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그리고 페스트 패션(Pest Fashion). [패션]

글 입력 2020.03.2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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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이 지날 무렵에 보통의 또래가 그러하듯 나 또한 슬슬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됐고 나를 꾸미는 법이라던지 옷이라던지를 통틀어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자 하나의 취미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에서는 미래에 나의 업이 되려 하니 꽤나 신기하다.


막무가내로 사고 입기만 반복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책을 읽기도 하고 논문을 뒤적거리기도 하면서 보다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보다 다듬어진 지금의 나에게 내가 살아왔고, 지금을 살아가는 이 한국의 패션은 병이 들어 골골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패트스 패션(Fast Fashion)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냐며 물음표를 띄울 것이다. 살짝 바꿔 SPA 브랜드라는 형태로 건넨다면 ‘아,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며 보다 익숙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h&m, ZARA 등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면 다들 ‘아, 그거!’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전구를 허공에 띄우며 그 불을 밝힐 것이라 생각한다.


따지고 들자면 조금씩은 다른 이 모든 것은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 불과함에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토록 다르다. 그 시대의 유행에 따라 패션 아이템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빠르게 판매하며, 유행이 지나감과 함께 사라지는 인스턴트식품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패션이라는 그 뿌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잘 없는 것 같아 조금 슬퍼진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에 급급했던 한국도 이제는 패션이라는 무대에서 꿀리지 않는 위치에 올랐다. 세계의 여러 선두 주자들처럼 다양한 디자이너들을 국제무대로 내보내고 서울에서는 패션 위크가 열리며 각종 매체들이 취재를 하고자 찾아온다. 아직 소위 세계 4대 패션 위크라 불리는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의 패션 위크에 비교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많은 발전을 이루었음은 분명하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더욱 발전해야 함도 사실이다. 모든 발전에는 문제의 파악과 그 해결이 뒤따라야만 하기에 한국 패션계도 보다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밝혀내야만 한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보는 시선에 따라 그 문제라는 것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기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답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금의 내 시선에서 가장 거슬리는 바는 ‘양산형’ 또는 ‘클론’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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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useums Victoria on Unsplash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한국 패션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트렌드’다. 트렌드에 민감하기에 유행하는 스타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만큼 빠르게 퍼트리지만 한편으로는 그 트렌드라는 것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도 한다. 새 해가 찾아오고 학생들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3월이 다가올 때쯤이면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신학기 패션, 신학기 코디 등등의 검색어들이 차트를 장식한다.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크리에이터들은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각종 패션 브랜드들은 상품을 내놓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분명 생산자는 다름에도 결과물은 어딘가 비슷하다. 뚜렷한 차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 ‘트렌드’라는 색만 진득하게 묻혀놨을 뿐이다. 트렌드에 맞춰 ‘개성’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가야 맛있는 패션이 탄생하기 마련이기에 그 조미료가 빠진 패션들은 어딘가 싱겁다. 개성 대신 ‘복붙’이라는 이상한 향신료만 잔뜩 넣은 탓에 도대체 무슨 맛인지 가늠이 안 된다.

 



페스트 패션 (Pest Fashion)



유럽에서는 흑사병(Pest)의 유행으로 판데믹과 다름없는 사태가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나라가 붕괴 직전까지 간 역사가 있다. 균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빠르게 퍼졌고 그 탓에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 한국의 패션계는 이 흑사병이나 다름없는 현상을 앓고 있다. 스타일을 넘어선 제품 자체의 ‘복사/불여 넣기’라는 현상 말이다.


나는 주로 옷을 살 때 온라인 쇼핑몰을 애용한다. 직접 보거나 입어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리 아프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 몸이 피곤하지 않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다양한 상품들을 한눈에 살펴보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하나를 사더라도 최소 2시간 이상은 검색을 하기 때문에 직접 돌아다니면서 사는 경우에는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도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는 만큼 여러 쇼핑몰을 둘러보게 되고 자연스레 의문을 품었다. 왜 동일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름과 가격만 달리하여 이곳저곳에서 판매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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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디자인, 원단, 품질 등 어느 측면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완벽하게 동일한 제품임에도 어떤 쇼핑몰에서는 A라는 이름으로 25,000원에 팔리고 있고 어떤 쇼핑몰에서는 B라는 이름으로 35,000원에, 또 어딘가에서는 C라는 이름으로 45,000원에 팔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니 대략적이나마 감이 잡힌다.


여기서도 트렌드라는 녀석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한국 패션의 특성 때문이다. 각 시즌 별로 하이엔드 브랜드 또는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그중 인기를 끄는 제품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그 제품의 디자인을 카피하거나 조금만 수정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고 의류업자들은 이를 공장에서 구입하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유행을 좇기에 그 유행에 맞는 제품이 수익성과 직결되는 탓이다. 결국은 복사해서 불여 넣기만 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커머스(E-Commerce)가 발달한 나라답게 온라인 쇼핑몰 수도 어마어마하고 그중 의류 판매업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율을 자랑한다. 패션 산업 종사자들이 많고 그만큼의 소비자가 뒷받침된다는 뜻이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면 그 산업은 활성화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어찌 된 일인지 한국의 패션은 미친 듯이 활성화만 되는 것 같다.


다른 디자이너의 제품을 카피하며 생산되는 이미테이션, 레플리카 등등 이름만 다른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인식은 없고 생산자들은 잘 팔리니 만들기 바쁘고 소비자들은 그냥 값이 싸니 구매하기 바쁘다. 그렇게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에 패션 산업은 점차 타들어간다.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 비약적인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식량, 의류, 생필품 등 분야를 막론하고 폭발적인 대량 생산이 행해졌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됨으로써 재화가 풍족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그에 뒤따르는 노동자들의 처우나 소비자들의 소비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잉여 생산물 또한 미친 듯이 늘어나 결국 세계 경제는 대공황을 맞이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나 품질과 가치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성과 가격, 트렌드에만 집중하여 흘러가는 지금 한국의 패션계도 머지않아 그런 대공황을 겪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국은 커피와 카페라는 문화를 받아들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커피 소비량이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많으며 이제는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카페를 볼 수 있을 만큼 발전시켰다. 커피가 대중화되면서 대형 프랜차이즈의 체인점부터 개인 카페에 이르기까지 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개업했고 저렴한 가격과 대용량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임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소비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가격과 가성비만을 내세우던 업체들은 점차 문을 닫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핸드드립 전문, 로스터리, 블렌딩, 스페셜티 커피 등 보다 품질 높은 커피를 제공하는 업체가 등장하면서 손님들을 끌어모았다.


패션 산업도 아마 이와 비슷한 흐름을 따라가리라 본다. 아직은 트렌드와 가성비에 치중하고 있으나 고객들의 수준이 올라가고 점차 저작권과 품질에 신경 쓰지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면 지금처럼 공장에서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만 하는 업자들은 점차 고객을 잃고 입지가 좁아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공황을 맞게 된 이들이 많아지고 살아남는 이들이 줄어든다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패션계는 꽤나 큰 위험을 맞이 할지도 모른다.

 



뉴 딜(New Deal)



경제 학자 또는 정책 관련자가 아니며 패션 산업 구조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 또한 아니기에 확실한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저 패션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이자 훗날 패션 업계에 몸 담으려는 사람이며 누군가가 읽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렇듯 작게나마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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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ice Dietrich on Unsplash

 


나는 패션을 사랑한다. 꾸밈없는 모습이 좋다고들 하나 나는 자신을 꾸미려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꾸미기 위해 어딘가에서 옷을 사는 이들이, 또 옷을 만들어 파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변화하기를 바란다. 유명한 디자이너의 제품을 베껴 공장에서 찍어내 판매하여 돈을 버는 것에만 열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색을 담아 자신만의 옷을 만들고 그 옷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누군가의 색을 베낀 옷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색과 맞는 옷을 만들어주는 이를 찾고 그 사람의 옷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한국의 패션이 더 이상 병들지 않기를 바란다.


옛 말에 틀린 말이 없다고들 한다.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을 꼽자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로 하고 싶다. 다수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수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사회이기에 ‘다수’에 속하는 이들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고 그 구성원은 그 사회의 모습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소수인지 다수인지는 모르나 이러한 변화를 원하고 가져오려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패션계는 달라질 것이고 이에 몸 담고 있는 이들 또한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보다 다채롭고 아름답게, 활성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 발전이 뒤따르는 패션을 누리며 나를 그리고 나의 누군가를 보다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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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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