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른 음악과 고른 숨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20.04.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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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클래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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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를 읽고자 했던 것은 나름의 아쉬움 때문이었다. 충분한 시간동안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었고, 3분짜리 가요보다 10분짜리 클래식을 오래 즐겼었다. 태권도 학원갈래, 피아노 학원갈래, 8살 인생 중 최대로 고민한 끝에 나는 정중앙에 그랜드 피아노가 떡하니 놓여있는 피아노 학원을 선택했다.


언젠가 나도 저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능숙히 건반을 누르며 또 멋진 페달연주까지 선보일 수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바이엘, 소곡집, 하농, 체르니.. 차근 차근 배웠었다. 마침내 피아노 선생님께서 내게 음악가들의 악보를 펼쳐 보이셨고, 드디어 그 악보 그대로 나의 눈과 손이 악보를 따라갈 때,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음악이 흐를 때, 마침 페달을 밟아야 할 곳에서 내 발이 페달에 닿았을 때, 그렇게 이 모든 피아노와의 일이 하나의 울림이 되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띵~했던 기억이 있다.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쇼팽 등의 이름이 근엄하게 적혀 있는 두꺼운 악보집을 자랑하듯 들고 다닐 수 있게 된 나는, 그 중에 모차르트와 쇼팽의 음악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하농과 체르니, 기본기를 기르는 딱딱한 수련기간 동안 모차르트의 자유분방함과 쇼팽의 화려함을 동경했었다. 내게만큼은 그랜드 피아노에서 가장 멋져보일 수 있었던 음악, 모차르트와 쇼팽의 음악이 그랬다.

 

하지만 또 반대로, 내가 나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던 음악 역시 모차르트와 쇼팽이었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칠 때는 손이 한없이 무거워졌고, 쇼팽의 에뛰드를 칠 때에는 또 손이 한없이 게을러지곤 했다.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하게 되었을 때는, 전공을 할까도 고민했었던 클래식 피아노에서 점차 현실의 벽이라는 걸 처음 느끼게 되었다. 정말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것도 많구나. 그렇게 마냥 즐길 수 만은 없게 된 피아노 앞에서 내게 닿았던 피아노의 진동들과, 클래식의 울림들은 언젠가부터 딱딱해졌다.

 

나의 클래식 이야기는 이렇게, 짧지도, 굵지도 못하였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한 피아노와는 공부를 빌미로 어느새 멀어지게 되었고, 피아노와 멀어지자 클래식도 남의 일이 되었다. 가끔 길거리를 걷다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을 듣게 되었을 때는, 어렴풋이 음계 정도만 상상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상상을 하였고, 그런 상상을 깨는 건 이젠 정말로 연주할 수 없게 된, 굳은 나의 손이었다. 연주가 불가한 나의 클래식은 그렇게 내 삶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듣게 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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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다시 찾게, 새로 듣게 된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대학생인 내게는 진정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졌다. 무언가 해내기 위해 숨을 가쁘게 쉬는 날이 늘었고, 대신 숨을 들이 마시는 일보단 깊게 내쉬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길게 내쉬면, 마음 한 켠엔 작은 빈 공간이 하나 둘 생겼다. 담아두는 하루 없이, 하루 하루가 그 뚫린 빈 공간으로 슝슝 날아가버리기 일쑤였고, 다시 날아가버린 날을 채우기 위해 또 바삐 숨을 쉬어야 하는,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새로 좋아하게 된 알앤비 음악도, 또 춤까지 춰 가며 흥을 돋구던 댄스음악도, 그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했을 때, 나는 정처없이 어딘가를 걷곤 했다. 어김없이 그런 하루였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길거리의 악사. 바이올린을 켜던 그는 다름아닌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나는 자연스레 멀찍이 서서 그의 음악을 들었다. 다음 곡이 연주될 때마다 한 둘 씩 갈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참을 그 자리를 지키며 그냥 들었다. 비록 감동의 눈물은 보이진 못했지만, 충분했다. 그리고 그 날은 더 걸을 필요도 없이 집으로 바로 향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클래식을 직접 찾아 들었다. 이 음악가가 이래서, 이 음악이 저래서, 그런 건 이젠 모르지만. 클래식이 내게 필요한 순간이 많았다. 이제서야 듣게 된 클래식이었다.

 

 

 

바흐의 평균율, 순우리말은 고른율


 

책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는 어쩌면 나와 같이, 때때로 일상적으로 클래식을 즐기겠노라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참 유용한 책인 것 같았다. 한 편 한편,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는데, 위대한 음악가들의 위대한 업적보다 좋은 음악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클래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서가 아닙니다. 인생의 한 구비를 돌아온 지금, 제 삶을 풍요롭게 해 준 음악가들과의 만남, 그 축복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정리한 글들입니다. 모차르트는 제게 특별하지요. 이 책에는 사춘기 시절 은밀히 사랑했던 모차르트가 제게 점점 큰 의미로 다가와서 인류 평화를 역설한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과정이 나옵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내게도 어떤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바로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던, 그래서 내겐 마냥 더 어려웠던 ‘바흐’와 그의 음악 ‘평균율’과의 만남이다.

 

바흐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음악의 아버지’라는 타이틀 하의 바흐와, 바흐의 음악은 내겐 고리타분한 류의 클래식이었다. 클래식의 클래식, 프렐류드, 푸가 기법, 성당 음악, 등등등. 특히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등의 음악가와 바흐를 동시에 접했던 21세기의 나는, 그래서 너무도 쉽게 바흐의 음악을 어떤 틀에 갇힌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바흐의 악보를 두고 피아노를 쳤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지만, 그 곡보다는 박자가 ‘딱,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던 선생님의 중요표시가 더 선명했다.

 

하지만 평균율로 만난 바흐는,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바와 조금은 달랐다. 딱 딱 맞아 떨어져야 하는, 그 규칙성과 형식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규칙, 형식이 가진 의미를 잘 살려내어 시대를 뛰어 넘는 신선함, 아름다움을 모두가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이었다.

 

‘조율이 잘 되었다’라는 뜻의 평균율은 도에서 다음 도까지, 한 옥타브 내 12개의 음계를 가지고 장,단조를 모두 활용하여 쓴 ‘연습곡’이다. 하지만 연습곡이라고 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고 정리가 잘 된 음들이 차곡 차곡 음을 듣기 좋게 쌓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딱 딱’함 안에서 최대의 미를 찾고자 했던 흔적이, 현재도 곡의 이곳 저곳에서 보였다. 실제로 이 평균율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기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그 이상을 달성했다고 한다.


 

 


*


그리고 사실, 어떠한 음악적인 평가나 해석을 떠나서 바흐의 평균율은 내겐 위안이 되었다. 한 템포도 놓치지 않는 딱딱함 속에서, 항상 동일한 음정으로 고르게 나열되는 음들이 마치 잘 정리되지 않은 나의 무엇들을 다시 잘 정비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균율의 삶. 화려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빈 곳 없이 또 흔들림 없이 12개의 음계들이 제 자리를 잘 찾은 덕분에 모든 것이 조화롭게 된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늘 말하는 ‘딱 평균, 중간 정도만 살고 싶어’라는 애매한 바람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덧붙여보는 말이지만, 평균율 즉 말 그대로 평균의 비율(average rate)은 순 우리말로 고른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끔 고른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 후훕 하고 급하게 들이쉰 숨을 몰아서 내뱉을 때, 바흐의 고른 음악, 평균율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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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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