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대했던 세상은 거기에 없고 [도서]

김영하 단편집 『오직 두 사람』 중 <아이를 찾습니다>와 함께 소설의 표정을 고민하기
글 입력 2019.11.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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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표정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어떤 표정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어떤’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표정의 사람들을 나는 찾아다닌다. 특별히 게으르거나 못나서가 아니라, 나쁜 짓을 잔뜩 해서가 아니라(물론 그런 인물도 종종 존재한다.) 눈앞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다보면 돌연 피어나는 얼굴. 하릴없이 마주한 삶의 진실 앞에서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서성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 표정을 바라보는 일이 괴롭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왠지 그것은 내가 어딘가에서 만났던 과거인 것 같아서, 예정된 내일인 것만 같아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는 인생도 종종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는 동안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다시 소설을 꺼내든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표정을 자꾸만 만나고 싶다. 그리고 알아봐주고 싶다. 거리에서 그런 표정을 실제로 만나게 되도 알은체 할 용기나 딱히 해줄 말은 없지만 마음이 그렇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당신에게 내 슬픔을 너무 쉽게 지겨울 테니까. 나 역시도 당신들이 지겨웠을 테니까. 어쩌면 남의 일이어서 쉽고, 잔인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 같은건 아닐까. 소설을 읽는 일이 이렇게나 두렵고 매혹적인 일이었나. 

 

진실은 어린 시절 긴 밤을 지나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을 열어보니 빈 상자였다는 이야기 같아서 언제나 기대를 배신하고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비어있는 허무함뿐 이라면 좋겠지만 그 상자는 사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어서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원했던 것은 거기 없고, 도리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진실이 물밀 듯 밀려온다. 그럼에도 언제나 희망만은 우리 곁에 남는 것이어서 나는 읽고 또 쓴다.

 

요즘 나에게 소설 읽는 일은 그렇다.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마주하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따라 망연한 표정을 짓는 일. 그리고는 하릴없이 또 다른 표정을 찾아나서는 일. 더 읽다보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사실을 믿지도 않으면서 계속 읽어나간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지었던 표정을 이제 당신이 내 글을 읽으며 짓게 되길 가만히 바라본다.

 

 

 

기대했던 세상 이후의 표정


 

요즘에도 나는 종종 그 날 한 말실수나 지나온 흑역사를 떠올리며 밤에 조용히 이불을 찬다. 그런데 만약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혹은 몇 년이 아니라 “남은 평생 동안 반복하여 떠올리게 될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 엄마는 가끔 나와 형이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 있었던 보이스피싱 이야기를 해주시곤 한다. 나중에는 형 옆에 앉아 형이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안전을 확인한 후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도 했었다고 한다. 아들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 죄책감과 상실감을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준비도 없이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경험으로도 짐작할 수 없는 종류의 마음이라는 것만 안다.

 

<아이를 찾습니다>는 아이를 찾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를 찾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첫 장면은 ‘볼트’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빈손으로 시작해서 아이의 작은 속을 잡으며 끝난다. 문제가 있다면 그 아이가 지금껏 찾던 ‘아이의 아이’ 즉, 손자라는 점이다. 시작과 끝의 이 혼란스러운 간극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몇 해 전 여름, 부부는 아이를 잃는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세 살 배기 아이가 탄 카트를 누가 그대로 끌고 가 버린 것이다. 이 어이없고 뻔뻔한 납치사건 이후 그들은 ‘아이를 찾는 것’에만 몰두한다. 안정적인 직장도 저축도 아파트도 보험도 집수리 같은 그밖에 삶의 문제들도 모두 뒷전이 된다. “전단지를 뿌리기 위해 밥을 먹는 일상”이 그 삶을 지배한다. 전단지로 뒤덮인 집은 마치 “전단지라는 이름의 벌레들이 야금야금 집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진전은 없고, 설상가상 아내에게는 조현병이 찾아온다. 소설은 아이의 실종이 조현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밝힌다. 결혼 전부터 전조가 나타났던 일이지만 남자는 그저 아이를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는다. 남자는 그 날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유보한다. 아이를 찾을 기미가 안 보이고, 아내는 조현병에 시달리고, 삶의 전반이 무너져내려가는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찾는 것’은 그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그리스 고대극에서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버리는 기계장치 위의 신)이다. 그러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현실이 아닌 그리스 고대극에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차라리 종교에 가깝다. 아이를 찾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강렬한 믿음은 이미 망가져버린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지금의 불행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이자 모든 책임을 떠맡아줄 도피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모든 것을 걸고 그 순간을 바라고 기다려왔으면서도, 이미 익숙해진 ‘실종된 성민이 아빠’라는 불행이 11년 만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끝나버렸을 때 그는 “감당할 수 없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아내에게 조현병이 찾아왔던 그 순간보다 더욱.

 

아이를 찾았지만 극적인 눈물의 상봉은 없고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내의 조현병은 여전하고 집도 삶도 엉망인데 야간 근무는 더 이상 빠질 수 없다. 게다가 아이는 자신을 진짜 부모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유괴를 당했다는 듯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자기를 키워줬던 엄마가 어느 날 자살했는데, 그 엄마는 납치범이었으며 진짜 부모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짜 엄마는 곰팡이로 가득한 낯선 집에서 조현병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를 찾느라 ‘나’의 모든 삶이 무너지는 동안 아이는 유괴범을 엄마로 인식하고 자라왔다. ‘나’는 그렇게 “미쳐가는 아내와 자기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 아들이 있”는 미래에 던져진다. 남의 아이를 유괴해 방과 침대와 책상을 마련해주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자를 ‘나’는 떠올린다.

 

악의도 없이 파국으로 치닫던 이야기가 결국 새로운 생명과 함께 끝이 날 때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희망이나 가능성일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거나 삶을 긍정해야 한다는 메시지일까. 혹은 체념이나 냉소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나는 이 소설에서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읽는다.


그토록 기대했던 세상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앞으로 만날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큰따옴표(“”)는 책 속의 문장을 직접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직접 인용의 경우 페이지를 밝혀야 하지만 전자책을 활용해 페이지 확인이 어려운 점 양해 구합니다. 

 

 

더불어 <아이를 찾습니다>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낭독회 영상을 첨부합니다.

 

 

 

[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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