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푸르지 않은 청춘(靑春), 경미의 세계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글 입력 2019.10.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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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지 않은 청춘(靑春), 경미의 세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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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는 주인공 수연의 엄마다. 극 중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그녀의 이름이 제목으로 쓰인 게 영화가 끝나고 나니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배경과 영화를 풀어내는 전개 방식을 처음 본 느낌으로는 영화로 보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난쏘공’을 조금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청춘 영화지만 영화 속 청춘은 푸르지도 않고 봄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사장 철문을 힘겹게 밀어붙이는 수연은 뭔가를 찾고 있다. 연기를 하는 그녀는 조그만 극단에서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며 담담하게 살아간다. 수연이 갖고 있는 ‘담담함’은 물론 대부분 그냥 담담함이 아니다. 그 밑에 꿈틀대는 치열한 삶의 흔적과 고통, 감정의 파도를 얇은 막으로 덮어 놓은 표면일 뿐이다. 그녀는 삶에서 담담한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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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따금씩 수연은 감정을 표출한다. 그 표면을 열어볼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에게 그 감정을 분출한다.

 

요양원에 누워 더 이상 대립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진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어딘가 처절함을 느끼고 그 ‘담담함’이라는 막을 찢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자신에 대해 깨닫고 절망한다.


자전거를 타고 통영 바닷가를 달리는 수연은 무언가를 찾는 듯해 보인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엄마일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일까. 결국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것이다. 자신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크레인을 쫓아 철문을 두들기는 그녀에게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것이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감정을 뒤로 한 채 그녀는 다시 살아간다, 경미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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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현재 삶을 마주한 청춘들이 직접 겪지 못하더라도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20대 청춘에게 있어서 꿈과 희망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같은 서사를 내놓는 작가는 냉소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은가’

 

결국 이야기는 인생을 다룬다. 비록 스크린에 나타나는 2시간의 인생이지만 나는 2시간 이전과 이후의 캐릭터의 인생을 상상하곤 한다. ‘경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인생은 2시간 이전이나 이후나 꿈과 희망 따위는 없다. 먹어도 토할 걸 알면서도 음식을 꾸역꾸역 넣는 수연처럼, 그녀는 하루에 하나씩 힘겹게 인생을 삼킨다.

 

*

 

우리 시대의 청춘 서사는 변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시작된 아픈 청춘의 일대기는 '슈퍼스타K'와 같은 꿈과 희망의 서사를 쓰다가, 지금 와서는 'N포 세대'와 '열정페이'라는 힘겨운 길을 걷는 중이다.

 

일정 나이가 되니 나도 이제 청춘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보다는 마음 속 한켠에 불편함이 느껴진다. 청춘은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고 꿈과 희망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치고받는 사회로 들어가기 전 준비단계같다. 경미의 세계는 그렇게 청춘의 이면을 밝힌다.

 

대형 스크린에 걸리는 밝은 성장 드라마와는 다른 세계다. 청춘의 삶도 다른 삶과 마찬가지로 치열하다. 수연에게 아름답고 희망적일 권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다, 푸르지 않은 청춘이기에.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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