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nding 없는 Eternity의 세계가 온다면? [TV/드라마]

블랙 미러 <샌 주니패로 San Junipero>로 보는 가상세계 속 사랑의 형태
글 입력 2019.11.1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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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and Copulation, and Death. T.S. Eliot says it’s all about. (…) Love and death. The erotic principle coming into conflict with the death principle. And what ensues from that conflict.”

 

 

줄리안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Ending>에 나오는 구절이다. T.S. 엘리엇의 시구는 인간 삶의 본질적 측면은 태어남, 사랑, 그리고 죽음임을 보여준다. 태어남과 죽음은 인간이 관여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요소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은 생의 유의미함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사랑의 결실을 보아 자손을 남기거나 더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본인의 열정과 욕구를 쏟는다.

 

그렇다면, 현실세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태어남, 부조리함, 사랑, 죽음이라는 네 항은 가상세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날까? 유물론을 전제하면 현실 세계의 우리는 뇌가 받아들이는 감각 자극을 통해 느끼고 사고한다. 만약 가상세계에서 뇌에 동일한 감각 자극을 줄 수 있다면 가상 세계와 현실세계에서의 감정과 의식을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즉,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 다른 차원, 다른 형태의 동일한 세계일 뿐이며 인간이 현실 세계에 적응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 세계에도 잘 적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세계에 적응한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비롯된 부조리함, 사랑, 그리고 죽음을 어떤 식으로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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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 시즌 3의에피소드 4 <샌 주니페로>는

Yorkie가 한 나이트클럽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1. 태어남. Birth는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 즉, 출생 이후 죽음을 마주하기 전까지 우리는 의식이 생겨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가상세계의 삶은 Birth 이후 동일한 삶의 연장선일 것이다.


2. 부조리함. 과연 태어남으로부터 비롯된 부조리함은 가상세계에서 사라질까? 부조리함은 인간과 세계라는 두 항이 일치할 때, 즉 인간이 세계를 온전히 포섭할 수 있을 때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세계를 전적으로 알 수 없다는 그 간극에서 부조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샌 주니페로>에서 두 주인공은 고전적 형태의 신경망(뇌)을 토대로 정보를 얻고 해석하는 데 그친다. 이에 인간이 세계에 대한 전지적 시점을 얻지 않는 한, 현실세계의 조건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가상세계에 진입한다면 부조리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생각, 발생한 사건, 현상들의 원인 등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Samantha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신경회로 혹은 정보처리망을 갖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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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서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3. 사랑.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49 years. (…) The fucking love. You just cannot know. Everything we sacrificed. The years I gave him, the years he gave me. We had a daughter. Died at 39 years old. Richard and I, we felt that heartbreaking as one. Spend eternity in this fucking graveyard you’re so in love with (…) “

 

 

드라마 속 주인공 켈리의 대사이다. 켈리는 과거 49년의 결혼생활을 강조하며 배우자와 자신이 나누었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인 딸이 일찍 죽었고 그로부터 고통이 컸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와 대조하여 가상 세계인 샌 주니페로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구심을 던진다. 

 

여기서 ‘인간이 현실세계에서 느꼈던 사랑의 형태, 조건, 느낌 등 그 총체가 과연 가상세계에서도 유지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발생한다. 49년의 결혼, 출산, 상실에 따른 고통, 생의 마지막, 죽음. 켈리가 이야기한 일련의 생의 형태는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짙은 감정적 호소가 있다. 

 

하지만 가상세계로 넘어왔다고 가정할 때, 영속성을 얻은 상태에서 전통적 의미의 사랑은 더는 감정적 호소를 하지 못할 것이다. 49년의 결혼 생활조차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일 뿐이며, 시공간을 뛰어 넘는 생활에서 결혼 등의 제도는 무의미할 것이며, 이로부터 비롯된 어떠한 속박도 인간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쾌락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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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kie와 Kelly가 나누는 사랑의 형태는

우리에게 완전히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다.

 

 

4. 죽음.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샌 주니페로(가상 세계)를 택한다는 것은 죽음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죽음과 그 상실에 따른 고통도 유효할 것인가?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생명의 물리적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것이 정말로 끝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상 세계 속 아바타가 되살아날 수 있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아바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인간에게 대입되어 가상세계 속 나와 타인이 아바타처럼 영속적 삶을 산다고 하면 그들을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슬픔과 고통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가상세계에서 죽음이 사라짐으로써 사랑의 형태와 방식을 비롯하여 인간 삶 전체에도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과 세계가 관계 맺는 방식에서 비롯된 부조리함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적어도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사랑 행위를 통해 부조리에 맞서고 이를 견뎌 유한한 삶의 혼란을 잠재울 의지와 용기가 생긴다. 원한다면 인간에겐 죽음을 앞당기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주어져 있다. 하지만 영속성을 보장하는 샌 주니페로에서 인간은 끝이 없는 부조리 앞에서 혼란에 맞설 의지, 용기를 점차 잃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리적으로 자살할 자유도 없다. Ending이 없고 Eternity만 있을 뿐이다.

 

5. 영속성과 불멸. 그렇다면, 가상세계에서 인간은 영속성을 과연 영원히 지속시키고자 할까? 새롭게 부여된 권리이지만, 부조리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이 부조리함을 자각한다고 가정할 때, eternity는 오히려 삶을 속박하는 굴레일 것이다. 이에, eternity를 파괴하고자 하는 새로운 유형의 자살이 나올 것이다. 전기적 신호를 차단하는 등 어떠한 방법으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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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불멸을 약속하는 가상세계가

과연 행복도 약속할 수 있을까?

 


1과 5를 종합하자면,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Birth, Love, Death라는 세 항이 인간을 얽맬 것이다. 가상세계에서 Death라는 항을 지워버리고 Eternity를 대입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새로운 형태의 Ending을 창조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근본적 조건인 부조리함이 가상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가상세계를 만들어 영속성을 보장받으려는 욕망을 추구하기 이전에 인간 조건의 부조리함을 직시하고 이를 견뎌낼 분명한 목적의식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가상세계는 고해(苦海)인 현실세계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혹은 더 지독한 고해일 수도.

 



[김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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