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숨기지 않고 말하는 죽음, "뉴필로소퍼 9호" [도서]

삶을 죽음에게 묻다
글 입력 2020.02.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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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란했던 거의 모든 시간을, 자전거를 타면서 공상하는데 보냈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다가 궁금한 걸 발견하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했다. 가령 초여름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향기는 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건지, 생동하는 계절과 살아 숨 쉬는 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 어차피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삶이니 이런 질문은 모두 쓸데없는 건 아닐지 등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당혹스러울 법한 질문을 자주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공상하고 질문하는 순간만큼은 ‘살아있는’ 삶이라고 여겨졌다. 비록 세상은 질문할수록 당연하지 않은 것 투성이였지만 —페달을 밟는 다리는 나의 다리가 맞는지, 실은 옆집에 사는 찬우의 다리인 건 아닌지, 더 나아가 나는 왜 하필 나로 태어난 건지,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지— 문득문득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는 재미가 있었다. 심란했던 사춘기 내내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들이 뚜렷하게 지속되었다.

 

그러나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많아질수록 불안해지는 법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인간은 청탁 없이 이 세계로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듯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삶 자체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규정하거나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실존적인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급기야 어느 순간부터는 호기심을 묵살하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가 큰코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정서적 안정을 찾기 위해 가급적 덜 질문하기 시작했다.

 

고백하자면 불안해지기 싫었고,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았다. 복잡한 상징을 담아낸 서사나 무거운 주제의 작품은 과제가 아닌 이상 삶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간혹 이런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과 오만함을 깨부수는 텍스트를 마주하면 뼈를 맞는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반면 삶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영감도 얻곤 했는데, 철학 잡지 《뉴필로소퍼》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삶을 죽음에게 묻는, '일상'을 철학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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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필로소퍼》 9호가 천착하는 주제는 ‘삶을 죽음에게 묻다’이다. 죽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철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들과 접목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예컨대 철학자 나이젤 워버튼은 <어느 철학자의 죽음>에서 선배 철학자의 선택을 사례로 "불치병 환자들의 조력 자살이 하나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작가 티파니 젠킨스는 <죽음이 전시가 되는 세상>에서 죽음이 "일종의 행사처럼 바뀌고" 있는 현실을 짚어내며 관음증의 도구로써 죽음을 사용하는 시대를 비판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덴마크 출신 사진작가인 클라우스 보의 인터뷰와 사진은 주목할만한 대목이었다. 그는 초기부터 난민과 여성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 특히 2010년부터는 죽음에 대해 탐구하는 'Death and Alive Project'를 시작했으며 전 세계의 장례 풍습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앵글에 담아냈다. 프로젝트를 통해 찍은 대부분의 사진은 자연사한 고인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찍은 것이었는데, 이때 마주한 고인들은 하나같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각 문화권의 애도 방식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고인을 떠나보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개 며칠에 걸쳐 망자를 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그동안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유족과 함께하며 도움을 준다. 그들은 굳이 "기분은 좀 괜찮아졌어?"라는 위로를 건네지 않고 옆에서 '함께'한다.

 

이처럼 모든 과정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과 달리 한 사람의 죽음에 달랑 2시간 30분밖에 투자하지 않는 서양의 장례식을 돌아보게 된다. 병원이나 호스피스 기관을 통해서 죽음을 다루는 요즘, 사람들은 죽음을 삶과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되는 동시에 서서히 잊히고 만다. 장례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고인의 시신뿐만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은폐하고 묻어버리려는 행위는 아닐까.

 


어떤 의식에 참여할 때 우리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일을 함께하며 전체의 일부로 행동합니다. 이런 장례 풍습은 조문객들이 30분쯤 교회에 모였다가 2시간쯤 커피와 케이크를 맛보고 각자 집으로 흩어지는 서구 나라의 문화와는 완전히 달라요. 서구 사회의 유족들은 대개 집에 홀로 남겨집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아파트에서 혼자 슬픔을 감당하는 거죠.

 

- 《뉴필로소퍼》 9호, 바다출판사, 2020,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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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대단히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까운 가족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곁을 지키면서 침묵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적절한 표현을 갖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상실의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혼자 남겨두지 않고 곁에서 힘이 될 수 있을지를 잘 모른다. 하지만 클라우스 보의 작업과 인터뷰를 통해 느낀 건 죽음에 대해, 상실의 아픔에 대해 더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외면하고 은폐하는 태도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자연스러운 결말이자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작가 티파니 젠킨스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는 대단한 건전한 일이며 단순한 소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p.94)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유한함을 필연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순간을 잘 보내고 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지금 하는 일이 무언가를 포기할 만큼 의미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일을 선택하고, 가장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기회만 있으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주 편하게 자신의 죽음관과 자신이 바라는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을 이야기한다. 대화할 준비는 되어 있으니, 기회만 만들면 된다.


- 《뉴필로소퍼》 9호, 바다출판사, 2020, 93쪽.

 

 

잡지를 읽고 나면 죽음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어떤가 돌아보게 된다. 눈을 감고 죽음을 떠올려봤을 때 당장 몸이 아프다거나 어두컴컴한 관이 떠오르지 않아서일까. 마치 누군가의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죽음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이라는 감각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죽음은 가장 끔찍한 질병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p.9)라고 말했던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죽음이 어떤 감각인지 모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숨을 쉬는 한은 죽음을 느낄 수 없고, 정작 죽음이 오면 이 세상에 없지 않은가.


때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행여나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알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분명 죽음을 앞둔 이의 책을 통해 지혜를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김진영 철학자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는 삶이 쓰러져가는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간절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이처럼 언젠가 죽음이라는 보편적 경험이 마음을 두드린다면, 그것은 반드시 삶에 적용되고 말 것이다.

 

 

철학은 우리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 죽음은 결국 우리 모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낼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 《뉴필로소퍼》 9호, 바다출판사, 2020,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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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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