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권 영화, 여섯 개의 시선 [영화]

한 해를 생각하면 외면뿐이로다.
글 입력 2020.02.2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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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 ‘여섯 개의 시선(If You Were Me, 2003)’이 생각난다. 역시나 난 시기의 분위기보단 상황의 분위기를 더 중요시해서, 이렇게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고른다. 가만히 앉아서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봐야 하는 영화. 막- 봤다간, 훅- 들어와서 벙-찌게 만들더라.


인권 문제와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로, 6개의 단편 영화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영화-라 소개되어있다. 난 고등학교 때 박찬욱 감독이 만든 마지막 단편 영화를 학교에서 봤었다. 그때 짧게 뭔가 툭, 치고 지나갔던 게 얼마나 강렬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6개의 주제는 2003년 상영, 그러니까 15년 전 영화인데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이 얘기인즉슨, 지금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는 거겠지. 『우리가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변하지 않았고.』 이번 해를 반성하기에 딱이다. 아쉬워하기에 딱 좋은 영화다.

 

 

 

첫 번째. 그녀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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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 세상 속에 사는 외모 콤플레스를 가진 여고생 이야기. 외모 콤플렉스가 어디 ‘무게’에만 해당하랴. 사진 속, 제일 오른쪽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실업계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설정인데, 실업계도 일부러 설정해 놓은 것 같다. 과거엔 실업계 이미지가 많이 부정적이었으니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길 바라지만, 실제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인 것 같긴 하지만. 튼, 주인공은 어딜 가나 겉모습을 운운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당연한 결과인 걸까. 주인공은 렌즈를 껴 보기도 하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근데 이 주인공의 모습이 과거엔 안쓰럽고 처절하게 느껴졌는데 왜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질까? 요즘은 중학생도 하는 쌍꺼풀 수술이다. 심지어 코 수술도 한다. 중학생들이. 그런데 고3 여학생이 저 정도의 외적 관심을 보이는 정도야, 기본으로 보이지. 남자들도 외적 관심이 늘면서 성형을 많이 하는 요즘인데 말이다.

 

성형을 논하잔 말이 아니고, 지금도 저 사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세상이라 나는 그냥 나도 한 번쯤은 받았을 상처를 누군가에게 주진 않았을까 생각해보고 싶은 것뿐이다. 내 눈 흘김에, 내가 예뻐라 하는 여자 스타일에, 내가 멋있어하는 남자 스타일에, 누군가의 자존심을 깎거나 높이진 않았을는지.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의 합리화에 내가 한 가지 이유가 되진 않았을는지.

 

 

 

두 번째. 그 남자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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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많이 난해하고 어렵다. 간략한 줄거리는, 엄마가 아이에게(주인공) 이불에 오줌을 쌌으니 소금을 받아오라 해서 주인공이 아파트를 도는 내용이다. 영화는 내내 사각형 프레임을 강조한다. 아파트의 네모남, 답답함, 딱딱함. 그리고 영화에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성범죄자. 아파트 주민들은 성범죄자를 아파트에 존재하는 룰대로 무시를 하면서 비교적 자신들은 굉장히 깨끗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나온다. 아, 당연히 범죄자보다 아파트 주민이 올바르다. 범죄자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를(그것도 성범죄자를) 비교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아파트 주민들이 이 아이를 성범죄자로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교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아파트 주민들에 한해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성범죄자 집에 소금을 받으러 가면서 끝이 난다. 아파트엔 층마다 문구가 적혀있는데, 마지막 성범죄자의 집에 가는 주인공 뒤로 ‘자신이 한 판단을 믿으라’란 문구가 적혀있다. 이것을 두고, 이 아이가 훗날 성범죄자가 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영화에 총 3번에 걸쳐 흰색 풍선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주인공이 성범죄자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소품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고.

 

 

 

세 번째. 대륙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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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문제가 거론되면 항상 나오는 장애인. 이 영화는, 한 장애인의 평소를 아주 짧은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매일이 불행하고 우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언행 불일치, 장애인들의 사랑과 우정 등등 꽤나 다양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에피소드에 나왔던 것 중, 제목이자 제일 마지막 에피소드인 <대륙횡단>을 최고로 꼽는다. 광화문을 가로질러 건너는 주인공이 막판쯤 경찰에 잡혀 울부짖으며 끝이 나는데, 난 오히려 <횡재>가 더 좋았다 말하고 싶다. 주인공은 지하철역 입구에 서 있는 것뿐인데, 지나가는 사람이 동전들을 주인공 앞에 떨구고 간다. 정말 센스있는 블랙 코미디 연출이 아닐까 싶다.


장애인 문제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허나, 조심스럽다고 말하는 것조차 그들에겐 차별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표현해야 할지 난처하지만, 내년에도 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사소한 일상에서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려 한다.

 

*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이 포스팅 목적과 맞지 않아, 간략한 줄거리만 말하자면, <신비한 영어나라>는 아이의 영어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고, <얼굴값>은 예쁜 여자의 성격일 수도 있는 태도가 ‘얼굴’이 예뻐서라는 이유로 치부하는 사회 시선과 관련된 내용이다. <얼굴값>의 경우에, 개인적 의견이지만 예쁜 얼굴은 한 예시일 뿐, 겉모습을 보고 성격과 행동을 단정짓는 사회를 지적하는 게 아닐까?

 

 

 

여섯 번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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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6년 4개월간 일어났던 일들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 외면이 낳은 최악의 경우, 찬드라. 』

 

이 영화는 93년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다. 당시 37세였던 찬드라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와 싸우고 기숙사를 나와 걷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다. 찬드라의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졌고, 이를 모르는 찬드라는 배고픔에 분식집으로 들어간다.

 

돈을 내지 못하니 사장은 경찰을 부르고, 경찰은 찬드라를 외국인이라 생각지 못한다. 경찰은 찬드라와 길게 얘기해 보지도 않고, 정신 병원으로 보냈고 병원에서도 찬드라를 정신분열 환자로 ‘정리’했다. 그렇게 6년 4개월이다. 6년 4개월간 있지도 않은 병의 약을 먹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정신병 환자 취급을 받았다.

 

찬드라에게 “당신이 찬드라인가요?”라고 묻는 말은 영화 시작에 흑백으로, 끝에 컬러로 이렇게 두 번 나온다.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연출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당신이 찬드라인가요?”라고 묻는 걸 반복해서 보여주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드라에게, 한국에서의 기억은 지옥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핑계를 댄다. 영화에 나온 사람들의 외면은 끝없이 많다. 이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네팔사람인 걸 알아줬더라면... 여권 번호를 말했음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놓고, 자신이 맡은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대사관 직원. 진짜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고 찬드라의 말을 들으면, 네팔 말이 한국어랑 비슷하다는 간호사. 겉모습을 봤을 때, 시골에서 온 아주머니 같았다던 의사. 파키스탄이나 네팔이나 둘 다 검은 피부를 가졌으니 거기서 거기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의사.


 


 

 

우리나라의 조직 문제를 콕 꼬집고 있기도 하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얼마나 죄송스럽던지. 마지막에 컬러로, 당신이 찬드라냐 물었을 땐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세월이, 내가 다, 아까워서. 너무 아깝고 원망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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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 그러기 위해 외면하지 않는 일.

 

 

[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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