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션담론(1) - 버질 아블로와 돌체 앤 가바나 [패션]

글 입력 2020.02.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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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컬렉션 中


루이비통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런칭한 브랜드 파이렉스(PYREX)와 오프화이트(OFF-WHITE), 그리고 현재 몸담고 있는 루이비통은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의 패션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고, 그의 행보는 비전공자 출신의 흑인 디자이너가 보수적이며 백인우월주의적인 패션계에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패션이란 단어는 본래 상류층의 복식을 비롯한 생활문화를 일컫던 단어였다. 이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며 패션은 예술의 영역과 단단하게 결합했으며 이들이 입는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경향이 현대로 이어졌고, 백인 상류층들이 현대까지도 주류 패션 소비자 그룹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랬던 만큼 소위 ‘유색인종’들에게 패션의 진입장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유색인종 모델들이 런웨이에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유럽 패션 하우스의 흑인 디자이너는 아직도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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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논란이 되었던 H&M의 후드탑


 
시대가 바뀌어 비즈니스, 스포츠, 대중문화와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물질적 성공을 거두는 유색인종이 많아졌고 그들의 구매력이 향상함에 따라 패션계도 이들을 주요 구매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흑인이나 동양인 모델들이 전면에 나서는 등 가시적인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해당 인종에게 박힌 백인 중심의 편견적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투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SPA브랜드 H&M은 흑인 아동 모델에게 “정글에서 가장 멋진 원숭이(Coolest monkey in the jungl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혀 논란이 됐다. 이러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동양인 모델에겐 찢어진 눈과 낮은 코를, 흑인 모델에게는 육감적이고 굴곡진 몸매를 요구하는 등 ‘이국적’이라는 말로 포장된 차별의식을 표출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입성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단순한 개인의 성취가 아닌, 패션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산업의 일방적 소비자가 아닌, 생산하고 선도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버질 아블로 외에도 어 콜드 월(A Cold Wall)의 사무엘 로스, 파이어모스(Pyer Moss)의 커비 장 레이몬드 등 후발 주자들은 경찰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소수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그들의 컬렉션에 녹여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매우 멀다. 구찌는 최근 ‘블랙페이스 스웨터’를 출시했다가 흑인 비하 논란이 거세게 일자 이에 사과하고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지했으며, 프라다 역시 흑인의 신체적 특성을 과장해 표현한 제품을 출시했다가 논란이 되자 사내에 다양성 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돌체 앤 가바나는 상하이 패션쇼를 앞두고 동양인들의 젓가락 사용을 조롱하는 듯한 광고를 제작했고, 수석디자이너 스테파노 가바나가 해명은커녕 중국을 ‘X같은 나라’라고 칭하여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결국 ‘인권 감수성의 결여’로 귀결된다. 예술을 핑계로, 인권은 절대로 무시되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패션을 주도해나가는 사람들의 각성이 필요하고, 각성을 촉발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비판적인 자세 역시 불가결하다. 다만 긍정적인 것은, 그토록 보수적이던 산업에 미약하나마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멈추지 않도록 관심을 두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원동력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류형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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