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세진 수산

글 입력 2019.10.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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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나는 서울 사람도 아니고 올라와서 지낸지 겨우 3년차, 게다가 해산물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여기 올 일이 과연 있을까. 막상 가니 활발한 수산시장이 아닌 적막하고 횡량한 공간이었다. 넓은 공간에 의자만 가운데 도란도란 있는 그런 공간.

팀원님 덕분에 상인 분들과 안면 트고 인사를 했다. 지인이 아닌 낯선 사람들에게 <화가와 모델> 요청하는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다수에 편중되기 때문에 잘 나서지 않는다. 주목 받는 것도 꺼려한다. 그래서 주저주저하면서 쑥스러운 웃음 뒤로 한 채 이리저리 묻다가 모두의 추천으로 한 분을 맞이하게 되었다.

테이블이 차려진 자리에서 커피를 하나 받고 마주보고 자리에 앉았다. 주섬주섬 연습장과 오일파스텔을 꺼냈다. 수산시장의 막내분이셨다. 나는 공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시어머님과 아저씨(신랑)는 장사를 했어. 결혼한지 지금 27년째야. 큰 아들이 27살인데, 낳은 후 다음 해부터 나왔어. 우리 아저씨가 처음에는 장부 정리만 부탁했다가, 나와서 하나 둘 씩 팔다보니 재미있더라고. 집에 있는 것보다 재밌어. 그래서 그렇게 장사를 하게 됐어. 아저씨가 새벽 1시에 나오면 난 5시에 나왔지. 7시 퇴근하고. 그렇게 장사를 30년 했지. 내 나이가 54인데 여기서 막내야. 평균 나이가 70세거든. 그래서 난 여기서 막내야."

시어머니와 함께 장사 하다가, 지금은 동생이랑 한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한 수산 시장이라니. 이거야 말로 평생 직장/ 직업인가... 아저씨는 허리 아프셔서 몇 년 못나오셨다고 한다.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니 그냥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화모035.jpg

 

 

"내가 총무에요. 잡일 많이 하고 이것저것 교육도 하고. 하다보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된 거고"

"언니는 결혼 전에 어떤 일 하셨어요?”

"SY식품 8년 근무했었어. 여직원들 관리하는 일.. 200명 정도 되는데, 신입 교육도 하고 퇴직 예정자 상담도 하고. 인사 역할도 하고 생산직 비품 관리도 하고 모든 일을 다 했어."

"그래서 여기서 관리도 하고 말빨도 나오는 건가요, 장사도 잘 하시고."

"에이 내가 무슨 말을 잘 해~"

왜 다른 분들이 이 언니를 추천한지 알겠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셨다.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언니에게는 주황색과 파란색이 느껴졌다. 순간적인 느낌을 잡아 그림을 그리면서도 대화를 놓치지 않고 들으려니 엄청 애가 탔다. 내 손이 왜 내 감각만큼 따라주지 않을까, 아마 이때까지 해온 화가와 모델 중 가장 빠르게 그리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말씀이 길어져서 그림 그릴 시간을 어느 정도 가질 수가 있었다.

"언니는 주황색, 파란색이 어울려요."

"나는 보라색이 좋아. 그냥 좋아."

"보라색은 보통 귀족, 고귀함 이런 뜻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결혼할 때 눈화장 보라색으로 해달라했어. 손님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단골에겐 보라색 끈으로 박스를 묶어줘."

"그래서 제가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자주색 등을 많이 썼나봐요."


예전에 왔다 간 사진 전공하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작가 지망생인 학생이 노량진 수산시장 사진도 찍고 자신의 모습도 찍었다고 했다. 그때는 학생인데 지금은 사진 작가라고 한다. 외국에서도 특별상을 받았다고 하며, 시장 사진과 언니 사진도 보여주었다. 작가분의 커리어에도 의미가 있지만, 언니 포함해서 이 시장 분들에게는 두고두고 평생의 의미 있는 경험이겠지. 항상 타인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지금 내가 와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팀에서 책을 만드는 것도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면 좋겠다. 내 그림도. 비록 보통의 초상화처럼 알아보기는 어렵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과 색을 다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주황색과 파란색의 대비대는 색감을 지니고 보라색의 이목구비를 가진 세진 수산 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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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음에 드는 신체 부위가 있을까요? 제가 그려드릴게요."

"나는 눈이 예뻐. 코는 컴플렉스인데, 눈이 제일 자신있어. 우리 아저씨가 내 코 보고 복코래. 나도 고칠 생각이 없지만, 아저씨도 돈 들어오는 복코라고 바꾸지 말래."

눈을 그렸다. 전반적으로 주황색 톤을 깔고, 푸른 빛이 느껴지는 눈을 그렸다. 눈썹부터 선을 긋고, 점차 색을 칠했다. 주황색 화면에 파란 눈이었다. 코는 초록색 빛을 띄었다. 묘사가 되려는 일상적인 손을 잡고 다시 감각에 집중했다. 언니가 좋아하는 보라색도 왼쪽에 추가했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데 엄청 다정해보였다. 그래서 그림 그리면서 가족에 대해 물어보았다.

큰 아들은 자동차 딜러. 둘째 아들은 휴대폰 판매원이라고 했다. 말을 잘해서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아이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한다. 역시 가족 내력인가보다. 직업이 전부 말을 잘해야하는 판매 쪽이었다. 어쩐지 언니도 200명 관리하실 때 부터 남다르셨어. 가족들이 다 모이면 어떻게 대화할지 궁금해졌다.

"우린 여행도 많이다녔어. 부부여행도. 주말만 되면 무조건 나갔어. 그래서 안가본 데가 없어. 아저씨가 음식도 잘해. 집에 가면 난 밥 안하고 남편이 다 해. 요리사가 아닌데 본인이 좋아해서 요리를 잘해. 둘째 아들도 바리스타 땄어. 이렇게 된 이후로 여행을 못갔어. 놀러갈 시간이 없어. 많이 놀러갔었는데.. 난 뷔페가서 초밥 안먹어. 집에서 한 상 차려서 먹어."

사진첩에 들어가서 여행 사진과 음식 사진, 가족 사진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키우는 멍멍이 사진도 있고, 아들이 여자친구랑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은 헤어졌다는데, 예전 여자친구 사진이 왜 아직 여기에... 어쨌든 정말 다양한 사진들을 보여줘서 감사하고 재미있었다. 전에 말했던 사진 작가 분이 찍어서 멋있게 나온 사진까지.

"눈썹 스크레치 이거 유행이잖아. 근데 우리 아저씨와 아들은 다 있어. 작은 애는 어렸을 때 택시 문에 찍혀서 생긴 흉터, 큰 애는 장난감이 튀어서 부딪혀서 생긴 걸 거야. 아저씨는 잘 모르겠어, 옛날에 다쳤다던데. 큰 애는 내 코를 닮았고, 작은 애는 아빠 코를 닮아서 더 잘생겼어."

"정말, 눈썹이 다 닮았네요. 위치도 왼쪽에 다 상처가 있어. 언니도 이참에 한 번 내보는 거 어때요?"

어떻게 보면 남의 가족 사진을 내가 왜 보고 있나 싶긴 하겠지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누구에게나 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 각자 다 스토리가 있구나. 나도 엄마에게 그런 자랑스러운 딸일까?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어떤 활동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세진 수산 언니가 엄마 또래여서, 아들이 내 또래여서 더 정감이 갔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남들에게 내 자랑을 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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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호텔 셰프라고 불러. 사모 매점인데, 사람들이 진짜인 줄 알아. 손님들이 지나가다가 맛있어 보인다고 물어봐. 현금 2천원이야. 2천원만 내면 뷔페처럼 먹을 수 있는데 요즘 정말 맛있어. 카레나 짜장도 하고, 닭도리탕도 해. 매점 언니가 잘해. 점심 꼭 먹고 가. 맛있어."

마무리하는데 마침 점심 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돌아가면서 서로 봉사를 한다고 한다. 현금을 준비해서 점심 식사 받는 줄에 섰다. 그런데 현진이 어머님께서 식사비를 내주셨다고 한다. 조끼 안입고 오신 분인데 인사를 드리려니 '손님이 왔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네.'라고 하시며 쿨하게 가셨다. 너무 감사했다. 와서 해드린 게없는데..

메뉴는 된장국과 파김치, 두부, 콩나물 무침이었다. 그리고 밥도 많았다. 고기는 없었지만 너무나 맛있었다. 내가 어릴 때 견학갔던 수녀원, 수도원의 맛있는 밥과 같았다. 고기는 없어도 너무 맛있어서 충분한 식사. 같이 온 팀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다. 수산 시장의 내용은 비슷했지만 각자 개인사정은 비슷하면서도 다 달랐다. 점심이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남기는 게 죄송했다. 먹고 나니 또 커피를 주셨다. 무한리필 되는 커피인가.. 계속 돌아가며 챙겨주셨다. 과분한 관심을 받아도 되는 걸까 조금 가슴이 벅찼다.

점심 식사 후 어떤 분을 다시 인터뷰 할까 둘러 보았다. 점심 식사비 대신 내주신 현진이 어머님께선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했다. 대부분 공간 내부에 앉아 있었는데 바깥 쪽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는 분들에게 다가갔다. 밖에 날씨가 좋은데, 이 분들은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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