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글 입력 2020.03.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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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후 주인공이 다시 일어나는 순간들은 주로 짧은 컷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그 기간동안 주인공이 어떻게 버텨나가는지 보다 그 이후 그가 성공한 이후의 쾌감에서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혹은 슬럼프를 죽을 것처럼 표현하는 영화들도 많다. 특히 주인공이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을 때 좌절과 절망은 극대화된다.


슬럼프가 절대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위기 속에서 밥은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밥은 먹고 다니는, 위기 속에서도 담담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찬실’의 모습을 그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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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아 망했다. 왜 그리 일만 하고 살았을꼬?”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똑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 현생은 망했다 싶지만, 친한 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살길을 도모한다. 그런데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이 누나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장국영이라 우기는 비밀스런 남자까지 등장! 새로 이사간 집주인 할머니도 정이 넘쳐 흐른다.
 
평생 일복만 터져왔는데, 영화를 그만두니 전에 없던 '복'도 들어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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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이 나를 가득 채워줄 줄 알았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中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했던 찬실의 인생에서 "좋아하는" 영화는 점점 사라져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찬실은 담담해 “보인다”. 물론 그의 안의 절대 담담하지 않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지내려고 한다. 절망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친한 배우의 가사도우미가 되는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렇기에 찬실은 씩씩해보인다.


슬럼프를 이겨나가는 찬실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일만 하느라 10년동안 연애도 안한 찬실은 ‘영’의 등장에 한껏 설레어한다. 그리고 서툴게 그에게 플러팅한다. 물론 결과는 실패다. 기대한 후 실패는 더 씁쓸하고 부끄럽게 자신을 찾아오는 법. 밤에 이불킥할 흑역사를 만들었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서툴게 다가간 것조차, 현실적으로 보였다.


마음이 힘들어지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찬실은 그러한 마음을 서툰 플러팅으로 대체한다. 힘들 때 하는 플러팅이 먹힐 리가 있나! 그래도 누군가에게 찌질하게 다가가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흑역사를 잠시 꺼내게 했고 영화의 유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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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은 현실에 지쳐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를 떠나려고도 했다. 프로듀서로서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친했던 대표에게 일자리를 물었을 때 대표는 “찬실의 현실"을 일깨워주며 거절했다.


“묵고 살아야 되는데 진짜로 아무도 안 찾는” 막막한 상태에 접어든다.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것이, 그동안 찬실이 해온 일이었다는 것에 그는 혼란스러워한다.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고 부모님께서도 이만 본가로 돌아오라는 편지도 남긴다.


그러는 와중 자신이 어렸을 적 좋아했던 ‘장국영' 환영을 지속적으로 보게 되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붙잡았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이제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 프로듀서가 아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와 응원하는 것으로 끝을 맞이한다. 힘든 고난 속에서도 찬실이를 따뜻하게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찬실이는 복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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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그리고 이 영화도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아는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는 <동경이야기> 뿐이다. 졸면서 본 영화이기에 (마치 그 영화를 지루해했던 극 중 ‘영'처럼) 내용이 무엇이었는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자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영’은 영화 <동경이야기> 속에서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루하다고 표현한다. 그의 말에 찬실은 무슨 일이 안 일어났냐며 씨네필로서의 역정을 낸다. 극 중 내에서는 전쟁이 일어났고 가슴 아픈 일들 투성이었다며, 그런 위기 속에서도 일상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영화라고 대변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찬실의 태도 또한 <동경이야기>와 같다. 힘든 상황인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일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꿋꿋하게 버텨나간다. 찬실의 위기는 컷컷으로 잘리지 않는다. 그저 덤덤한 롱샷으로만 잡힌다. 위기도 흘러가지만 일상도 흘러간다.

 

 

"유머가 슬픔이나 힘듦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소중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일상을 살아갈 때 코미디가 도움이 된다."

 

- <씨네 21>과의 인터뷰 



지치고 우울할 때 필요한 것은 잠시 그 생각을 하지 않도록 텀을 두는 것이다. 텀을 두기 위해서 일상 속 작은 유머와 코미디가 필요해지고 그것은 위로가 된다. 한바탕 웃음 뒤 쏟아지는 정막에 더 쓸쓸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잠시 슬픔이 없었던 순간들이 모여 그 슬픔에 대해 다시 돌아볼 때 점점 멀어지고 무던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 슬픔에서 벗어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행동하게 된다. 찬실은 바로 이 유머가 주는 텀으로 현실을 더욱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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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
- LUCKY CHAN-SIL -


각본/감독 : 김초희
 

출연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03월

등급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96분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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