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호랑, 공주가 되다.

주인공의 이름이 ‘호랑’인 것부터가 파괴적이다. 만 18세의 여고생의 이름이 호랑이라니, 대체 이 소설은 무슨 내용인가?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나에게는 꽤 허무맹랑하고 당황스러운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눈으로 좇아도 내가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엉뚱했던 전개였다.

우리나라가 입헌군주제라는 말이다. ‘엥? 입헌군주제?’ 참으로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입헌군주제라는 설정 속에서 한껏 신이 나있는 ‘호랑’을 보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한참을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피식피식 웃게 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시트콤을 보는 것 같네.’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우리나라가 입헌군주제라는 설정 아래에서, 입헌군주제를 반대하던 여고생 호랑이 자신도 몰랐던 출생의 비밀로 인해 공주가 되는 성장 이야기다. “하여튼. 다 망했으면 좋겠다. 아니, 다 망해라! 권력은 인민에게! 황족은 군 밖으로! 제국해체! 민주통치! 펑크로 세계정복이다!” 어쨌든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신나게 외쳐대는 호랑이 사실은 공주였다니, 누구보다 제일 당황스러운 것은 호랑일테다.

신선하고 파괴적인 전개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입헌군주제라니. 이렇게나 바보 같은 헛소리가 또 어디 있어?” 입헌 군주제 하에서도 그들은 할 말을 다 해버린다. 끊임없이 황족의 해체를 주장하고 그들의 존재를 반대하는 호랑은 친구들과 함께 펑크로 투쟁을 한다.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고등학생의 투쟁 현장이다. '펑크 투쟁',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이익태의 궁궐 복원 프로젝트를 성사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종가구 주민들을 몰아내고, 황족을 위한 궁궐을 짓겠다는 것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취재를 하는 기자들은 호랑에 주목한다. 거침없는 그들의 목소리와 펑크 음악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호랑과 친구들은 그렇게 거침없고 당돌했다.

책 뒤편 ‘작가의 말’에 따르면 호랑을 설정한 의도는 이러하다. <전 현실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부당함과 그에 뒤따르는 두려움을 의식적으로 제 소설에서 지웠거든요. 그리고 이 배제는 부당함의 존재 여부를 부정하기 위함이 아닌 부당함을 부정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호랑이는 그 목표에 맞게 두려움을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어야 했지요.>

그러나 이런 호랑에게 갑작스러운 비밀이 밝혀진다. 그녀가 바로 황위를 물려받을 공주였다는 것. 어머니의 부재로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던 호랑에게 성인식을 앞두고 황제가, 즉 호랑의 이모가 찾아온다. 호랑은 공주의 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한다. “마음 써 주신 건 감사하지만 밀린 세뱃돈만 일시불로 받을게요.” 참으로 호랑 다운 대답이다.

이익태를 막으려고 뛰어든 공주의 길

그러나 결국 호랑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왜냐, 이익태를 막기 위해서다. 이익태는 황실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한 일도 없고 그렇다고 정통 황족도 아닌 이 소설에서 악당과 같은 역할이다. 이익태는 종가구를 황족을 위한 궁궐로 짓겠다는 모략을 펼치고 있으며, 호랑이 공주가 되지 않을 시, 그의 아들이 다음 황제가 될 예정이다. 기껏 해서 소리 높여 궁궐 프로젝트를 막고자 노력했는데 이익태 가문이 황위를 물려받다니? 호랑에게는 몹시 분한 일이었다.

그렇게 받아들인 황제의 자리. 호랑은 호랑답게 세상에 내던져진다. 친구들은 깔깔깔 웃으며 대한제국의 장래를 우려하기도 한다. “제가 황제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요. 크롱이가… 아니, 담임선생님이 황궁에서 개최하는 황실 성인식에 참가하는 거면 공식적으로 야자를 째도 된다고 했거든요. 크쌤! 봤죠? 진짜지? 나 뉴스 탔지? 이제부터 째든 말든 노터치다?” 야자를 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고 신이 나 인터뷰를 하는 호랑이다.

이렇게 호랑이 공주가 되며 성인식을 열기까지, 좌충우돌 펼쳐지는 과정들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다. 작가는 소설의 키워드를 <공주의 성인식>으로 잡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랑’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설정하여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했다. 소설을 읽으며 청소년 시절에 많이 읽었던 성장 소설과 같다고 느꼈다.

어쩌면 너무나 극적인 호랑의 출생의 비밀은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전개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도 읽지 못했던 입헌 군주제라는 설정은 내게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성격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공주의 성인식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호랑 개인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같은 황실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와 반대편에 서서 사리사욕만 챙기고 있는 이익태는 호랑이 공주로서 연설을 하지 못하기 위해 납치를 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호랑의 씩씩한 대응에 결국 고꾸라져버린다.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통쾌한 한 방과도 같았다. 호랑의 성격에 걸맞은 대담한 마무리였다.

호랑 공주 납시오

호랑은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연설은 한다. 다 늘어진 운동복, 납치에서 벗어나 급히 오른 무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솔직히 좀 그래. 황제라니. 깨잖아. TV에서 나더러 공주님이라고요. 안 웃겨요? 내가 뭐라고 나한테 님, 님 그러나. 무슨 온라인 게임 정모에서 호칭에 님을 붙이는 감각이라면 몰라.”

“처음에 차기 황제가 되라는 이야기를 나왔을 때 하겠다고 한 이유는 그냥 익태 라인이 황제가 되는 걸 막으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내가 궁궐 복원 프로젝트로 철거민들이 생길지도 모른다길래 종가 행진에 참여했던 건 알죠? 이익 테가 궁궐 복원 프로젝트의 책임자고? 뭐 그래서였죠.”

“나는 여전히 입헌군주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입헌군주제가 아닌 다른 체제에서 살고 싶어요. 하지만 이 성인식을 마치는 순간 나는 절대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거예요. 이 성인식이 끝나면 나는 공식적으로 황족의 일원이 되어 대표성을 띠게 되니까요.”

“확실하게 말하고 가죠. 나는 황족으로서의 긍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민주 사회 시민의 일원으로서의, 입헌군주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긍지는 누구보다도 커요. 나는 이 입헌군주제가 나라는 한 개인의 돌발적인 사건사고가 아니라 국민들의 고민과 선택으로 수명을 다하기를 원해요.”

궁궐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이익태를 반대하며 시작된 호랑의 공주가 되는 길은 그 누구보다도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주가 되겠노라고 다짐하며 마무리 지어졌다. 한 편의 시트콤과 영화 같았던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내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맛볼 수 있었다.

파격적인 설정과 당돌한 주인공의 모습은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호랑의 성인식을 향해 달려가는 극의 흐름은 성장 영화를 한 편 본 듯했다. 호랑은 좋은 공주가 되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황제처럼 온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랑은 호랑답게, 씩씩하고 멋진 황제가 되어있지 않을까. 호랑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