 한번 일어난 것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Einmal ist keinmal)는 소설 속 인용문처럼 모든 것은 너무나 가벼워 터지기 직전의 비누방울처럼 흐릿하게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 걸친다.

 

소설 속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모습은 모든 사랑의 군상을 담은 듯 제각기 다르다. 사랑은 두렵지만 관계는 원한다. 혹은 관계와 사랑 모두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다. 가벼움에서 가벼움으로, 또 무거움에서 무거움으로 존재의 의미를 정의해간다. 그러나 넷의 결말은 누구 하나 특별하지 않다. 모두 그냥 그렇게, 끝이 난다.

 

밀란 쿤데라가 단 하나의 진리에 관해 이야기 하려 들었다면 넷 중 하나는 나머지와 다른 영광과 사랑이 가득한 길을 걸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벼움과 무거움은 본질적으로 같다 여기며 진정한 위협은 바로 전체주의라고 말한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결국 사랑의 다양성과 그것을 인정하게 해주는 가벼움에 대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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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와 로버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포르투갈 소네트>는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남편 로버트 브라우닝의 운명적인 만남 덕분에 탄생한 시집이다. 둘은 엘리자베스의 작품에 마음을 빼앗긴 로버트의 편지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 이후 무려 573통의 연서를 주고 받으며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무려 사랑의 도피를 하며 말이다.

 

둘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가장 이상적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작품을 아끼고, 서로에게 서로만이 존재했다. <포르투갈 소네트>는 로버트를 생각하며 쓴 44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들의 내용 또한 낭만과 운명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그 속의 성숙함도 보여진다. 사랑에 대한 감사함과 영원의 약속, 그럼에도 상대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 등 엘리자베스의 사랑이 솔직한 언어로 적혀 있다.

 

이는 실로 개인적인 체험이다. 사람들은 한 개인의 개인적인 진리보다는 만물에 적용이 가능한 보편 타당한 법칙에 관심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때로는 누구보다 개인적인 것이 무엇보다 진실되게 마음을 움직인다. <포르투갈 소네트>는 그런 시일 것이다. 솔직하면 할수록 개인의 진리와 만물의 법칙은 점점 가까워져 마침내 맞닿게 된다.

 

늘 결혼의 달성에서 끝나며 ‘happily ever after’라고 급한 마무리를 하는 동화의 뒷이야기가 한번쯤 궁금했듯이 둘의 결혼 이후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아쉽지만(?) 반전 따위 없었다.

 

약 15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건강 문제가 끊임없이 엘리자베스를 괴롭혔지만 그 무엇도 둘을 떨어트리지 못했다. 1861년 엘리자베스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로버트의 품에서 잠든 후에도 로버트는 재혼을 하지 않고 28년을 더 살다 떠나갔다. 영화 같은 둘의 결말은 진정 사랑의 형태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여러 작품들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포르투갈 소네트>에서 가장 유명한 ‘소네트 43번’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내가 그대를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그 방법들을 헤아려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와 완벽한 은혜의 끝을 어루더듬을 때,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와 넓이와 높이까지

그대를 사랑합니다.

햇빛 속에서나 촛불 속에서나,

나 그대를 일상의 가장 조용한 욕구 수준에서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권리를 얻으려고 애쓰듯이, 나는 그대를 자유로이 사랑합니다.

그들이 칭찬 따위는 외면하듯이, 나는 그대를 순수하게 사랑합니다.

나의 오랜 슬픔을 이기는데 쓸모 있던 정열, 

그리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나는 그대를 내가 성자들의 믿음을 잃어버리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내 삶 전체의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만일 하느님이 선택하신다면,

나는 죽은 후에도 그대를 더 많이 사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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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세상의 모든 사랑은 운명적이다 -


지은이 : 김환영

출판사 : 싱긋

분야
인문

규격
133*203mm 양장

쪽 수 : 296쪽

발행일
2020년 02월 14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90277-25-9 (03800)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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