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모두 마음 장님 - 연극 "비" [공연예술]

글 입력 2019.12.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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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기억하고 싶어서 쓰는 리뷰

연극 <비>


 


인물 소개


 

주인공 비(BEA)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지만, 만성적 체력 저하의 증상으로 8년 동안 침대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독한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하루 그녀의 마지막을 늦출 뿐이다. 침대에 누워만 있을 뿐 제대로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녀는 새롭게 들어온 간병인에게 자신의 말을 받아 적어 편지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의 삶을 끝내 달라는 편지.

 

캐더린은 커리어 우먼으로 남편이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혼자 비를 키우고 있다. 법조인으로 침대에만 누워있는 딸을 자신이 계속 케어할 수 없어 간병인 레이를 고용한다.

 

레이는 간병인으로 살면서 지금은 비를 케어하고자 비와 캐더린 집으로 출퇴근한다. 간병인으로서 비의 부탁을 받고 편지를 쓰게 된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




난 갇혀 있잖아요, 엄마. 덫에 걸렸어요. 이제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도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이 끈질긴 삶의 줄을 끊어버릴 수 있는 엄마의 선택이 그들 모두에게 자유일까? 비는 무엇보다 죽음을 바랐고, 엄마도 이미 딸의 결말을 알면서도 8년 넘게 병시중을 하면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였다. 그들 모두에게 안락사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는 답이었을까?

 

극에서는 비가 계속해서 뛰어다니고 활발하게 간병인 레이와 대화를 하며 웃는다. 하지만 이는 비가 꿈꾸는 환상일 뿐, 현실에서는 침대에 누워 레이가 주는 밥과 약을 먹는 것밖에 못 한다. 계속해서 상태가 심각해져 가고 그런 비를 위해 레이는 마음 장님 이야기, 사촌 동생 이야기도 해주고 비를 웃기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

 

레이는 엄마에게 안락사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주는 게 맞는 건지 굉장히 고민하지만 결국 써주고 이는 엄마에게 전달된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편지까지 써가며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 안락사였다. 엄마에게 안락사시켜달라는 말. 엄마만이 나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는 말. 이보다 더 엄마의 가슴을 찢는 말이 있을까?...

 



사과나무; 공감




우리 집 옆에 사과나무가 있었어. 하루는 네가 그 위에 올라가서 한참을 내려오지 않는 거야. 빨리 내려와서 가야 하는데. 그래서 계속 내려오라고 했는데 결국은 내려오지 않았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어. 한참을.


 

이 사과나무 이야기는 연극 전반 내내 나온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할까 봐 처음에는 정말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직도 완전한 정답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들 간의 공감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캐서린은 남편도 홀랑 떠나버리고 홀로 딸을 키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이 악물고 현실을 버텨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딸도 이유 모를 병으로 아프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이 절망적으로 느껴졌기에 더 완벽한 커리어 우먼과 엄마로 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비는 달랐다. 마냥 어린아이였고 엄마와 세상이 너무나 바쁘게 돌아간다고 느꼈을 것 같다. 엄마는 아침부터 출근하기 바빴고 자신은 그냥 사과나무 위에서 저기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그런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그래서 엄마가 자신에게 오도록 한참을 내려오지 않은 것 아닐까?

 

서로가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달랐고 이로 인해 공감도 되지 않았고 멀어졌다. 그런 엄마에게는 사과나무 위에 올라가는 일이 위험하게만 느껴져 계속 내려오라고 한 건데 딸이 내려갈 생각도 안 하자 이를 깨달은 것 아닌가 싶다. 사과나무 아래서 위를 쳐다보는 엄마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딸은 서로 처음으로 공감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도 웃고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딸도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캐더린과 비가 함께 있을 때, 캐더린이 마음 아프게 고민하고 죽음을 준비할 때 나온다.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비의 죽음을 캐더린이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공감했던 이야기, 그리고 지금, 다시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너무나 벅차다. 약을 먹을 수 있을 만큼 계속해서 삼킨 후에야 드디어 침대에서 벗어나 열심히 달리고 춤추고 창문을 박차고 서서 바람을 느끼고 행복하게 웃는다. 눈은 울고 있지만 너무나 그 마지막이 행복해 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캐더린도 마찬가지. 그녀의 삶의 절반 넘는 정도를 속박되어 있던 것들을 벗어 던지고 자유를 맛보는 순간이 나에게도 짜릿하게 느껴진다.

 

자칫하면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극에 레이는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침대에만 누워있는 비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이야기도 해주고, 책도 읽어주고, 웃겨주고, 비의 성적인 고민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은 모녀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횡설수설 이야기를 하다가 떠난다. 그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해주고 떠났다고 느껴진다. 그의 방식대로 그는 모든 방식의 케어를 해주었다. 그래서 극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비와 바쁜 캐더린을 이어주는 매개체, 다시 공감을 할 수 있게 만든 연결 다리의 역할을 하는데 충분했다.


 

 

마음 장님



레이가 비에게 자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를 마음 장님이라고 비유한다.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폐의 특성을 ‘마음 장님’에 빗대었다. 이에 비는 우리가 모두 마음 장님 같다고 말한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심지어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 참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극을 아우르는 주제는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사과나무 이야기를 하며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사고, 다른 행동을 했던 캐더린과 비가 진심으로 공감했고 레이와 비 둘은 서로에게 공감한다. 사실 레이가 동성애자라는 점은 비가 침대에만 누워있는 환자라는 것과 비슷하게 남들과 쉽게 공감을 할 수 없지만 그 둘 서로에게 공감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남들과는 다른 처지에 속해있는, 약자에 속한 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보살필 줄 아는 인물이다.

 

웃음 포인트도 많았지만 그리 쉽게 웃을 수 있는 연극은 아니었다. 누구나 맞닥뜨릴 문제인 죽음과 존엄사, 안락사에 대해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 나에겐 답을 정하기 어려운 심오한 주제이지만 직접 무대를 통해 이를 보게 되니 더 슬프고 다각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세상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마음 장님 아닐까? 쉽게 남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지 않고 각자 살기 바쁜 세상에 이야기에 공감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인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예술이 특별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도 내가 마음 장님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남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게 원래 내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넘겼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마음을 외면하고 오로지 나의 할 일만 챙겼던 이기적인 행동임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심 어린 말과 웃음으로 그들을 맞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을 아끼고 숨겼을까. 공감과 소통. 쉬운 단어인 것 같으면서도 절대 쉽지만은 않은 단어다. 언젠가 나도 내 마음을 제대로 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마음 장님 같아.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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