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LA HONTE EST PARTOUT [문화 전반]

예술이라는 이름의 수치, 어디에나 있다.
글 입력 2020.03.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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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프랑스의 오스카라고 불리는 세자르 시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 <장교와 스파이들>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에 배우 아델 애넬은 “Quelle Honte! (수치다!)”라고 외치며 시상식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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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스키는 아동 성범죄자다. 그는 미성년자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는 등 수차례의 성범죄로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서 제명당하고, 미국을 떠나 40년 가까이 도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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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애넬은 지난 해, 그가 10대 때 감독 크리스토프 뤼지아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공론화하며 프랑스의 미투 운동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는 여성이 당하는 성범죄가 처벌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내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겠다며 “끝까지 가보겠다”라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걸고 긴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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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델이 참석한 자리에서, 세자르는 보란 듯이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수여했다. 시상식 중간 중간 아델의 표정은 카메라에 잡혔고, 퇴장하는 아델의 모습 또한 화면에 중계되었다. 아델의 반응과 폴란스키의 수상, 이 과정이 마치 일련의 쇼처럼 다루어졌다. 세자르는 폴란스키를 수상 후보에 올린 것으로 페미니스트 단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에게서 항의를 받아왔으나 영화와 사람은 구분해야 하며, 사람으로 영화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예술과 도덕, 표현의 자유와 윤리의 관계는 항상 첨예하고 민감한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작품에 대한 지지는 결국 그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한 지지다. 예술과 도덕은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도덕을 어긴 이를 지탄하지 않았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의 굴레를 계속 붙잡고 함부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첨예한 갈등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Les puissants, 권력자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결국 권력자들의 자유만을 의미하며, 약자와 피해자의 자유와 권리를 묵살한다.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혐오를 양산하는 범죄자에게 상을 준다는 행위 자체가, 그 범죄 자체는 ‘아무 문제없음’을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성과 남성, 그 복잡한 젠더 권력 관계에서 결국 승자는 남성이어 왔다. 그들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 하나로 권위를 획득하며, 티끌 같은 ‘실수’를 저지른 위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일종의 ‘시상식’에서 제외된다.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밝혀도 오점이 남는 것은 여성들이었으며, 스크린에서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 것도 그들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남자 연예인이 길지 않은 공백 기간 후에 눈물을 글썽이며 연예계로 돌아오는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그 어느 곳에서도 잘 살고 있는 피해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가 정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자유가 정말 예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가? 별 고민거리 없는 안락한 권력 의자에 앉아, ‘워워- 진정해. 예술과 도덕은 별개잖아?’라는 배부른 소리로 기존의 권력 체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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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아델의 외침은, 시상식을 떠난 첫 발걸음은, 카메라에 잡혔던 그 눈빛은 큰 의미를 지닌다. 권력자들의 힘 실어주기로, 주변인들의 침묵으로 무겁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을 공기를 떨쳐내고, 그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가 만들어낸 진동은 세자르를 넘어 전 세계를 울렸다.


La honte, 수치가 어디에나 있음을 상기시켰다. 여성이, 피해자가, 약자가 침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강자와 권력자의 편에 서서 ‘예술은 예술이다’라고 논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수치라고 외쳤다. 나는 그의 뒤를 마음으로 쫓아나갔다. 더 이상은 첫 발을 뗀 사람이 죄인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그의 용기와 분노에 무한히 연대하고 감사를 표한다. 나는 세상이 정의롭기를, 따라서 예술이 정의로울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

 


[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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