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Begin Again’ 프로그램의 여운을 삶에서 꺼내듣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10.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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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6, 여의도 한강공원>

 

 

이번 주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다. 삶이 나를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지내왔다. 시간이 갈수록 열심히 투자한 것들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힘주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입시를 위한 내신관리와 모의고사를 위해 달렸다. 대학교 때는 내가 갈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히 취업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학점과 할 수 있는 만큼의 대외활동들을 했다. 그러다 졸업을 했다. 그런데, 졸업을 해도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아니 난 ‘준비’하는 삶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최근 한 달 동안 들었던 질문이었다. 미술 전시를 보는 것도, 그 리뷰글을 쓰는 형식에도 무언가 나다움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여러 직무들을 살펴보며 자기소개서를 생각하는 것도 골치가 아팠다. 내 모습으로 있을 수는 없는 걸까.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기에 한계를 느꼈다. 그렇다면 내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하는 건 또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답한 마음이 마치 청춘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이 느끼는 위안마저 무거웠다. 내 안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는 질문에 방 안에 있던 나는 숨 막힘을 느꼈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생각에 밖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결과와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참아왔던 묻어두었던 우발적 행동을 하기로 했다. ‘준비’ 따위는 여기 방 안에 뒀다. 마음이 가는 대로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갔다. 하늘이 너무나 높았다. 마치 가을 하늘의 정석을 보여주듯 높새 구름이 한강을 향해 팔을 쭉 뻗고 있었다.

 

그때, 여의도 한강공원에 버스킹 공연을 발견했다. 여의도 한강공원을 가다 보면 자주 보이는 장면이지만, 오늘은 왠지 끝까지 그 공연을 보고 싶었다. 남성 듀엣으로 이뤄진 그룹의 이름은 ‘오추 프로젝트’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좋았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 느낌. 버스킹은 한창 이었고, 난 핸드폰을 켜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녹음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찾으며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던 시간을 양손에 들고서 노래를 들었다. 삶의 무게를 안고 듣는 노랫소리는 마음에 더욱 와닿았다. 지우거나 일부러 붕 떠서 잠시 잊는 것도 아니었다. 그 무게를 안고서 잠시 쉬어가는 형태라 좋았다.

 

JTBC에서 최근 방영한 ‘Begin Again’ 시즌 프로그램이 있다. 가수들이 버스킹 공연을 하는 이 프로그램은 잔잔한 감동이 있다. 인위적인 감동, 화려한 조명이 없다. 대신 가수 한 사람이 당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대로 노래를 부른다. 삶의 현장인 길거리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노래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거나 가던 길을 계속 걷기도 한다. 우연히 등장해 짧게 혹은 여력이 된다면 길게 공연시간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는 버스킹 공연은 주변과 호흡한다. 그 모습이 참 좋아서 ‘Begin Again’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애쓰지 않고서도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버스킹 공연이다. ‘Begin Again’ 프로그램이 연출한 감성을 현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바로 자연스러움, 이 조건이 프로그램이 롱런하는 이유가 되었고, 버스킹 공연이 계속되는 이유이며 관객들이 발걸음을 멈추는 이유다. 자연스러움에는 대중가수의 노래를 그들의 음색으로 바꿔 부르며 듣는 경험도 포함된다. 생각지 못한 선물을 그 자리에서 받는다. 버스킹 공연의 노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움이 곳곳에 짙게 밴다. 필연을 기대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목격할수록 우연히 진행되는 버스킹 공연 발견이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 날 발견한 여의도 버스킹은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들어 공연하는 장면을 담은 ‘Begin Again’ 프로그램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내가 하던 고민에 ‘부자연스러움’이 참 많았던 것을 생각하게 했다. 버스킹 공연은 관객과 현장에서 호흡하며 공연 시간을 자유자재로 변경해야 한다. 붙잡거나 애쓰지 않고 오로지 그 상황에 스며들어야 한다. 관객 역시 각자의 몫대로 공연을 즐기면 된다. 누구는 서서 듣고, 누구는 앉아서 듣는다. 카메라를 꺼내 영상으로 녹음하기도 하고,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조용히 경청하기도 하며, 옆 친구, 연인과 함께 얘기하도 한다. 공연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그 시간 자유롭게 호흡한다.

 

당시 버스킹 공연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어떤 고민들을 안고 있는지 모른다. 그 현장에 있던 모두는 버스킹 공연에서 울림을 얻고 갔다. 나의 경우,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은 시간에 좌절감을 느꼈지만, 다시금 내가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선택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답답함에 상황을 잊고자 도피한 곳에서 버스킹 공연을 발견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완벽히 만족할 수는 없다. 옳은 길이라 여겼던 것들도 자연스럽지 않다면 결국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후에 받는다. 선택이 불완전함에 근거를 둔다면, 안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기 보다 불완전해 보이는 것을 선택해 보는 게 어떨까. 내가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것들, 내가 나로 있기 위한 불완전한 선택들을 한 번쯤은 해보는 것을 생각했다.

 

나의 고민이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버스킹 공연이라는 선물을 주었듯이, 살면서 완전한 선택이란 없다. 전에 봤던 ‘Begin Again’ 프로그램의 자연스러운 감동이 떠올라 발걸음을 멈춰 들었던 여의도 한강공원의 버스킹. 삶의 굴레에 나의 기대와 모습이 다시 묻힐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버스킹 공연의 현장처럼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희망을 부른다. 지금 답답함을 느꼈으며,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이 들었던 나를 따스히 안아준다. 다시 버스킹 공연을 발견할 때에는 조금은 나다운 모습으로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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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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