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 나에게서 타인의 모습을 발견할 때

글 입력 2020.02.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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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로 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 와중에도 공연장은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러시아의 춥고 으스스한 분위기의 거리를 재현한 세트는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국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풍경이 엄숙함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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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역작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뮤지컬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존속살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잘 몰랐고, 뮤지컬 관람 전 원작을 조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구매해 읽게 되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아버지인 표도르와 장남 드미트리, 차남 이반이 막내인 알료샤가 머무르는 수도원에 모이게 되는 부분까지 읽고 나서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소설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뮤지컬에 실질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다섯 명이다. 앞서 말한 까라마조프 가의 네 부자와 표도르와 거지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가 그들이다. 뮤지컬은 방탕한 아버지인 표도르가 죽임을 당한 이후,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를 인물 한 명 한 명을 따라가며 밝혀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년 말 개봉한 영화 <나이브스 아웃>과 같은 후더닛(Who Done it) 미스터리 장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단순한 줄거리를 중심으로 화려한 퍼포먼스가 위주가 되는 뮤지컬은 아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원작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인간에 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줄거리를 한 마디로는 담아낼 수 없다. 원작의 앞부분에 나오는, 장황할 만큼 긴 각 인물에 관한 묘사가 음악으로 충실하게 표현되면서 창작 뮤지컬만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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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여색을 밝히지만, 돈이 되는 일만은 귀신같이 알아내 자수성가한 표도르 까라마조프는 김주호 배우가 맡아 열연했다. 죽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무덤에서 살아 돌아와 아들들을 괴롭게 하는 표도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존경받는 수도사이자 알료샤가 스승으로 모시는 조시마 장로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초반부의 독백이 충격적이었다. 극에서 절대선에 가까운 조시마 장로의 정반대 편에 있는 인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즐기는 광기 어린 모습이 관객들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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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래 배우가 장남 드미트리를 맡아 극의 초반부를 이끌어갔다.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누구보다 증오하고, 그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드미트리 역시 표도르 못지않게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방탕한 인물로, 극 중에서 ‘개가 인격을 가지게 된다면 그건 나일 거야’라는 대사로 자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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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배우는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종교를 거부하는 차남 이반 역을 맡았다. 이반은 가장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누구보다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신을 믿는 이들을 어리석다 말하며 직접 종교를 비판하는 저서를 쓰던 중 무시했던 스메르쟈코프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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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하고 온순한 성품으로, 원작에서는 중심이 되는 인물인 알료샤는 김지온 배우가 맡았다. 원작에서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인물로 그려지며, 뮤지컬에서는 주로 괴로워하는 드미트리와 이반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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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에는 ‘유로지비’라는 독특한 유형의 인물이 존재한다. 겉으로는 걸인과 같은 천한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무시당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한,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다.


박준휘 배우가 맡은 스메르쟈코프가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 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세 아들로부터 무시당하지만, 결국은 명민하게 세 아들을 지켜보고 조종하려 했음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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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삼 형제는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가?’ 라는 질문에서 점차 ‘누가 가장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은 드미트리지만, 모두 한 번쯤 표도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었으며, 그 이유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카라마조프 가의 피가 치욕스러웠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모두 자신에게서 표도르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누가 먼저 죽이느냐는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누구도 자신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증오할 수 없다는 원작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중독성 있는 넘버와 강렬한 연기로 담아냈다. 장미, 모래, 거울, 촛불 등 다양한 상징이 극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철학적인 가사들이 극의 몰입도를 높였고,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본 적이 없는 나도 여러 차례 관람하고 싶어지게끔 했다. 다만 원작의 중심인물 중 뮤지컬에 언급되기는 하지만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 인물이 많아 관람 예정이라면 미리 원작의 줄거리와 인물에 관해 알아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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