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벽 감성, 그리고 새벽 반성 [사람]

글 입력 2020.03.15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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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다. 저녁 10시의 피곤이 12시 종이 땡 하고 울리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 나에게만 통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들 마찬가지였던 건지 여기 저기 온라인 상태다. 사실 온라인(on-line) 중 라인(line)을 빼고 그냥 온(on)이라고 해야할까 싶은 이유는, 새벽엔 다들 섬처럼 다 함께 하지만 각자 일정 거리를 둔 채로, 그렇게 떨어져 시간을 유유히 흘러보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언젠가 새벽에 대해 쓴 일기에서 “새벽엔 내가 깨어 있단 사실은 나 밖에 모르니, 괜찮다” 라고 적은 적이 있는데, 아무튼 새벽은 내게 그런 시간이다. 새벽엔 충분히 혼자서도 재밌을 거리가 아주 많다.  유튜브 탐험, 플레이 리스트 점검 및 (새)단장, 문장 수집 등등. 이런 것들을 온전히 누릴 줄 안다면, 감수성이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감수성이 좋다 – 흔한 그런 사춘기 때의 툭 하고 건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고, 사전 표기 된 그대로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밌는 것을 보면 재밌고, 슬픈 것을 들으면 슬프고, 이런 식으로 인간의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맡고 하는 등의 감각 기관을 통해 희로애락애오욕정도를 느낀다면 감수성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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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수성이 있는 편이다. 있고 없고를 가르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건, 새벽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들킬 염려 없이, 또 꾸밈없이 이런 저런 자극들을 받아들이는 내게 친구들이 ‘네 새벽감성은..’이라며 말을 잇지 못할 때가 간간히 있다. 실은 새벽을 누리고 난 뒤 찾아온 피곤한 아침에, 다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몇 번씩 눈을 비빈 적도 많다. 하필 또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떡하니 ‘읽어주세요’ 하고 버티는 나의 글이 부끄러워 삭제 버튼을 누른 적도 다반사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그런 감성들을 꾹꾹 숨겨놓는 편이다.


어쩌다 감수성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감성을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 감수성과 감성은 별반 차이가 없는 개념이다. 감수성과 감성은 서로의 유사어다. 다만 받을 受(수)가 ‘감’과 ‘성’사이에 껴있고 없고의 차이인듯 하다. 그러나 새벽에의 내 모습과 같은 경우를 통틀어 새벽’감수성’이라 하지 않고 새벽’감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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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라는 단어의 뜻 풀이에서 내가 주목한 바는 ‘마음의 성질’이라는 부분이었는데, 예를 들면 이렇게 들 수 있겠다. 밤 하늘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짙은 밤하늘 색에 반짝 반짝하고 빛나는 별들에 감탄하거나 감동하게 되는 걸 감수성, 하늘과 별이 주는 느낌에 어떠한 대상이나 장면, 생각 등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거리들이 작용하면 그게 감성이 아닐까. 물론 제멋대로인 예시다.

 

 

 

지난 밤의 감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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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답기


얼마 전, 우연히, 그리고 새벽에 보기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다. 작가이자 평론가, 유명(?) 방송인이기도 한 그의 책이나 방송을 거의 보진 않았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가치관과 주관이 뚜렷한 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채널에서 그의 진가는 십분 발휘되는 듯 하다.
 
고민상담소와 같은 포맷의 이 채널은,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응답기와 허지웅이 출연한다. 아주 기쁘거나 슬프거나, 웃기거나 암울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연을 풀기보다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다들 하나쯤 가진 사연들을 하나씩 푼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요, 하는 사연자들의 덤덤함에서 차마 밖으로는 내색 못할 아린 느낌들이 하나 둘씩 올라온다.


실은 말하고 싶은 것이 한 가득인 사람이 “아, 정말 제 이야기를 들으시나요?”만을 반복하며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사연, 직장 상사, 가족, 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현재와 과거, 미래, 시간에 얽혀 있는 마음들. 응답기 속의 목소리는 모두 변조된 것이지만 그만큼 또 사실적일 수가 없다. 정말 목 끝까지 차오른 그 소리들을 내뱉는 사람들. 한 명도 빠짐없이 응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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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온더블럭


"말을 좀 길게.. 안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정말 위급한 현장에서 '정말 괜찮다'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한 간호사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마스크에 눌린 양 볼에, 그럼에도 웃고 있는 두 눈, 어쨌든 '괜찮다'라는 이야기만으로 영상 속에 담긴 간호사와 그의 동료들의 안녕을 애써 어림잡을 수 없었다.

정말 괜찮다, 정말 괜찮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재차 더 말할 것은 없느냐, 하며 다른 질문을 하던 유재석은 결국 '말을 길게 안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라며 조심스레 묻게 된다. 돌아온 대답은 역시 '그냥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는 특별히 불편한 게 없다.'

결국 잘 지내고 있다고, 괜찮다는 이야기였다. 괜찮다라는 안부 인사에 보는 이들은 마냥 괜찮으리라 생각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새벽 반성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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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나의 새벽감성 시간은 사실 반성의 시간이었다.

 
응답기에 담긴 사람들의 목소리 중, 사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정말로 묻는 사람은 드물었었다. 사연에 답하는 허지웅의 목소리도 사실, "어떻게 하세요"라는 정말로 현실적인 조언은 아니었다. 하다못해 못된 직장 상사를 한 대 치라고, 그러지 않으면 '아, 그때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거라는 등의 응답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에서 진정성이 느껴진 이유는, 그가 참 잘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눈 앞에 사연자가 있지 않은대도, 마치 앞에 사람을 두고 듣는 것처럼 잘 듣는 그 모습이, 사연자들이 원하는 응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꺼내기 어려울 법한 이야기를 한 사연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그 말, 그 말에서 나는 날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당최 내가 놓친 사연이 몇 개였을지, 들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몇 번정도 들었던지, 부끄러웠다.
 
"괜찮다"라는 간호사분의 말에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것 같다. 함께 겪고 있는 이 고통에 대해서 누군가는 애써 힘겹게 이야기를 꺼내고 누군가는 쉽게 이야기거리 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후자가 내 이야기였다. 불행과 불편을 겪는 이들 간의 차이였다. 확진자를 확찐자 - 갑자기 살이 확 찐 사람 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질 않았나, 쉽게 쉽게 작은 감기 기운에 코로나 아니냐며 농담을 건냈질 않나, 정말이지 괜찮지 못했다. 그녀가 말을 아끼는 동안 나는 하지 않아야 할 말들까지 함부로 했었던 것이다.
 
*
 
그렇게 내 지난 밤은 참 길었다.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되는 시간이었기에, 누군가에게 질책 받을 걱정 없이 감성도 반성도 자유로운 새벽이었다. 그런데 참 얍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성으로 끝날 감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울 수 없도록 그 날의 반성문을 이렇게 적는다. 부디, 모두 정말 괜찮을 날이 오기를, 마음으로 바란다.

 

 

[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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