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덜란드 황금기에 등장한 예술 장르를 아시나요?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3.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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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송받는 예술 장르는 처음부터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을까?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장르도 분명 존재했다. 세상은 주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했던 비주류 중에도 인정받아야 마땅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장르의 가치가 빛을 보게 된 순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세상은 변화를 예고한다.

 

예술작품 중에서도 낮은 가치로 평가되던 장르가 있다. 바로 '정물화'이다. 시대를 담은 종교화, 역사화는 높은 수준의 그림이라 평가되었고 정물화는 주 장르로 자리 잡기 전까지 그림의 부속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한 비주류의 장르에 관심을 가진 한 화가가 있었다. 바로 훗날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 기록된 '카라바조'다. 그로부터 시작된 정물화의 변화무쌍함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흐름을 따라 독특한 하나의 장르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최초의 정물화


 

과일바구니.PNG

카라바조 <과일바구니>,1597

 

 

카라바조의 '과일바구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들어가는 과일의 모습을 그린 최초의 정물화로 평가된다. <과일바구니>는 그의 남아있는 작품 중 유일하게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면서, 썩고 오래된 부분까지 있는 그대로를 꾸밈없이 보여준다. 바구니는 탁자에서 살짝 앞으로 걸어 나온 듯 왠지 모를 긴장감을 주기도 하며, 길고 짧게 뻗은 이파리들은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카라바조는 르네상스까지 추구되었던 이상적인 미(美)를 쫓지 않고, 사실적인 면을 가감 없이 그렸다. 그리고 그 첫 선택에는 '정물화'가 채택되었다. 이는 카라바조가 자연주의 화풍의 대표적 화가로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그는 치밀한 사실 기법과 연극적 효과를 주는 명암대비로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 기록된다. 그가 처음으로 구현했던 정물화는, 대외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누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하나의 장르로 우뚝 서게 된다.


 

 

정물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우뚝 서다


 

네덜란드 조선소.PNG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동인도 회사


 

네덜란드의 황금기는 17세기였다. 식민지 개척을 통한 활발한 해상 무역으로 외교, 경제, 그리고 문화의 모든 면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네덜란드는 유럽 경제의 중심이 된다. 30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국교였던 가톨릭이 아닌, 칼뱅파의 개신교를 받아들인다. 이러한 당대의 배경은 네덜란드의 주류가 될 예술 장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네덜란드가 새롭게 받아들여 빠르게 퍼진 칼뱅파의 교리는 검소함을 제일로 내세웠다. 특히 우상숭배 등을 이유로 주류로 여겨지던 종교화의 제작을 전면 금지했고, 성서나 신화적 그림이 속한 역사화도 당연히 그릴 수 없게 됐다. 주문을 의뢰받아 작품을 제작해왔던 화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고민에 빠지고, 네덜란드 사회에 적절한 그림을 탐색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그 해답을 발견한다. 황금시대였던 만큼 부유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집에 걸어놓을 수 있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그림을 찾았고 그것은 또다시 종교적 속성과 맞물린다. 그러한 시행착오 끝에, 화가들은 결과적으로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리기로 결심한다.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작품의 의뢰 당시, 그림 속에 부(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길 바랐다. 그러나 금욕을 주장했던 신교의 교리와는 상반되었고 작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만, 그 끝에 비로소 네덜란드만의 독특한 정물화가 탄생하게 된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인생의 무념무상, 덧없음을 담아내는 것, 바로 '바니타스 장르화'의 시작이다.

 

 

블랙베리 파이.PNG

빌렘 클래즈 헤다 <블랙베리 파이가 있는 식탁>, 1631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바니타스(Vanitas)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매일의 삶과 그런 데서 오는 인간의 허무한 감정, 가치 없음을 뜻하는 라틴어로, 우리의 인생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부유한 삶을 산다 한들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부질없는, 세상적 이치의 필연성을 예술가들은 정물화 안으로 끌어들였다. 여러 가지의 복잡한 요소가 결합한 시대 상황 속에서, 그들은 검소한 삶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했다. 예술가들은 '교훈적 주제'를 전파하는 역할에 앞장섰고, 시대적 흐름을 대표하는 화풍으로써 주류가 아니었던 정물화를 택했다. 그 결과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상황을 자각하게 하면서, 예술의 평등함 또한 끌어냈다.

 

17세기 네덜란드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빌렘 클래즈 헤다는 당시에 유행하던 바니타스화를 주로 그렸다. 그림에는 당시 네덜란드 시민들이 사용했던 주된 식기, 음식 등 삶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갖가지의 요소들이 묘사돼있다. 그림 속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온갖 사물과 먹음직스러운 파이가 놓여있어 부유했던 그 당시 집안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모두 깨져있거나 엎어져 있으며 완전하지 못한 형태이다. 겉으로 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이 그림의 이면에는 숨은 의미가 무수하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퀴즈 같은 알레고리를 교묘히 넣기 위해 많은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그려진 물건과 음식은 모두 유한성을 띠고 있다. 깨져버리기 쉬운 유리의 속성, 금방 상해버리는 음식과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회중시계가 유한한 속성을 대변한다. 현재의 쾌락과 사치, 좋은 것들은 소모적이며 찰나의 순간만 선사하기 때문이다. 항상 염두에 두진 않지만, 우리의 끝은 '죽음'이며 그것은 세속적 삶과 대조된다. 사물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빛은 그 의미들을 감추려는 듯,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17세기의 예술이 현대의 예술로


  

데미안허스트.PNG

데미안 허스트 X 알렉산터 맥퀸의

해골스카프 콜라보, 2003


 

비록 정물화는 아니지만, 현대에도 바니타스 장르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끝없이 제작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무의식 속 어딘가에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의 황금 시기, 화려했던 정물화의 역사와 죽음을 기억하라는 유한적 메시지는 지금까지 예술에서의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장식적이고 다양한 색채는, 오히려 삶의 끝을 담은 이미지를 환영하는 듯 생기롭게 표현된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축하하는 작업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작품을 제작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과 질문은 앞으로도 우리를 대면할 것이다. 죽음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거부할 수도 없는,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부강했던 나라와 함께 예술의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던 17세기 네덜란드, 그 시대적 상황이 정물화 장르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했다.

 

예술가들은 곧 각자의 개성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모리처럼, 그 시대에서 설파했던 검소함의 교리와 화가들의 예술적 표현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라는 시대적 교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바니타스화'에서 전하는 죽음의 이미지의 수용은 무조건적이지 않다. 다만, 숨은 의미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삶에서의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도록 북돋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삶을 죽음을 통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 그 사유의 끝에 우리들의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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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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