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는 ‘귀여운’ 캐릭터를 사랑해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10.3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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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귀여운 것을 사랑합니다. 귀여운 그림과 물건은 모든 걸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줍니다. 저는 삶에서 '유머'는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귀여운 것들은 재미, 유머,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 줍니다. 그들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 이승희 외,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중에서.

 


어린 시절에도 각종 캐릭터 인형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나는, 최근에 와서야 ‘귀여움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전부터 EBS 캐릭터인 ‘펭수’에 빠져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펭수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모 아이돌 그룹의 탈덕 루트를 통과하면서 ‘내 인생에 이제 덕질이란 없다’고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펭수의 귀여움은 나의 결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어느새 ‘펭수 굿즈’가 나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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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불과 십 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성인들이 귀여운 캐릭터나 장난감 등에 열광하는 이른바 ‘키덜트’ 문화는 B급 문화의 영역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키덜트 문화라고 하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피규어나 건담 프라모델 등을 모으는 ‘매니악한 취미’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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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봤을 때, 나는 국내 키덜트 문화의 큰 전환점이 된 시기가 바로 ‘카카오 프렌즈’의 등장 이후라고 생각한다. 좀처럼 ‘어른이’들을 공략하지 못했던 2010년대 이전 국산 캐릭터들과 달리, 카카오 프렌즈는 전 국민의 일상대화 속에서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귀여움과 친숙함을 바탕으로 한 인기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 인기가 ‘라인 프렌즈’를 비롯한 여타 캐릭터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데 큰 기폭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곧 국내 캐릭터 산업과, 관련 시장 자체의 엄청난 성장세로 이어졌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귀여운 캐릭터나 만화 등을 보며 ‘유치한 것, 또는 어린이들의 전유물’ 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도심 한복판 번화가의 백화점부터, 심지어 소규모 동네 상권의 슈퍼마켓 안에서까지 카카오 프렌즈나 라인 프렌즈의 얼굴이 들어간 제품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다. 또한 그 제품군이 인형이나 완구류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생필품, 문구류, 의류, 심지어는 AI 스피커와 같은 전자제품까지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 물건들이 어디에나 있다. 이는 그만큼 키덜트 문화가 우리의 일상 안으로, 즉 주류 문화 영역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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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대를 초월한 디즈니의 흥행도 이러한 키덜트 문화의 인식 변화 과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국내에서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역대 디즈니 영화(마블 시리즈와 실사 영화 제외, 애니메이션 영화 한정) 순위 목록을 살펴보면, 1위부터 10위까지의 작품이 모두 2010년대 이후 제작, 개봉한 영화들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영화가 주 관객층인 유소년 관객들의 점유율 만으로 3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는 것은 큰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치는 곧 2010년대 이후 적지 않은 성인 관객들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며, 키덜트 문화가 대중문화의 주류 영역 한 가운데로 입성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증거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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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이유도 없이 마냥 ‘귀엽기만 한 것’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건 완벽한 오산이다. 성공하는 캐릭터들의 공통점은 바로 ‘서사’에 있다. 귀여움이 인기를 만드는 거품이라면, 그 캐릭터의 귀여움 이면에 담겨진 탄탄한 스토리텔링은 그 거품을 일으키는 물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캐릭터 자체는 결국 사람의 손끝에서 생겨난 한낱 그림체에 불과할 뿐이지만, 거기에 스토리를 부여했을 때 비로소 캐릭터는 하나의 생명과 지속성을 얻어 살아 숨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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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서사에 어느 동화 나라의 판타지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적 설정 요소들이 깔려 있다면 '어른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시간문제다. 예를 들어 상습적으로 ‘제이지’를 괴롭히며 그의 돈을 삥뜯은 적도 있다는 카카오 프렌즈의 '어피치', 갈기 없이 태어난 숫사자라는 이유로 콤플렉스에 시달리다 결국 왕이 되는 꿈을 포기하고 이모티콘 배우로 살아가는 ‘라이언’, 남극에서는 남들과 다른 외모로 놀림을 받았지만 뽀로로 선배를 이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에 와 ‘슈퍼 인싸’로 등극한 EBS 연습생 ‘펭수’까지.
 
이처럼 현재 어른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캐릭터들의 배경에는 모두 현실 어딘가 있을 법한 설정값이 깔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캐릭터들이 어른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당연지사다. 이들이 가진 각각의 스토리가 그들을 단순한 ‘귀여움의 표상’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아이콘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여느 현실의 사람들과 같은 희로애락 가득한 스토리에 어른들은 공감했고, 그 덕분에 캐릭터들은 이제 어른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아이콘’으로 당당히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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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년 평생 상상도 못했던 캐릭터 덕질에 난생처음 발을 내딛은 요즘, 나는 간혹 ‘과연 먼 미래에는 귀여운 것을 보고 ‘귀엽다’는 의미 그 이상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신조어가 등장할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끊임없이 고민해 봤지만, 아직까지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다. 앞으로 귀여운 캐릭터들은 더더욱 끝도 없이 어린이와 어른이들의 마음을 모두 간질일 테지만, 귀여운 캐릭터를 귀엽다는 말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형용사는 앞으로도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들이 주는 재미, 긍정적인 힘, 사랑스러움을 이토록 동글동글하게 모두 함축할 수 있는 단어 그 이상의 말을 만든다는 건,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더 많은 ‘어른이’들이여, 입덕하라. 이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형용사를 수식어로 지닌 존재들에게. 귀여운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순간,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은 반드시, 틀림없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풍요로워 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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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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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변예지
    • 재미있다 ㅋㅋㅋ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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