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본주의 체류기 -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와 같은 것이 아닐까 [도서]

불완전한 형태로 완성되는 밀실에서
글 입력 2019.1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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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와 같은 것이 아닐까. (p.299, 박민규 단편집 카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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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고시원의 인간 - 가구같은 인간


 

‘갑을고시원’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이다. <갑을고시원 체류기> 속 인물들은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타의 박민규 소설과 마찬가지로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변두리의 삶과 인물들의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친구의 집에 얹혀살다가 더 이상 계란후라이를 주지 않는 친구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고시원으로 향하게 된다. 일층과 이층 도합 세 대의 에어컨과 청동 보일러가 설치된 집이었음에도 말이다. (p.276) <이사>라기보다는 <이동>에 가까운 짐을 들고 (.p277) 도착한 갑을고시원은 방이라기보다는 관에 가까웠다. (p.280)

 

그곳은 공사판에서 추락사한 형이 들어간 방, 납골당과도 같은 곳으로 형상화 된다. 죽음과 멀지 않은 곳, 그야말로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p.281)싶은 곳이다. 창문도 없고 컴퓨터를 놓기 위해서는 발도 뻗을 수 없어 잔뜩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야하는 공간이다. 갑을고시원은 자본주의의 변두리이자 죽음과 맞닿아있는 장소이다. 그 공간에서 주인공은 움직임 자체가 점점 없어지고, 몸이 점점 나무처럼 딱딱해져가며 스스로를 가구처럼 느끼기도 한다.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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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고시원의 인간 - 소리없는 인간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을고시원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주인공의 인물상은 조금 색다르게 조형된다.

 

 

결국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인가 저절로 그런 능력이 몸에 배게 된 것이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게 생활화되었고, 코를 푸는게 아니라 놀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 가스를 배출할 땐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손으로 둔부의 한쪽을 힘껏 잡아당겨,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피... 쉬... (p.285)

 


재미있는 문장으로 쓰여진 이 문단은 가만히 읽어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주인공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에 대해서도 통제를 받는다. 그러면서 점점 공간에 특성에 맞춰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고시원은 인간적인 감정은 물론 작은 소리 하나까지 통제하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하며 뼈져리게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p.287)

 

작중에서 갑을고시원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통제하는 존재는 갑을고시원의 최후의 진짜 고시생인 ‘김검사’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그를 <김검사>라고 불렀으며, 주인공을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고시원에서 지켜야할 일종의 질서를 만드는 인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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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검사는 당당하다. 여자들이 있는데도 부끄러운 자세로 체조를 하고, 식탁에 누가 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반찬을 늘어놓고 밥을 먹거나, 큰 소리로 세수를 하고 코를 킁 하고 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김검사의 실연을 목격하게 된다. 갑을고시원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존재인 김검사가 <쟁쟁쟁쟁> 눈물을 흘리고, 그 무렵 형의 죽음을 통해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가고, 죽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갑을고시원의 인간 - 성장통을 겪는 인간


 

갑을고시원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도 주목할 만하다. “그럼 짐을 옮기겠습니다.”(p.281) ‘나’는 일종의 ‘관’같은 고시원을 대하면서도 담담한 태도로 일관한다. 첫 달치 방세를 건네고, 장부에 신상을 기재하고, 키를 넘겨받던 그 순간에는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을 받고,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이후 예민한 김검사에 태도에 대해서도 결코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이것은 그 고통이 일종의 성장통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상황은 물론, 김검사 이외에 언급되는 인물이 업소의 여급임이 분명한 여성들이라는 점을 종합해볼 때 이 작품의 주제는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와 연관이 있다. 아버지와 친구라는 기둥마저 모두 잃고 현실에 내던져진 주인공은 화를 내거나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웅크린 채로 잠들며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세상에 순응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으로 인식하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갑을고시원의 인간 - 밀실 속의 인간



갑을고시원이라는 장소는 굉장히 특별한 장소인 듯하다. 갑을고시원은 그저 돈 없고 힘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곳은 베니어의 세포막처럼 얇은 벽을 두고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며(p.293) 아주 작은 소리조차 <쟁쟁쟁쟁>하며 퍼져나가는 공간이다.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게 아니라는 사실과 동시에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게 하는 모순적인 공간이다.

 

작품 속 소제목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밀실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밀실은 모든 소리가 공유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소리를 죽이며 살아간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표현되는 밀실은 여타의 밀실과 달리 소통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는 불완전한 형태의 밀실임에도 오히려 그 때문에 가장 밀실에 근접한 공간이 된다.


‘나’는 그 공간에서 작은 소리 하나, 심지어는 생리현상까지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외로움을 사무치게 체험한다. 소통을 단절한 채 살아간다는 모티프는 현대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모티프 중 하나이다. 소통의 단절이라는 모티프는 현 세태를 꼬집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되어 식상한 모티프이기도 한다. 그러나 박민규가 설정한 불완전한 형태로 가장 완벽하게 완성된 밀실에서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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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고시원의 인간들에게



<386 DX-II>는 고시원에서 체류하던 시절 나의 전부였다. <이동>에 가까운 <이사>를 할 때는 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며 매일 밤 고시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다리조차 필 수 없어 웅크리고 자야하는 그곳으로 말이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자 전부였던 컴퓨터는 그 시절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버려졌다.


<386 DX-II>가 사라졌지만 그것은 지금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한때 전부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언제 어느 때에 버려졌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우리를 규정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없어져도 그만. 작가는 소유로 존재가 정의되는 자본주의 이념에서 벗어나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컴퓨터를 통해 독자에게 일종의 위로를 전하고 있다. 지금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컴퓨터가 없어져도 사실 괜찮다는 것이다.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온 우리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이며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서 <자본주의 체류기>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서 ‘나’는 조금 나은 삶을 살고 있을 뿐 자본주의에서 완벽히 탈피하지는 못한다. 동시에 지금 소유한 모든 것이 실은 <386 DX-II>와 같은 것들은 아닐까 걱정한다. (p,303)  그러므로 여전히 자본주의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게 쓰디쓴 실패가 찾아와도, 웅크리고서라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갑을고시원>이 여전히 그곳에 있기를 바라면서, 작가는 담담하게 위로의 손길을 건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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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고시원 체류기'는 박민규 작가의 단편집

<카스테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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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심규동님의 사진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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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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