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는 게 숨찰 때 [사람]

나는 정말 숨이 찰 때까지 달린다.
글 입력 2020.04.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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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일을 집에서만 해결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내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진 지는 한 달이 넘었다. 개강이 불투명해지면서 수업과 회의는 화상으로 해결한다. 기분 전환으로 자주 갔던 영화관도 2월 중순 <작은 아씨들>을 본 이후로 가지 않았다. 이제는 개봉하는 영화도 없다. 이번 학기에는 전시회를 자주 가겠다고 결심했는데, 이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 와중에 나는 작년을 이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지막 학기다. 졸업을 위한 요건을 채우기 위해 매일 작품을 쓰고 논문을 쓴다. 틈틈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 매주 생기는 과제도 하고 회의도 한다. 집에만 있으면서 할 일은 참 많다. 이렇게 집에서 가만히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우울함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많은 게 불투명해 보인다. 해야 할 목록을 하루, 주, 달 단위로 세워서 쫓기다 보니 벌써 4월 중순이다.


하루하루가 나만 빼고 가버리는 느낌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숨차다. 고장 난 기계 위에서 탈주하지 못하고 강제로 정상 궤도 안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남들보다 늦게 궤도에 올랐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착실하게 시간을 따라가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노력은 쉽게 성과를 주지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는 무기력함을 돌려줬다. 하나를 놓으면 그다음 것도 저절로 놓아버릴 상황에서, 자꾸 흔들렸다.


흔들릴 때면 성과 없는 노력에 울기도 하고 좋아하는 애의 불행을 빌기도 했다. 시답잖은 영상을 보며 시간을 죽이기도 했고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죽은 듯이 자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무엇이든 잡고 싶어서 비슷비슷한 계획을 또다시 세웠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그런 나에게 더워지는 날씨는 시간을 가감 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내 많은 계획은 틀어지고 있으면서도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혼자 아침이나 저녁쯤 사람이 없을 시간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뛴다.


12월까지 수영장에 다녔는데, 여행을 다녀오면서 한 달을 쉬었다가 다시 다니려니 코로나가 터지면서 쭉 운동을 안 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면서 숨차게 운동할 수 있는 달리기가 나에게 꼭 필요해 보였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힘들면 대충 뛰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혼자 뛰다 보니 동기부여도 안 되고 조금이라도 숨이 차면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일쑤였다. 그래서 런닝앱을 깔아서 기록을 재기 시작했다. 기록을 재기 시작하니 더 잘하고 싶어서 힘들어도 죽어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일은 더 빨리, 더 길게 뛰겠다는 생각을 가지니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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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코스와 시간을 바꾸면서 뛰는 재미도 있다.

 

 

만약 3KM를 뛰겠다고 결심하면, 4KM를 뛰게 된다.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는 후회한다. 2KM쯤 뛰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관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꾹 참고 목표한 곳에 다다르면 별로 힘들지 않은 것 같아서 갑자기 욕심을 내게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되뇌며 내가 정말로 숨이 차서 쓰러질 정도로 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건 올해 초에 엄마와 히말라야 ABC트레킹을 다녀왔을 때도 경험한 것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그리고 그날의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 힘들어도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 아마 이게 운동을 계속해서 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


집 주변에 있는 강을 따라 뛰고 나면 나는 따릉이를 타고 집까지 간다. 자전거를 타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면 땀이 식어간다. 그러면 벗어서 허리에 묶었던 바람막이를 다시 입는다. 으슬으슬하다고 느껴질 때쯤 집에 도착한다.


집에 가는 길은 내가 멍청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열이 올라서 얼굴은 뜨거운데 머릿속은 차갑다. 누군가 내 머리의 뚜껑을 열어서 찬물을 쏟아 부은 것처럼 멍하고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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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일주일에 네 번꼴로 시간을 내서 뛰었다. 생각보다 실력은 티가 날 정도로 빠르게 늘었다. 달리다 보면 다리가 아프다. 억지로 참고 달리면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마 안 쓰는 근육을 쓰니 다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은 처음보다 고통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안 쓰는 근육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오늘도 강을 따라 달리고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자주 무기력하고 우울함을 느낀다. 아직도 숨 차는 나날이고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버겁다. 하지만 적어도 뛰고 난 후엔 감정이 사라진다. 내가 직시해야 할 것만 보인다. 감정이 사라지면 많은 일이 간편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다시 결심한다. 과녁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흔들리는 건 오직 나 자신이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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