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토록 가까이서 먼 당신들 - 영화 '썸원 썸웨어'

5m의 거리는,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니다.
글 입력 2020.04.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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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jpg

 

 

Someone, Somewhere.

누군가, 어딘가에.

 

'내 찾는 누군가는 그 어딘가에...'

 

제목을 이렇듯 다시 적어보니, 그 뒤로 어떤 말이 나와야 하는지를 응당 골몰해보게 된다. 생략된 서술어를 입맛대로 껴맞추어 보는 일이다.

 

그 어딘가에 계실까.

그 어딘가에 계시겠지.

그 어딘가에 계시려나.

그 어딘가에 계신다.

 

앉은 자리에선 알 수 없는 질문, 그러나 그 자리의 앉은 나를 계속해 감도는 어떤 질문들이 있었다. 내 지금 찾는 어떤 사랑의 낯, 그 희미하고 사실 볼 수조차 없는 형상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 계실까, 계시겠지, 그러나 다시 또, 계시려나. 미약한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이런 순환하는 생각들, 내 지난번 글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참 공교로운 일이지.

 

빛으로 이 안을 어물거리는, 당신은 어디에. 아니, 애초에 당신은 누구실까. 이 질문들의 순환 속을 살다. 미약하고 소심하게 서는 기대와 회의적인 생각의 반복 어드메, 아직 보지 못한 당신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의지가 바야흐로 `계신다`라는 의지적이고 단언적인 어조, 마침표로, 즉 선언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선, 너무도 많은 것들이 필요로 했다.

 

이러한 생각이 이 영화로 날 이끈다. 내가 먼저 이런 생각들, 그 사랑에 대한 기대와 회의의 반복 속을 오래 살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어떻게 그 모습을 그리어내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아직 내 삶은 충분히 뻗어 나가진 못했기에, 아직 내 가지의 마디 끝으로 당신이, 혹은 먼 당신으로까지의 모든 계기와 우연들이 닿지 못했음에 불과하다면, 나는 다른 이의 모습들, 즉 다른 삶들이 궁금해지는 일이 이렇듯 생기는 것이다. 그게 위안과 안정을 필요로 하는 그 모든 인간의 하나인, 내 모습이다.

 

 

티저 포스터.jpg

 

 

포스터와 보도자료를 본다. "우리는 지금 썸세권에 살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본 영화의 '프로모션' 캐치프레이즈. 운명적이고도 낭만적인 사랑을 연상시키는 문장이다. 그러나 결말 부에 할 말부터 이야기하자면, 완전히 잘못 짚었다. 결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이제와 다시보니, 저 포스터의 그림과 그 위의 글귀는 전혀 어우러지고 있지 않다. 썸세권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기엔, 주인공의 미간이 너무 짙다.

 

 


 

 

**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

 

 

두 남녀, 여 주인공 멜라니와 남 주인공 레미의 이야기를 다룬다. 파리를 살아가는 개인과 그들의 일상을 조명해, 그 각자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영화는 진행해나간다. 잔잔한 일상물. 무언가 엄청난 사건들,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 혹은 인과로서의 큰 사건들은 그러므로 없었다.

 

나는 은연중에 어떤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 저 둘은 만나게 될까, 궁금해하며 보고 있었다. 캐치프레이즈와 포스터는 나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갖게 한다. 충분한 함의와 유도가 있었다고 상기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제 접하게 된 이 영화는 담백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해보자면 조금 음울하기까지 하다. `마법`과 탈일상, 낭만의 일이 아닌 정말이지 우리 모습들이었다.

 

무언가 엄청난 사건들,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 혹은 인과로서의 큰 사건들은 없었다.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옳을까? 저 서사가 향하고 나아가고자는 바가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할 만큼, 생동감이 넘치고 진취적이며 낭만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달리 말해 조금은 우연에 기대어 진행되고 진행될 수 있는 그런 대단한 이야기가 없었다. `정말 아름답고 눈부신, 그러나 우리의 실생에서는 좀체 꿈꾸어보기 힘든` 그런 낭만적이고 마법 같은 우연들, 그런 게 일절 없었다. `우연하게 집 앞에서 마주친 눈빛과 서로 스친 손이 불러일으키는 짜릿함` 따위 없었단 말이다. 정말로 로맨스물일까...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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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은 각각 불면증에 시달린다. 뭐 본인들껜 심각한 일이지만, 우리에겐 이제 나름 익숙해진 소재, 스트레스와 도시와 불면증. 그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두 주인공은 이때 약국에서 만나, 각각 동시에 같은 증세를 호소하고 같은 `수면제`를 처방받는다. 그러나 그게 끝.

 

마치 이 멀고도 비슷한 두 인물이 영화가 전개해 나가는 내내 자주 부딪힐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봄 직한 장면이지만, 앞으로 그럴 일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둘의 `연애성공기`가 아니다. 영화는 둘의 아파트, 5m 거리의 저 `썸세권`에 역점을 두고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수면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두 사람이 가까이 산다는 것, 저 배치가 연애에 있어 어떠한 장치나 계기가 되는 일도 일절 없다. 외려 저 배치는 가깝고도 먼 데서 각각이 신음하는, 그러나 서로 알 수가 없어 안아줄 수도 없었던 우리 모두의 삶, 현대와 도시와 개인과, 고독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다. 썸세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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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주요 무대는 각 인물의 직장, 집, 그리고 `식료품 가게`이다. 한정된 공간들이다. 특히 식료품 가게는 참 자주 등장하는데, 이 공간은 두 사람이 각각 또는 함께 등장하는 하나의 무대이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최종적인 만남을 위한 미약한 계기들과 인과가 획득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연애성공기가 못 된다.

 

수면제에서 시작해, 불면증을 앓고 있는 `지금`의 일상을 조명하고 그 인과인 `과거`의 기억들을 반추하며, `치유와 극복`의 시퀀스로 극은 전개된다. 즉, 각각의 심리 상담기인 것이다. 서사를 진행시키는 데에 있어 각각의 심리 상담이 매우 주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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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적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개별 사정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저 한정되고도 가까운 장소들로 말미암아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저 위의 사진처럼, 묶일 수 있었고, 식료품점의 칸막이로 나뉘어 서로 모른 채로도 자연스레 묶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둘에게는 저 가까운 장소 말고는 아무 접점도 없었던 것. 그저 가까우니까, 이따금 우연히 한 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었을 따름이다. 이런 우연성, 멀고도 가까움, 그건 참 우리들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나를 비추고 있는 앵글 위로 나를 떠올려 그려보고 있자면, 내 일상에도 저런 구도는 자주 연출되고 있었겠거니. 그리고 거기엔, 아무 일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게 여긴 바가 여기 있다. 영화적 상상력, 작품들이 가질 수 있는 어떤 탈 일상성에 대한 기대를 안고 객석에 나는 앉았지만, 영화는 꽤나 담백하게 호흡하며 우리의 일상에 가까운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공교로운 어느 날의 아침,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하나의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었더랬지만,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것이 시사하고 상기시키는 우리의 일상들이란.

 

각자의 방에서 고독으로 신음하는 그들의 모습들. 그때, SNS라는 매개가 등장한다. 인간과 광장에서 멀어진 우리들이, 다시금 인간의 냄새를 맡기 위해 택한 산물인 페이스북과 틴더. 그러나 그것이 이끈 곳에서는 다시 쓸쓸함만을 확인하게 되는 일이란, 어찌 그리도 익숙하여 정다운 일이던지. 이쯤 되면 주인공들에 흠뻑 이입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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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이라는 낱말이 함의하는 바인 어떤 도도함과 우아함, 당차고 활기찬 이미지는 그네들에게 없다. 이 쓸쓸하고도 나약한 두 인물은 오히려, 그 도시 파리에서 깊은 고독을 호흡하며, 제 방 안에서 제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5m 거리의 당신은 참 닿기 어려울 만치 먼 존재이잖던가, 우리에게도. 심지어 우리 서로가, 이렇게까지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는 누군가를, 당신도 누군가를. 서로를 듣고 난 후에는 아마, 너무도 반가워 마치 그리운 동지를 만난 것처럼, 본적 없는 당신께 깊은 공감과 위안을 발견하며 즐거워할 우리들은 각자의 방에 오래도록 똬리로 감돌고 있었다.

 

도시의 고독이라는 현재의 상황과 트라우마인 과거가 얽히어 그네들의 일상은 참 잿빛으로 물들여 있다. 심리 상담은 일상인 현재 안에서 어떤 뒤틀림을 포착하고, 그 먼 인과이자 시초인 과거의 기억으로 들어가며, 하나의 인과를 만든다. 내러티브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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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결국에, 극복한다. 레미는 아버지께, 멜라니는 어머니께 통화를 걸며 말이다. 그렇게 극복한 두 사람은 드디어, 식료품점 주인이 귀띔한 그 댄스 강좌로 발을 이끈다. 각각의 두 사람은, 여태 한 번도 서로를 인식한적 없는 채로, 그러나 또 공교로이 막 트라우마를 극복한 채로 이렇게 마주한다.


멜라니는 그의 어깨에, 레미는 그의 허리에 손을 대고, 이제는 어떤 주저함이나 두려움도 없이 진득이 눈을 맞추어본다. 이름을 물어본다. 춤이 시작되고, 영화는 곧바로 암전.

 

이게 어떻게 연애성공기 혹은 연애물의 스토리일 수가 있겠는가. 썸세권이라니… 둘은 아주 먼 곳을 돌아서, 드디어 이 댄스 강좌에서나 만날 수가 있었다. 5m의 거리는,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는 잔잔하게 울린다. 잔잔한 슬픔과 또 그만큼의 잔잔한 미소를 자아낸다. 아마 공감의 감각일 것이다. 가깝고도 먼 데서 각각이 신음하는, 그러나 서로 알 수가 없어 안아줄 수도 없었던 우리 모두의 삶, 현대와 도시와 개인과, 고독에 대한.

 

각자의 방에서 자신 말고 부둥켜안을 게 없었던 그들의 몸부림을 엿본다. 그 위로는 내가 떠오르고, 또한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의 그 부끄러운 민낯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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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딘가 계실 누군가를, 당신 또한 그런 누군가를. 이런 나와 너는, 서로를 듣고 난 후에 아마 너무도 반가워 마치 그리운 동지를 만난 것처럼, 일찍이 본적 없는 당신께 깊은 공감과 위안을 발견하며 즐거워할 우리들은, 각자의 방에 오래도록 똬리로 감돌고 있었다.

 

5m의 거리는,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니다. 5m 거리의 모든 당신들은 참 닿기 어려울 만치 먼 존재이잖던가, 우리 모두에게도. 심지어 우리 서로가, 이렇게까지 고독에 몸부림치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마 우리는, 한동안은 더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반복 속의 어느 날, 두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깨고, 즉 행동에 대한 심리적인 제약을 깨고서 나아가기로 했고, 나는 천사와 시를 찾게 된 일이 있었다.

 

모를 당신은 그 어딘가에 계실까, 계시겠지, 계시려나. 아직 내 안에서 순환하는 이 질문들은 "그 어딘가에 계신다."로 정처하기 어렵다. 한동안 그럴 것이다. 그런 참에 혹시 이 영화에서, 이에 대한 어떤 힌트나 영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처음의 생각은 이제 부질없다. 낚였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충분히 공감을 찾아 즐거웠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해서 기대한 바는 타인의 낭만과 환상이었지만, 갖게 된 바는 공감이 되었구나.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아 물론, 결말부가 조금 김새긴 했지만 말이다. 첫 데이트까진 보여줬으면 좋았을 걸… 이렇게나 결말을 열어두면, 두 사람이 사귀게 되었는지 어땠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썸세권과 로맨스라니…!!

 

낚였다.

그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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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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