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괜찮아질 우리들의, 디어 에반 한센 [공연예술]

뮤지컬 Dear Evan Hansen
글 입력 2019.11.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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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Dear Evan Hansen은 토니 어워즈 축하공연 영상으로 처음 알게 된 작품이다. 에반 한센 역의 Ben Platt이 ‘Waving through a window’라는 넘버를 선보이는 무대였다. 불안한 눈빛으로 벅차오르는 멜로디를 노래하는 배우의 무대에 나는 단번에 매료되었고, 그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똑같은 무대 영상과 사운드 트랙을 계속 반복하여 보고 들었다.
 

그리고 이번 가을, 드디어 디어 에반 한센이 공연되고 있는 뉴욕 땅을 밟았다. 올해 들어 가장 벅차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시놉시스
 

사회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에반은 간호사인 어머니로부터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Dear Evan Hansen으로 시작하는 편지에 에반은 내가 사라져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인 조이에게 자신의 모든 희망이 걸렸다는 내용을 적는다. 우연히 이 편지를 발견한 조이의 오빠 코너는 에반을 오해하여 화를 내며 편지를 들고 가 버린다.


그로부터 3일 후, 코너는 자살한 채로 발견되고 그가 들고 있던 에반의 편지는 코너의 유서로 둔갑한다. 에반은 슬퍼하는 코너의 부모님에게 사실 둘은 친한 친구였으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를 시작으로 에반은 코너와 같은 사람들을 돕고 코너를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한 코너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버린 코너 프로젝트와 에반의 연설은 과연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까?

 

 

 

Waving through a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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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re falling in a forest and there's nobody around

Do you ever really crash, or even make a sound?

 

 
수많은 뮤지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Waving through a window는 밝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어두운 가사를 담고 있다. 에반은 남들의 시선과 반응이 두려워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소심하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불러온 관계의 실패가 누적되어, 새로운 관계를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에반은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거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는 못하고, 두꺼운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며 누군가가 우연히 자신을 돌아봐 주기만을 기다린다.
 
누적된 관계의 실패와 신뢰의 상실은 개인을 타인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거듭된 실패로부터 시작된 외로움과 소외감은 점점 내면에 쌓이며 개인을 좀먹다가, 종국에는 아무도 없는 숲에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작은 목소리를 낼 힘마저 빼앗아 간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코너와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던 손을 스스로 놓아버린 에반이 누구보다 열심히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을 서로를 지나쳐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목소리를 잃은 채로 벼랑 끝에 서 있었을지 모를 누군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은 아닐까.
 
 
 
For Forever

 

 

 

코너의 자살 이후, 슬퍼하는 코너의 부모님 앞에서 에반은 코너와 자신이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코너와의 가짜 추억을 이야기하는 넘버가 바로 이 ‘For forever’다. 모든 가사가 진짜 코너와의 추억이 아닌 자신의 상상일 뿐임에도, ‘For forever’을 부르는 에반은 행복한 꿈을 꾸는 표정을 짓는다.

 

두꺼운 유리창 뒤에서 손을 흔드는 자신을 누군가가 발견해 주었을 때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말하는 듯한,어린아이 같은 표정. 'For forever'의 가사대로, 코너와 에반이 조금만 더 일찍 서로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더라면, 코너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You'll be found

 

 

 
코너의 죽음 이후, 에반은 코너와 같이 혼자 남겨진 사람들을 돕고, 누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한 캠페인 ‘코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코너 프로젝트는 유리창 너머에서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에반의 성장이다.
 
에반은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 코너가 모두에게서 잊힌다면, 나무에서 손을 놓았지만 죽지 않았던 자신도 사라질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사라지게 될 많은 사람을 위해 에반은 거듭된 실패와 좌절로 만들어진 두꺼운 유리창을 깨고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Even when the dark comes crashing through
When you need a friend to carry you
And when you're broken on the ground
You'll be found
 
 
코너 프로젝트를 여는 에반의 연설은 SNS를 타고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 SNS는 현대인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닿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다. 무대 뒤편의 TV스크린과 무대 중간에 서있는 여러 개의 프로젝션 스크린으로 구현된 가상공간은 이제 더는 가상의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소통하며 벼랑 끝에 있는 서로의 손을 잡고 현실 속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디어 에반 한센은 이러한 SNS의 세계를 무대 위에 물리적으로 구현, 연출하며 현대인들의 새로운 소통과 위로의 방식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죽기를 기도했던 에반 자신부터, 아들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며 무뚝뚝하게 굴었지만 결국 신디아 곁에 무너져 울던 해리까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모두는 에반의 연설을 계기로 무너져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목격한다. 시작은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에반의 코너 프로젝트는 서로를 스쳐 지나기만 했던 모두가 서로를 발견하고 위로를 나누는 기적 같은 소통과 연대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Words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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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 프로젝트는 모두를 연결시켜 준 기적 같은 프로젝트였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코너의 가족 앞에서 토해 내듯 뱉어낸 이후 에반은 다시 혼자 남겨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Dear Evan Hansen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코너의 유서가 아닌 에반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반의 엄마 하이디는 이 일을 계기로 에반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에반의 깊은 상처를 알게 된 하이디는 에반의 아빠가 그들을 처음 떠나간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고, 둘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에 한 발자국 다가선다. 코너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것이 에반의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지만, 코너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보게 된 코너의 가족들은 분명 전과는 다른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Fi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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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Evan Hansen,
Today is going to be a good day,
and here's why because today,
at least you're you and that's enough!
 

 

Dear Evan Hansen은 과수원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편지를 쓰는 에반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그저 내가 나일 수 있어 오늘은 행복한 하루가 될 것이라고 적는, 한 걸음 더 성장한 에반의 모습은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크고 따뜻한 영향을 실감하게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사람으로부터 그 상처를 치유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Dear Evan Hansen은 벼랑 끝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기적과, 그럼에도 결국은 괜찮아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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